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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32)

청춘리포트-2030 대학생이 본 교과서 갈등

by 석암 조헌섭. 2015. 11. 4.

 

 

청춘리포트-2030 대학생이 본 교과서 갈등
입력 2015-11-04 01:11:32
수정 2015-11-04 01:3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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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에 참여한 박종환·진재훈·강민우·구특교씨(왼쪽부터). [오종택 기자]

 

정부가 3일 역사 교과서 국정화안을 확정고시했습니다. 하지만 국정화 논란에서 정작

 교육 수용자인 학생들의 의견은 배제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청춘리포트는 대학 1학년생 200명을 상대로 그들의 역사관을 알아 보고,

 대학생 4명과 국정화를 주제로 대담을 진행했습니다. 국정화 찬성 측 표현대로라면

 

“문제투성이”인 역사교과서로 배운 학생들입니다.

 

검인정 역사 교과서로 공부한 이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교육 수용자인 청춘 세대의 의견을 생생히 전달합니다.

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를 두고 고교 시절 검인정 교과서로 우리 역사를

배웠던 대학생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진재훈(25·서강대 신문방송학),

박종환(29·인하대 행정학)씨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찬성했고,

 강민우(25·중앙대 중국어문학), 구특교(26·서강대 중국문화학)씨는 반대했다.

 

이들은 고교 시절 모두 검인정 교과서로 공부했다. 국정화 찬성론자들이

“좌편향됐다”고 주장하는 역사교과서로 공부해 대학에 진학했다.

국정화를 주제로 한 ‘캠퍼스 대담’은 2일 오후 2시 중앙일보 9층 회의실에서

1시간 동안 진행됐다. 국정화를 찬성하는 대학생들은 “현재 고교생들이 배우는

  검인정 교과서가 우리 역사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도록 만든다”고 주장했다.

 

 반대 측은 “검인정 교과서에는 독재정권을 종식시킨 민주화에 대한 내용도

 있기 때문에 근현대사를 긍정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며 상반된 의견을 냈다.

 -국정화 확정고시가 발표됐다.
 진="정부가 교과서 국정화 필요성을 느꼈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하고 있으니

힘을 보태줄 필요가 있다.

 짧은 시간 안에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어야 하는 만큼 집필진 구성부터 국민과

 전문가들이 힘을 모야야 한다.”
 강=“졸속 처리된 것이다. 미래 세대의 교육에 큰 변화를 주는 건데 정작

 10대와 20대의 반발은 묻혔다.”


 -현재 검인정 교과서가 편향됐다고 보나.
 박=“고등학교 때 검인정 교과서로 공부하면서 나는 ‘우리 역사가 자긍심을

느낄 만한 역사인가’라는 회의가 들었다. 예를 들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독재나

 5·16군사정변은 자세히 서술돼 있어 ‘체제전복자’라는 느낌이 강한 데 반해

 경제발전에 이바지한 부분은 당시 세계 경제 호황이 원인인 것처럼 서술돼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교과서만 보면 뭘 잘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강=“현재 검인정 교과서에도 충분히 자긍심을 가질 만한 역사로 서술돼 있다.

 전쟁 후 폐허였던 나라에서 국민의 근면성을 기반으로 일어났고, 북한은 권력을 3대째

 세습한 반면 우리는 민주화 과정에서 독재자를 끌어내린 경험이 있다고 배웠다.”


진=“솔직히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이승만이나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대놓고 칭찬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 우리 사회는 보수·중도·진보가 비슷한 비율로 나뉘어 있는데

 젊은 세대는 그렇지 않다. 소수의 목소리 큰 사람들 때문에 다수가 목소리를 못 내는

 상황이다.

 

근현대사 교과서의 역할이 크다.”
 구=“검인정 교과서 집필도 교육부의 지침에 따라 하는 건데 무조건 편향됐다고

 보는 건 과장된 해석 아닌가.”
 진=“교육부에서 지난해 교과서를 검정하면서 수정해야 할 부분을 지적했다.

 처음엔 권고했고, 다음엔 수정명령을, 이후에 법원에서 수정 판결까지 났는데

출판사에서 불복했다.

 

 수정이 필요할 때마다 매번 이런 식으로 국력 낭비를 해야 하나.”
 강="명백하게 잘못된 서술이면 수정하는 게 맞지만 그게 국정화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학생들이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교과서가 기반이 돼야 한다.”
 진=“검인정 체제에서 다양한 교과서가 나올 수 있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2014년 10월 말 기준으로 보수 성향의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3개뿐이다.

 사실상 역사교과서의 독과점이 이뤄지고 있는 거다. 검인정은 각 출판사의 입장을

 반영해 편향될 수 있지만 국정은 다양한 집필진이 만들기 때문에 더 객관적일 수 있다.”

 강=“교학사 교과서를 덜 보는 건 사진이나 내용 오류가 많이 지적됐기 때문이다.

 개선되면 채택률이 올라갈 것이다. 중요한 건 ‘역사를 이렇게 보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있다는 것을 교육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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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관을 형성에 교과서가 큰 영향을 미쳤나.
 박=“대부분 수능 준비에 바빠 교과서 외에는 다른 역사책을 접할 여력이 별로 없기 때문에 역사관 정립에 교과서가 큰 영향을 끼친다.”
 강=“나는 별 영향이 없다고 본다. 요즘 학생들에겐 교과서에 서술된 역사의 진실

 여부보다는 시험에 어떤 것이 나오느냐가 더 중요하다.”

 

 -검인정 교과서를 배운 세대로서 분단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고 보나.
 박="남북 모두에게 있지만 국제적 성격이 강했다.”
 진=“북한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본다.”
 강=“미국과 소련의 영향이 컸다.”
 구=“북한의 잘못이 크고 세계적 흐름이 결합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과를 비율로 말한다면.
박(찬)=6대4 진(찬)=8대2
 구(반)=6대4 강(반)=5대5.
 이날 대담에선 찬반을 막론하고 “국정화가 성급히 진행됐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구씨는 "교과서가 청년 실업을 덮을 만큼 시급한 문제인가”라고 말했고, 박씨도

 “취업난 등 산적한 청년 문제를 외면하고 국정화를 서두르는 것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글=채윤경 기자, 주재용 인턴기자 pchae@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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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계 첨예한 대립

 

보수학자 "1948년 건국" 진보학자 "1919년 임정이 건국"

입력 2015-11-06 02:35:15
수정 2015-11-06 03: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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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역사 교과서에서 ‘대한민국 수립’ 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중 어느 쪽이 선택되느냐는 것은 단순한 표현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정부가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가늠케 하는 척도가 된다. 역사학자들이 이에 대한 새 교과서의 서술을 주목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과거 국사 교과서에선 1948년은 대한민국 건립 또는 수립으로 일관되게

 표현돼 있다. 이승만 정부의 검인정 고교 국사 교과서는 “1948년 38도 이남에

 대한민국이 건립되었으며…”라고 기술했다.

 이어 박정희 정부부터 김영삼 정부까지는 1948년에 “대한민국의 수립(성립)을 내외에 선포하였다”고 썼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김대중 정부 집권 시기 진보 성향의 역사학자들은

 ‘근·현대사’ 검정교과서부터 대한민국 정부의 국제법적 지위에 관해 수정을

 주장했다. ‘대한민국은 1948년 총선거가 실시된 38도선 이남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집필 기준이 그때 들어갔다.

 이는 한반도 내에 또 다른 정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검정을 통과한 좌파 성향의 검정교과서에 대해

 수정권고안을 내며 “당시 유엔 결의문(1948년 12월 12일)은 대한민국을 유일한 합법정부로 명기하고 있으므로 ‘38도선 이남’이란 표현을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또 지난 9월 역사 교육과정을 개정하면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꿨다. 새 교과서는 개정된 역사 교육과정의 지침을 따라야 한다.
 역사학계는 아직도 이 문제에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기초한 근대국가를 세운 1948년을 건국으로 봐야 한다. 국가 수립도 부족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그는 “임시정부는 사상적인 건국의 기틀이며 그 정신에 따라 1948년 자유 선거를 통해 건국한 것이다. 1919년 건국설은 대한민국 정통성에 대한 부정”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한상권(국정화저지네트워크 상임대표) 덕성여대 사학과 교수는

 “김구 등 독립운동세력은 남북 통일정부 수립을 주장했지만 이승만은 분단

 정부로 대한민국을 세웠다. 1919년을 건국으로 봐야 독립운동의 전통을 이은

 나라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48년 9월에 나온 첫 관보도 ‘대한민국 30년’으로 썼다. 이승만 자신이

 정부 수립이라고 연설했는데 이를 건국이나 국가 수립으로 바꾸는 것은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교육부가 ‘정부 수립’이 아닌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표현을 쓰기로 하면서도 ‘건국일’ 또는 ‘건국절’이라는 용어는 쓰지 않기로 한 것은 보수세력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수용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은 2005년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 대안교과서를 만들기 위한 ‘교과서 포럼’을 창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제기했다.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은 “학계 갈등이 심해지기 전에는 정부 수립과 건국이란 용어를 혼용해도 큰 문제가 없었다. 정부 수립의 과소평가에 대한 반작용으로

 건국절 주장이 나와 갈등이 커졌다. 1919년 임시정부 수립과 1948년 정부

 수립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이 둘을 조화롭게 양립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윤서·노진호 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