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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124)126

“고구려 건국 이야기” “고구려 건국 이야기” 잘 아는 얘기지만, 고구려 건국(建國) 이야기 간단하게 정리해 볼까 한다. 고구려 발상지인 압록강 중류 지역은 요동 지역이나 동해안으로 통하며, 남으로 대동강 유역의 평야 지대, 북으로 송화강 유역의 평원(平原)지대로 통할 수 있는 교통로(交通-路) 상의 중요지점이다. 고구려 최초의 발상지인 졸본 지역(오늘날의 중국 요녕성 환인)은 꽤 넓은 분지(盆地)를 이루고 있다. 이 지역의 기후는 중국 동북 지역에서 가장 온난(溫暖)하며 강수량(降水量)도 풍부(豊富)하여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곳이다. 고구려를 건국한 시조 동명성왕(東明聖王)의 출생 설화(說話)에는 탄생의 신비감과 주몽의 능력에 대해 잘 나와 있다. 동명성왕 주몽에 관한 설화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위서", 광개토대왕.. 2024. 2. 1.
“래암 정인홍(來庵 鄭仁弘)” “래암 정인홍(來庵 鄭仁弘)” 내암 정인홍(來庵 鄭仁弘 )선생 일대기 내암 정인홍(來庵 鄭仁弘 )은 조선 중종 때 합천 야로현 남사촌에서 증 영의정(贈 領議政) 윤(倫)의 아들로 태어나 광해군 때의 문신으로 대북의 영수이며 자는 덕원 호는 내암으로 가야 출신이다. '정내암연구논총(鄭來庵硏究論叢)'의 '내암연보(來庵年譜)', 서산(瑞山) 대동보(大同譜) 등 문중 기록은 가정(嘉靖) 병신생(丙申生.中宗 31년: 1536년)으로 되어 있으나 객관적 공식자료에 따르면 1535년생이라고 밝히고 있다. 즉 문중 기록은 1536년으로 되어 있고, '내암집해제'를 비롯한 자료들에는 1535년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내암 사후 그에 대한 기록들이 온전할 리 없었으므로 생기는 일일 것이다. 내암의 자는 덕원(德遠).. 2024. 1. 12.
암행어사 정위도 암행어사(暗行御史) 정위도 과거에는 충신(忠臣)이나 효자 효녀를 높이 사는 것 못지않게 남편이 죽은 뒤에도 재혼(再婚)하지 않고 시부모를 모시며 자식을 키우면서 사는 여인들을 매우 훌륭한 인물로 여겼다. 때문에 나라 에서는 열녀문(烈女門)도 새워주고 상도 내렸다. 인조 7년 어느 한 고을에 지아비가 죽고 삼 년 동안 시묘살이하는 여인에게 열녀 상을 보내 주자고 하자 예조판서(禮曹判書) 정위도는 시묘살이했다고 모두다 열녀상을 주는 것은 반대했다. 정위도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터라 이유는 말하지 않고 무조건 반대(反對)했다. 강원도 어느 양반집에 태어난 그는 사춘기가 되자 이웃마을 고모 집에 갔다가 하인 옥섬이를 만남으로서 절세미인(絶世美人) 옥섬이 에게 반해 버렸다. 하루는 아무도 없는 빈집에 옥섬이만 있.. 2023. 8. 13.
백사 이항복(李恒福) 백사 이항복(李恒福)1556-1618년 이항복은 다섯 번이나 병조판서에 올랐으며 삼정승을 지낸 높은 벼슬을 누렸지만 백사(白沙) 이항복도 알고 보면 어린 시절 장난꾸러기였고 노는 일에만 급급한 골목대장이었고 그가 16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 그의 가족들은 큰 걱정이 앞섰다. 결혼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허구한날 밖으로 나가 놀기만 하여 철없이 보이는 것이었다. 엄마 없는 건달인데도 백사에게 어느누가 딸을 주겠는가 하며 걱정하든 차 하루는 권율 장군의 아버지인 권철(權轍)이라는 정승이 중매쟁이를 대리고 그의 집을 찾았다. 백사가 비록 건달 생활을 하지만 건장한 청년 인데다 머리가 영리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자신의 손주 사위를 삼기위해 직접 그를 만나러 온 것이다. 정승이 집을 찾아왔으니 가족들은 긴장하지 않.. 2023. 7. 22.
죽각 이광우(竹閣 李光友) 죽각 이광우(竹閣 李光友) 이광우(李光友, 1529∼1619)의 자는 화보(和甫)이고, 호는 죽각(竹閣)이며, 본관은 합천(陜川)으로 단성(丹城)에 거주하였다. 그는 1529년(기축) 단성 배양 마을에서 아버지 참봉(參奉) 잠(潛)과 어머니 성주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문집 (죽각집(竹閣集)이 있다. 10세 때(1538년) 백부 이원(李源)에게 {소학}을 배웠다. 이원은 남명·퇴계 선생과 동갑으로 도의로 교유했던 인물이다. 이광우는 (소학)을 읽으면서 '사람의 도리가 모두 이 책에 있구나'라고 하면서 부지런히 공부하여 학문의 기본으로 삼기도 하였다. 11세 때(1539년) 종형인 송당 이광곤과 함께 (효경)을 공부하였고, 14세 때(1542년) (중용)과 (대학)을 공부하였으며 18세 때(1546.. 2023. 6. 3.
한강 정구(寒岡 鄭逑)선생 한강 정구(寒岡 鄭逑)선생 한강 정구(寒岡 鄭逑, 1543∼1620)의 자는 도가(道可)이고, 호는 한강(寒岡)이며, 본관은 청주(淸州)로 성주(星州)에 거주하였다. 그는 1543년에 성주군(星州郡) 대가면(大家面) 칠봉동(七峯洞)에서 판서공 사중(思中)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문집은 {한강집(寒岡集)}이 있다. 7세 때(1549년, ) [논어]와 [대학]을 통달하여 신동이라는 칭찬을 받았으며, 손님 앞에서 자기의 포부와 기상은 요순과 같다는 기상천외의 대답을 하였고, 9세 때(1551년) 부친상을 당하자 성인처럼 집상(執喪)하여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10세 때(1552년, 임자) 학문에 뜻을 두고 발분독서(發憤讀書)하여 [대학(大學)], [논어(論語)]를 읽고 그 대의(大義)에 통하였다.. 2023. 4. 8.
탁계 전치원(濯溪 全致遠, 1527∼1596) 탁계 전치원 탁계 전치원(濯溪 全致遠, 1527∼1596) 전치원(全致遠)의 자는 사의(士毅)이고, 호는 탁계(濯溪)이며, 본관은 완산(完山)으로 초계(草溪)에 거주하였다. 1527년 초계군 도방리(지금의 합천군 쌍책면 하신리)에서 전인(全絪)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문집은 {탁계집(濯溪集)}이 있다 15세 때(1541년) 당시 재령(載寧) 군수로 있던 할아버지(永綏)를 따라가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손자의 자질이 호방한 것을 알고 무예를 가르치고자 했다. 16세 때(1542년) 재령에 머물면서 여름에 {소학}을 들고 이희안(李希顔)을 찾았는데, 이희안은 {소학} 책 배울 나이가 넘었다고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로부터 전치원은 5일 동안 움직이지 않고 한 자리에 앉아 가르침을 청.. 2023. 3. 18.
덕계 오건德溪 吳健(1521-1574) 덕계 오건(德溪 吳健1521-1574) 오건(吳健, 1521∼1574)의 자(字)는 자강(子强)이고, 호(號)는 덕계(德溪)이며, 본관(本貫)은 함양(咸陽)이다. 그는 1521년) 4월 6일 경상남도 산음현(山陰縣) 석답리(石沓里)에서 오세기(吳世紀)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문집 및 저술은 [덕계집(德溪集)]과 [역년일기(歷年日記)]가 있다 오건(吳健)의 자(字)는 자강(子强)이고, 호(號)는 덕계(德溪)이며, 본관(本貫)은 함양(咸陽)이다. 그는 1521년) 4월 6일 경상남도 산음현(山陰縣) 석답리(石沓里)에서 오세기(吳世紀)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문집 및 저술은 [덕계집(德溪集)]과 [역년일기(歷年日記)]가 있다. 9세 때에는 양희(梁喜)와 만나 경서를 강론하였으며, [대학], [논어] 등.. 2023. 2. 22.
남명 조식(南冥 曺植) 선생의 일대기 수정 2023년 2,10일 남명 조식(南冥 曺植) 선생의 일대기 위 사진을 클릭 크게 볼 수 있음 남명선생숭모비 평시조 두류예찬 평시조 홍살문 남명 조식(南冥 曺植) 선생의 일대기 조식 영정 사진 남명 조식 선생은 1501년 6월 26일 합천 삼가에 태어나 성리학의 대가이며 사림의 영수로서 한평생 갈고 닦아 쌓아 올린 학문(學文)과 도덕(道德) 인격(人格)과 사상(思想) 철학(哲學) 정신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많은 영재들을 모아 가르쳤으며, 여기에서 배운 학생들이 조선 시대의 문(文)과 무(武)와 정치(政治)와 학술계를 주도하는 중심인물이 되었고, 남명 사후 20년인 1592년 4월 14일 임진왜란을 당하여 의령에서 왜적을 물리친 망우당 곽재우(忘憂堂 郭再祐) (조식 외손서)),와 합천에서 의병을 창설.. 2023. 2. 10.
한원당 김 굉필 (寒暄堂 金宏弼 1454∼1504) 한원당 김 굉필 (寒暄堂 金宏弼 1454∼1504) 만추의 계절 가을 단풍의 끝자락 11월셋째 휴일 날 제가 좋아해 까끔 찾아가는 한원당 김굉필 (寒暄堂 金宏弼)을 모신 도동서원(道東書院) 과 사효굴을 다녀와 오랜만에 역사서(歷史書)를 써 본다. 대구 달성군 구지면 도동에 가면 낙동강변에 도동서원(道東書院)이 있다. 선생은 동방 오현 중의 한 분으로 조선조 유학사에 큰 획을 그은 분이다. 도동서원 앞 낙동강변 만추 풍경 400여 년된 도동서원 앞 은행나무 김굉필(金宏弼) 은 조선 전기의 문신(文臣)이자 학자이다. 본관은 서흥(瑞興). 자는 대유(大猷), 호는 사옹(簑翁)·한훤당(寒暄堂)이다. 그는 할아버지 이래 살아오던 한성부 정릉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호방하고 거리낌이 없어,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면서.. 2022. 11. 20.
함벽루(涵碧樓) 조헌섭 2022년 10월 28일 수정 함 벽 루(涵碧樓) 함 벽 루(涵碧樓) 함벽루는 문화재자료 59호 고려 숙충왕 8년 1321년 김 아무개가 새움, 기문 6편은 1. 예조참판 학촌 안진과 2. 남이장군을 죽인 익대공신 사숙제 강희맹, 3. 82세 때 제주도로 귀양 갔다가 서울로 올라 오던 중 정읍에서 사약을 받아 항문을 막고 사약을 먹여 죽음을 당한 좌의정 송시열, 4. 호조참판 화천 이채, 5. 합천군수 조지항, 6. 춘산 이상학의 6편의 기문이 있고 누각에 시(詩) 를 남긴 사람은 철종 임금때 영의정을 지낸 심암 조두순, 명종 임금 때 영의정 추증을 받은 남명 조식, 대제학 의 벼슬에 오른 퇴계 이황, 조선의 개국공신 좌의정 송당 조준,과 영의정 부사 삼봉 정도전, 대원군때 을사조약에 반대하다가 .. 2022. 10. 28.
중국 9人의 지혜 중국 9人의 지혜 운(運)도 지지리 없는 놈이라고 하늘의 무심(無心)함을 탓하지 말라! 내가 수십년 간 낚시를 벗하며 때를 기다리는 동안 조강지처(糟糠之妻)마저 나를 버리고 도망가 버렸다. 검은 머리가 백발이 되고서야 문왕 서백을 만나 은나라 주왕(紂王)을 멸하고 주나라를 세웠다. 나는 숱한 세월(歲月)을 낚으며 늙은이가 되었지만 결코 하늘을 원망(怨望)하거나 포기(抛棄)하지 않았고 그 인내의 결실(結實)이었던 단 한 번의 기회(機會)로도 천하를 얻을 수 있었다. 용모(容貌)가 볼품없어서 되는 일이 없다고 푸념하지 말라! 나는 어렸을 때 보잘 것 없는 외모때문에 불량배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 다니는 치욕(恥辱)을 당했고, 빨래터 노파의 밥을 빌어먹기도 했다. 초패왕 항우는 나의 볼품없는 용모를 업신여겨 범.. 2022. 7. 7.
독대 독대 조광조(趙光祖)·김정(金淨) 등의 사림들이 화(禍)를 입은 기묘사화(己卯士禍)를 신무문(神武門)의 변(變)’이라고도 한다. 중종이 재위 14년(1519) 11월 신무문으로 남곤(南袞) 등을 불러 밀지(密旨)를 내린 것이 시작이기 때문이다. 다른 궐문의 열쇠는 승정원에서 관장했지만 북문인 신무문만은 환관들이 관장했기에 승지들을 따돌리기 위해 신무문으로 부른 것이었다. 중종은 남곤 등을 신무문으로 불러들여 추자정(楸子亭)에서 몰래 만나고 난 후 합문(閤門)으로 대신들을 불러 마치 조정에서 조광조 등을 죄 주기를 청한 것처럼 꾸미려 했던 것이다. 승지(承旨) 성운(成雲)은 중종에게 “승지와 사관이 이 일을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임금의 호상(好尙)좋아하고 숭상하는 것)은 자연스러워야지 이렇게 비밀스러워서는.. 2022. 4. 2.
이성계(李成 桂) 1355-1408년 이성계 영정 보물931호 이성계(李成 桂) 1355-1408년 참 오랜만에 제가 좋아하는 역사(歷史) 글을 올려본다. 1392년 7월 공양왕을 원주로 내쫓고 새 왕조의 태조(太祖)로서 왕위에 올랐다. 그는 새 왕조의 국호를 조선(朝鮮)으로 확정하고 1393년 3월 15일 새 국호를 쓰기 시작했고 다음에는 새 수도 건설을 왕사인 무학대사 박자초(朴自超)의 의견에 따라 한양을 새 서울로 삼기로 결정하였다. 또한, 유교 정신을 국가의 기본으로 삼고 농본주의(農本主義)를 건국이념 으로 삼아 조선 500년의 근본 정책이 되게 하였고 농상 장려 관세 정비등 조선의 기틀을 다지는데 큰 업적을 남겼다. 1394년 정도전(鄭道傳)의 조선 경국전(經國典)과 각종 법전이 편찬되었고 승유척불 정책을 시행 서울에는 성균관 지방.. 2020. 12. 14.
퇴계 이황(退溪 李滉)선생 자명(自銘) 퇴계 이황(退溪 李滉)선생 자명(自銘) 퇴계 이황(1502년 1월 3일) 경상도 예안현 온계리에서 태어났다. 진보이씨 21세 때 허씨와 결혼 28세때 진사시험에 합격 49세의 끝날 무렵 용기를 내어 풍기군수 자리를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원대한 학문과 인격완성의 꿈을 꾸면서 58새 때 2월 어느 날 청년 율곡 이이가 계상서당으로 찾아와 3일 동안 도학에 관하여 토론 도학을 공부했다. 70세(1570) 1월 8일 아침 “분재 매화에 물을 주라”명하고 눈을 감으셨다. 퇴계 선생께서 스스로 지은 묘비 시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에 자명(自銘)을 커다란 바위 세계 놓았다. 퇴계선생 자명(自銘) 생이대치(生而大癡)--태어나서는 크게 어리석었고 장이다질(壯而多疾)--장성해서는 병도 많았네. 중하기학(中何嗜學)--중년.. 2020. 10. 29.
중국 9人의 지혜 . 중국 9人의 지혜 ◆강태공(姜太公) 운도 지지리 없는 놈이라고 하늘의 무심함을 탓하지 말라! 내가 수십년 간 낚시를 벗하며 때를 기다리는 동안 조강지처마저 나를 버리고 도망가 버렸다. 검은 머리가 백발이 되고서야 문왕 서백을 만나 은나라 주왕(紂王)을 멸하고 주나라를 세웠다. .. 2020. 2. 17.
이제신(李濟臣, 이제신(李濟臣, 이제신(李濟臣,1510∼1583)의 자는 언우(彦遇)이고, 호는 도구(陶丘)이며, 본관은 철성(鐵城)으로 의령(宜寧)에 거주하였다. 그는 1510년 (중종 5년) 창녕 외가에서 태어났다. 그에 관한 자료는 {도구실기(陶丘實紀)}가 있다. 그는 10세 때(1519년, 기묘) 고향 사람 안주(安宙)에게서 공부하여 {소학}, {시경}, {서경}, 사학(史學)을 배웠다. 18세 때(1528년, 무자) 외간상(外艱喪)을 당하여 장제사(葬祭祀)를 한결같이 가례(家禮)에 따랐다. 35세 때(1544년, 갑진) 김해(金海) 신어산(神魚山) 밑 산해정에서 학문을 연마하던 남명선생을 찾아가 한 달 남짓 곁에서 극진히 모셨는데 44세 때 남명선생이 그의 정숙한 행동을 칭찬하기도 하였다. 이 후 남명선생이 삼.. 2019. 11. 19.
동래부사 민영훈(東萊府使 閔永勳) 동래부사 민영훈(東萊府使閔永勳) 부산대 입구 사거리에 가면 작은 공원에는 부사 민영훈 거사비(閔永勳去思碑)가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2동 255번지 대우 아파트 앞 산업 도로에서 부산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로 가는 골목길에 있다. 문과방목(文科榜目)에 의하면 민영훈은 1775년(영조 51)에 태어났으며,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아버지는 민종길(閔種吉)이다. 1835년(헌종 1년) 9월 동래부사로 부임하여 2년 만인 1837년(헌종 3) 3월 이임 하였다. 비(碑)는 1838년(헌종 4) 봄 민영훈이 동래 부사에서 교체된 지 1년 만에 세웠다. 거사비란? 목민관이 재임 중에 선정을 베풀어 향민(鄕民)이 그가 떠나고 난 후 그의 공덕을 기려 비석을 세운 것이다. 비문에는 “조선 말기 동래부사로 부임한 민영훈.. 2019. 4. 13.
연 산 군(燕山君) 1476~1506년 연산군(燕山君) 1476~1506년 겨울이 지나가고 봄을 맞게 되어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雨水) 닐 아침 대구에도 고운 비가 내리는데 오랜만에 역사서(歷史書)를 써 본다.. 이때쯤이면 날씨가 많이 풀려 봄기운에 초목이 싹이 트고 우리 선조(先祖)들은 우수가 되면 수달이 물고기를 잡아 제사를 지낸다고 하였다. 또 기러기가 시베리아로 찾아가고, "우수 경칩이 되면 우주 만물이 소생한다.” 하였으니 엄동에서 그렇게 기다려온 봄이건만, 희뿌연 황사와 미세먼지가 봄바람 타고 날아드니 꽃비라도 내렸으면 좋겠다. 꽃비내리는 날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조선조 연산일기에는 연산이 꽃비를 소재로 한 시가 있다. 피의 역사를 써 내려간 그의 악심에도 순수한 열정은 있었는 지 외롭고 아픈 과거가 숨겨진 그의 회문고시.. 2019. 2. 19.
퇴계이황(退溪)의 도산서원과 지폐이야기 퇴계이황(退溪李滉)의 도산서원과 지폐이야기 매화를 너무나 사랑한 퇴계(退溪) 선생은 그냥 매화라 하지 않고 매형(梅兄), 매군(梅君), 매선(梅仙) 이라는 존칭으로 대하였다. 그리고 이 매화와 함께 퇴계를 이야기할 때는 늘 떠오르는 한 명의 여인이 있는데 단양의 관기 두향(杜香)이다... 2018. 12. 26.
“입재 노흠 (立齋 盧欽) “입재 노흠 (立齋 盧欽1527∼1602)” 노흠(盧欽, )의 자는 공신(公信)이고, 호는 입재(立齋)이며, 본관은 광주(光州)로 삼가(三嘉)에 거주하였다. 그는 1527년 아버지 수민(秀民)과 어머니 일직 손씨(一直孫氏) 생원 세기(世紀)의 딸 사이에 태어났다. 그의 문집은 {입재집(立齋集)}이 있다. 19세 때(1545년) 남명선생을 만나 제자가 되었다. 37세 때(1563년) 김우옹, 정구(鄭逑), 박성(朴惺), 노흠, 김면, 배신, 이기춘(李起春) 등의 제현들과 더불어 도의(道義)로 교유하였다. 38세 때(1564년) 생원시(식년 생원 3등)에 합격을 하였다. 벼슬 : 성균관에서 추천하여 참봉의 벼슬을 내렸으나 받지 않았으며, 뒤이어 봉사(奉事)의 벼슬을 내렸으나 나아가지 않고 학문과 수행에 전념.. 2018. 10. 27.
김종필의 묘비명 김 전 총리가 작성했던 묘비명 전문. '思無邪'를 人生의 道理로 삼고 한평생 어기지 않았으며 '無恒産而無恒心'을 治國의 根本으로 삼아 國利民福과 國泰民安을 具現하기 위하여 獻身盡力 하였거늘 晩年에 이르러 '年九十而知 八十九非'라고 嘆하며 數多한 물음에는 '笑而不答'하던 者- .. 2018. 6. 29.
맹자(孟子)의 사상 , 맹자(孟子)의 사상 본명은 맹가(孟軻)로 전국시대 노나라 산둥 성 부근에서 출생했다. 공자의 유교적 전통 속에서 자라며 그의 이상을 지지·발전시킨 유교의 후계자로 일컬어진다. 주요 사상은 성선설과 왕도 사상, 민본주의[民本主義]를 들 수 있다. 맹자의 생몰 연대 역시 확실하게 .. 2018. 6. 23.
강리도(疆理圖) 강리도(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 “천하는 지극히 넓다. 중국에서 밖으로 사해까지 몇천만 리나 되는지 알 수 없다.” 태종 2년 권근(權近)은 조선 최초 세계지도인 강리도(疆理圖)를 만들기까지의 과정과 제작 동기(同期)를 이렇게 말했다. 김정호가 간행한 대동여.. 2018. 4. 21.
서계 박세당(西溪 朴世堂1629~1703) . 서계 박세당(西溪 朴世堂1629~1703)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은 반남박씨로 박응주(朴應珠)를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고려말 향리가문에서 출발하여 조선후기에는 당대 최고의 문벌가문으로 발전한 가문으로 박세당의 10대조인 박상충(朴尙衷1332-1375)에 이르러 .. 2018. 1. 17.
“쌍책면 마을이름 유래” “쌍책면 마을이름 유래” ▶내촌 : 황강변에 위치하여 자연경관이 수려하며 관수정, 황강정이 있다. 문화류씨 법성선생의 유적비가 있으며 15세기 중엽 법성선생이 심은 느티나무는 아직까지도 주민들의 피서지로 이용되고 있다. 외촌 : 쌍책면의 소재지로 남쪽으로 흐르는 황강변(黃江邊)에 위치하고 있으며, 옛날 가야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문화 유적지가 많은 곳으로 현재 합천박물관이 소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초계군 초계면에 속하였으며 문화류씨가 610년 전에 시거하였다. ▶외촌,밤마 : 밤마라는 지명은 중심지에서 떨어진 바깥마을이라는 뜻에서 예전부터 구전되어 내려오는 듯 하고, 120년 전에 심었다고 전해지는 정자나무는 주민들의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다. 현재 정자나무가 있는 곳에는 설치년도가 정확.. 2017. 8. 25.
임청각(臨淸閣ㆍ보물 182호)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1858년~1932) 임청각(臨淸閣ㆍ보물 182호)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1858년~1932) 임청각서 독립운동가 9명 .. 일제가 기찻길 내며 반 토막 내 대통령 '노블레스 오블리주' 언급 왜 독립투사 이상룡 살았던 99칸 저택 마당에 철로 들어서면서 70칸 남아 손자·손녀 고아원 생활 .. 후손 고초 경북 안동시 법흥.. 2017. 8. 16.
청년 윤봉길 청년 윤봉길 박정호논설위원 모레 4월 29일은 매헌(梅軒) 윤봉길(1908~32) 의사의 중국 상하이(上海) 훙커우(虹口)공원 의거 85주년을 맞는 날이다. 일제강점기 짓눌렸던 한국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뚫은 쾌거임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스물다섯 청년 윤봉길은 85년 전 그날 일왕 탄생일을 .. 2017. 4. 28.
히틀러 이후 70년 … 독일인은 매력적인 국민 히틀러 이후 70년 … 독일인은 어떻게 가장 매력적인 국민 됐나 윤석만 기자 제2차 세계대전은 1 1970년 12월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는 폴란드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 이후에도 피해자들에 대한 독일인들의 사죄는 계속됐다. [중앙포토] 950년대의 독일 지식인들에게 .. 2017. 2. 17.
어사 박문수[御史 朴文秀] .. 어사 박문수[御史 朴文秀]1691~1756 朴文秀(박문수1691∼1756).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성보(成甫), 호는 기은(耆隱)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어사(御史) 박문수로 널리 알려졌다.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1723년 문과[文科]에 급제 한원에 뽑혔고 1728년 영조 4년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 2016.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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