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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463)

절식패명(節食牌銘)

by 석암 조헌섭. 2016. 6. 10.

 .

절식패명(節食牌銘)
 요즘 방송에서 백종원의 맛있는 음식기행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그 식당엔 음식 맛보려고  줄을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란다.
불경기에 나름대로 독특한 음식 비법으로 손님 입맛을 돋우는 프로인데 
참으로 다양한 먹을거리를 소재 []로  해서 만인들의 식충동을 유발한다. 

 배불리 먹고 잘 사는 것이 모두의 소원처럼 되었던 시절[]을 넘어 이제는
영양과 건강식으로 승부[]하는 시대인가 보다.
젊은이들은 다이어트를 한다고 아침 겸 점심인 브런치(아점)을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중노인들은 웰빙 음식을 찾아 전국을 마다치 않는다. 

 살아가면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음식과 술을 절제[節制]
하는 일일 것이다.
회식, 또는 계 모임이 있는 날 풍성[風聲]하고 호화스런 식탁 앞에서 
절식절음[節食節飮]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조선조 순조 때 시인이었던 이양연(李亮淵)이 절식을 하고자 패를 만들어
가지고 다니면서 과식을 경계했다는 절식패명(節食牌銘)의 내용을 보면,
 適喫則安(적끽칙안) 적당히 먹으면 편안하고
過喫則否(과끽칙부) 지나치게 먹으면 편치 않으니.
儼爾天君(엄이천군) 의젓한 너 천군(마음)이여
無爲口誘(무위구유) 입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

조선조 선비 성호는 일일지기 모무포식(一日之忌 暮無飽食)이라 하여
날마다 경계[境界]할 것은 저녁에 포식[飽食]하지 않는 것이라 하였다.
 또한,
자신을 천지간의 좀 벌래”라 하여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 말라” 하였다.

옛날 밥그릇의 크기를 비교[比較]해 보면,
고구려 시대는 1300그램
고려 시대에는 1040그램
조선 시대에는 690그램
지금 현재는 250그램 내외의 쌀이 들어가는 공깃밥 한 그릇의 양과질의
                찬[饌]을 먹으니 옛 사람보다 오래사는가 보다.
                
 밥 외에는 먹을 것이 없는 시대였으니 고구려인의 동아시아를 호령[號令]
 원천이 밥심이고 보니 밥은 꼭 먹어야 하는데,
일단 과식[過食]은 삼가는 게 좋을 것이니…

동춘당 송준길이 임금이 하사한 음식을 사양하는 사음물소[辭飮物疏]가
 있는데 이는 굶주리는 백성을 생각해서 관청곡식[官廳穀食]을 축낼 수
없다는 내용[內用]이었다.

소동파[蘇東坡]는 절음식설[節飮食說]에서 적당히 먹으면 분수에 맞으니
 복이 길어지고, 위가 여유[餘裕]가 있으니 기운[氣運]이 맑아질 것이고,
비용[費用]이 절약[節約]되니 재산이 늘어난다고 하였다.

하루
한 끼 먹으면 일식씨,
두 끼 먹으면 이식군,
세끼 다 먹으면  삼식새끼,
한 끼도 안 먹으면 영식 성님이라고 한다나…


어쨌거나 먹고사는 일이니 식사가 세상사인데…
본인은 빈한[貧寒]한 살림에 먹는건 밥과 반주뿐인데
늙그막에 삼 식 세끼에 세참까지 달라 하니 집사람 눈치도 보이고
미안한 마음에 설거지라도 자주 하게 되나 봐…

2016년 6·10 민주항쟁 기념일 저녁

석암 조 헌 섭
 택당 이식 선생의 ‘진부령 정상에 있는 (진부령 유별시(陳富嶺 留別詩)’ 碑 
서행정치북풍시--한양으로 승차되어 가는 길 북풍이 불고
설령참천조도위--눈 덮이어 음산한 영마루 새(鳥)도 넘기 험한
자시인정상석별--이제 인정에 마음 아픈 이별을 하네
군래기아아유시--그대들 배 주리며 따라 왔는데 나는 이별시를 남기네.
 이현, 창민 = 밥만 잘 먹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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