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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473)

하극상[下剋上]

by 석암 조헌섭. 2016.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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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극상[下剋上]

며칠 전 7월 15일 터키에서 일어난 쿠데타가 자작극이든 뭐든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로 돌아갔다.
 터키의 쿠데타와 한국의 쿠데타가 무엇이 다를까?
에르도안 대통령을 지지하는 터키 시민들은 시키지 않아도 민족[民族]을 위하고
 국가[國家]를 유지하기 위해 자발적인 행동[行動]으로 탱크를 막았다.
 실패한 쿠데타이기보다 터키 시민의 위대한 승리[]이다.
총 맞아 가면서 탱크를 온몸으로 막아 쿠데타를 막았다.
 
한국의 전 정권도 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성공했던 적이 있다.
정의[正義]롭지 못한 쿠테타의 뒤끝은 어떠한가?
 
한국 사회는 지금 만약 쿠테타가 일어난다면 시민들이 나설까?
 자기 배만 부르면 그만인 사회[社會]가 한국 사회인 듯 싶다.높은 자리에서
해먹다가 들통 나면 멋지게 구속[拘束]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위정자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느 시민이 목숨을 걸고
 국가를 위기[危機]에서 구하려고 할지 의문이다.
 
우리나라 역사는 고대로부터 전 근대사에 이르기까지 하극상 역사가 많았다.
혼란[混亂]한 정국을 바로잡기 위하여 구국 이념으로 일어난 사건도 있고,
한 집단의 정권야욕으로 빚어진  사건 등 여러 모양의 하극상[下剋上]이 있다.
 
하극상이란 말은 밑에서 들고 일어나 위를 뒤엎어 버리는 것을 의미[意味]한다.
즉 계급이나 신분이 낮은 사람이 예의나 규율[規律을 무시하고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윗사람을 꺾고 오름을 말한다.
기존의 위계 질서[位階 秩序]를 침해하는 행위를 이르기 때문에 하극상이란
 도덕적[道德的] 비난의 의미를 갖기도 한다. 
 
그런데 하극상이란 말의 유래[由來]
서재필[徐載弼]박사가 안경을 낀 채 고종[高宗]앞에 나가 인사하자 안경을
 빌미로 이 단어가 생겼다고 한다.
 
 이런 하극상이 성공하면 천하를 얻고, 실패하면 모반죄[謀反罪]가 되어
 멸문지하를 당하기도 하였다.
이를 듯 그 의미가 별로 좋지 않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이런 불복종을
 통해서도 빛난 업적[業績] 남긴 사람들이 있다.
 
6·25 전쟁 때 우리의 국보인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김영환 장군이
 있었다.
김영환 장군은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으로부터 합천지역 폭격을 요구받았다.
하지만 거부[拒否]했다. 전시에 상부의 지시를 거부하다니  보통 간[肝]
 큰 게 아니었다.
김영환 장군은 당시 유엔군 사령관에게 해인사[海印寺]의 가치를 조목조목
 설명 [說明]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곳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팔만대장경이 있다고 역설[逆說]했다.
유엔 사령관은 “당신 같은 사람이 있으니 한국은 운 좋은 나라”라는 칭찬까지
받았다고 전해진다.
 
 천신만고[千辛萬苦]끝에 전란중에서 지켜낸 팔만대장경이 유네스코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登載]하였다.
 특히 해인사에 보관된 팔만대장경 이외의 경관들이 이번에 제경관으로 묶여
 기록유산으로 등재되고 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의미[意味]가 매우 크다.
 
또한, 독일의 어느 장군이 히틀러에게 불복종함으로써 빛난 업적[業績]
 남긴 사건 [事件]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였던 1944년 8월 9일 독일의 디트리히 폰 콜티즈
 중장은 파리 점령군 사령관으로 부임[赴任]한다.
 
말이 좋아 점령군이지, 이때는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이 파리를 향해
 진격[進擊]하고 있던 상황 [狀況]이었다.
히틀러는 “파리를 온전하게 넘겨주지 말라”고 주문했다.
파리를 쑥대밭으로 만들라는 뜻이다. 

그런 주문을 들은 준장은 어떻게 했을까. 17000명의 휘하 장병과 함께
연합군에 항복했다.

폰 콜티즈는 훗날 회고록[回顧-錄]에서
 “후세에 ‘파리를 파괴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사례[事例]는 많다.
공비소탕전에서 공비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地役이 공비 활동 근거지가 되는
사찰을 소각[燒却]하는 문제였다.
“태우는 건 하루면 족하지만 다시 세우려면 천 년도 부족하다”며 구례 화엄사를
소각령으로부터 지킨 차일혁 총경 이야기가 있으며,

 
오대산 상원사를 태우려는 국군 장교에게 “그럼 나도 함께 태우라”고 맞선
방한암 선사의 이야기도 감동을 전한다.
이렇게 ‘나쁜 하극상 좋은 하극상’ 이야기가 있다.
 
권위주의[權威+主義가 정점에 있었던 시절에는 명령 불복은 곧 반역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민주적 소통구조가 자리 잡은 오늘날에는 상급자의 냉정한 현실 인식이
전제되고 하급자의 충분한 토론[討論]이 개입된 명령에는 힘이 있게 마련이다.
 
영화 ‘크림슨 타이트’를 보면,
미군의 잠수함[潛水艦]이 직권으로 핵미사일 발사를 명령[命令]하지만,
전 세계를 3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뜨리면 안 된다는 부함장이
 충돌하는 사안이다.
함장의 지휘권까지 박탈하면서까지 선상 반란을 꽤했던 부함장, 그러나 영화는
그를 악인[惡人]으로 묘사[描寫]하지 않는다.

하극상[下剋上]에 대한 개념 규정도 달라져 가고 있는 상황이다.

2016년 7월 21일
석암 조헌섭


임을위한 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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