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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463)

봉곡선생 중건운시(鳳谷先生 重建韻詩)

by 석암 조헌섭. 2023. 8. 19.
 
봉곡선생 중건운시(鳳谷先生 重建韻詩)


이천(以天)봉곡 (鳳谷) 선생은 1560년 명종 15년 경신년에 태어나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 문하에서 글을 배워 덕업(德業)문장이 재보(宰輔) 재상(宰相)
 으로 서의 인망이 있었고 ,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 설학(雪壑) 이대기(李大期) .
 뇌곡(磊谷)안극가(安克家).  당암(戇庵) 강익문 (姜翼文).
 매죽와(梅竹窩)노극성(盧克成).
 도촌(陶村)조응인(曺應仁). 등 과 친하였다.
 
이천 봉곡(以 天鳳谷)선생은 효심이 지극하여 백형 수천(受天 )정와(靜窩)공을 따라
 6년 동안 부모의 산소 아래에 여막을 짓고  여묘 생활을 하여  세상에서
 쌍효자산(雙孝子産)이라 일컬어지며  그 사실이 읍지(邑地)에도실려 있습니다.
 
저서로는 계정집(溪亭集)이 있는데 설학(雪壑)이공(李公)이 쓰기를 계정의 벽에다
 쓰기를 송백(松栢)과 지란(芝蘭)에  비교되는데 어찌 일찍이 부귀에 대하여
 묻겠는가?
하늘가에는 구름이 떴다 없어졌다 하도다.   라고 하였으며  또 "계암에서 문을
 닫고 있던 때에 흩어지고 남은 해묵은 서책 새롭도다, 하였는데 십분 진정한 면목을 이해하였다.고 말을 할 수 있다.
현와이공(鉉窩李公)은 우리 존장의 그윽한 마음은 불 꺼진 재와 같은데 어떻게
 움직이는 주체가 되어 물가의 정자에다 드러내겠는가 ?
 
한가로운 구름은 끝없이 일어났다 사라졌다 하건만 .들에 사는 학은 세상일 잊고  마음대로 오가도다,,라고 하였다.그 후 1741년 영조 17년 신유년에 사림(士林)들이 덕곡사(德谷祠)를 건립하여
 제향(祭享)하였다.
 
그리고 또 성균관 제주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이 묘갈명 을 지었는데 이르기를
''재능은 아름답고 학문은 깊어 하늘이 반드시 기용할 터인데,발탁되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으니 바로 현명하다고  할만하며  비석에 새기기에 적합하도다. 라고
 하셨다.
 
여기 조헌섭(曺憲燮)이 올리는 봉곡선생 중건 운시 는 1799년 정조 23년 기미년에
 봉곡선생의 후학(後學) 선비들과 후손 (後孫)  조기영(曺基永), 조철승(曺哲承)등
 41명의 시(詩)가 기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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