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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124)

고종의 초상

by 석암 조헌섭. 2012.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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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고종의 초상

 권근영
문화스포츠 부문 자

흐릿한 유화 속 남자는 다소곳이 두 손을 모으고 서 있다. 용과 태극 자수 흉배를 단

 황색 곤룡포가 신분을 증명할 뿐 군주다운 권위와 위엄은 그림 속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고종(1852∼1919)은 제국주의의 압력 속에서 근대국가 체제를 갖춰야 했던 전환기의 왕이자 황제였다. 이 그림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 중 하나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화가 휴버트 보스(1855∼1935)가 그렸다.

 조선시대 임금의 초상, 즉 어진(御眞)은 지엄한 분위기 속에서 그려졌다.

 최고의 화원만이 이를 그리는 어진화사가 될 수 있었으며 어진 자체를 임금 대하듯

 했다. 그러나 이 그림 속 47세 고종의 포즈는 꼭 스냅 사진 같다.

 그림은 길이 2m 가까운 크기의 전신상이다.

 휴버트 보스, 고종 황제 초상 부분, 1899년

보스는 네덜란드계 미국인 초상화가다. 지인에게 보낸 편지엔 당시를 이렇게 기록했다. “궁전에서 황제를 그리는 동안 저는 늘 한 무리의 내시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악마라고 여긴 것이 분명한데 제 그림이 혹 진짜 살아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여 이젤 뒤에서 엿보고 있었습니다…저는 황제의 전속 악사 및 무희들이 춤으로 흥을 돋우는 궁정만찬에 몇 번 참석해 이 나라 인종(人種)을 연구할 좋은 기회를 가졌습니다. 저는 황제의 선물, 그리고 황제와 그 백성들의 장래에 대한 슬픈 예감을 안고

떠났습니다.”

그는 궁에서 고종과 황태자(순종)를 그렸고 숙소로 돌아와 기억을 더듬어 황제 초상화를 한 점 더 그렸다. 남아 있는 것은 바로 그 사본이다.

 서울에 두고 간 초상화는 1904년 덕수궁 화재 때 소실됐다. 보스는 가져간 황제 초상을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의 미국관에 출품했다. ‘회화관(繪畵館)’이 아니라

 ‘인종과 사회관’에 걸렸다. 일제는 1907년 7월 20일 대한제국의 황제를 순종으로 갈아치웠다. 강제 양위 뒤 12년간 고종은 한층 더 쓸쓸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전으로 이 땅엔 갑작스럽게 해방이 왔다.

 그림이 서울에 돌아온 것은 1982년 한·미 수교 100주년 기념전 때였다.

 당시 소장자는 보스 2세. 국립현대미술관은 15년 뒤 전시를 준비하며 다시 이 초상화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그새 주인이 바뀌었다. 재미 사업가 마이크 신이 경매에 나온

그림을 구입했다. 미술관은 한동안 이 작품을 빌려와 갖고 있다가 2007년 미국으로

 돌려보냈다. 구입 예산 100만 달러, 당시 돈으로 8억원이 없었던 탓이었다.

 스러져 가는 제국의 황제를 그린 초상화는 아직도 제자리를 못 찾고 있다.


                                                                     2012.08.09

                                                                     권근영 문화스포츠 부문 기자

 

커피 한 잔으로 시름을 풀었던 고종 임금

소외계층 대상 ‘연극과 함께 하는 역사탐방’ 진행

시민리포터 신성덕 | 2012.08.01

[서울시 하이서울뉴스] 서울문화재단에서는 문화사각지대에 있는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연극과 함께 하는 역사탐방'을 진행하고 있다. 방학특별프로그램으로 7월 25일부터

 8월 18일까지 운영하며 가을프로그램은 9월 5일부터 10월 26일까지 이어진다. 

방학특별프로그램 첫째 날에 덕수궁 정관헌에서 있었던 '연극과 함께 하는 역사탐방'을 동행 취재했다.

 

'고종의 알싸한 커피향'이라는 매력적인 제목의 연극을 보면서 시작된 행사에는 지역

아동센터 세 곳에서 70여 명의 학생과 일반인이 모여 성황을 이루었다.

 참가한 학생들은 기념으로 나누어 준 수첩과 볼펜 그리고 덧신을 받고 정관헌에

 입장을 한다.

 

드디어 연극이 시작이 되었다. 고종이 중명전 뜰을 거닐고 있다. 엄귀인과 내관이 고종을 찾으며 등장 한다. 풍경을 내려다보는 고종에게 곁으로 커피를 든 나인이 다가오고 이내 고종은 내부대신 민영환과 함께 커피를 마신다. 민영환이 말한다.

 "백성들은 커피를 검은차라고 하거나 서양 한약처럼 쓴 향이 난다 하여 '양탕국'이라 부르는데 폐하에게는 커피가 각별한 힘을 발휘 하나 봅니다."

 

고종은 러시아공관으로 피신하는 날 밤에 처음 마셔본 커피가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커피를 나누며 고종 황제와 민영환, 내관, 나인들이 커피에 관한 연기에 집중한다.

 누구의 위로도 없이 커피 한 잔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칼날 위에 혼자 서 있는 고종 황제에게 민영환은 "부강한 나라를 만들 때까지 부디 강건 하옵소서"하고 막을 내린다. 연기자들은 서울연극협회 회원으로서 열연을 하였다.

 

연극을 마치고 전문가의 해설이 있다. 오늘의 해설은 네티즌들 사이에 '쏭내관'으로 더 유명해진 송용진 작가이다. <그는 궁궐기행1,2>, <박물관기행>, <왕릉기행>의 작가로서 폭넓은 역사 지식을 쉽고 재미 있게 설명한다. 면목지역아동센터 황현혜 교사는 "30분간의 짧은 시간이지만 고종 황제와 커피에 관한 이야기를 연극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여름방학을 맞아 유익한 시간을 보낸 날이다"라고 말했다. 진수아 학생은 "덕수궁엔 한 번 와 보았지만 '정관헌'에 대하여 잘 몰랐는데 연극을 통해 쉽게 이해 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한다.

 

어린이들은 12시부터 덕수궁미술관을 방문, 전문해설가로부터 네덜란드의 작가 후버트 보스가 그린 '서울구경'. 오지호의 '남향집'. 구본웅의 '친구의 초상', 박수근의

 '할아버지와 손녀' 등의 그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어린이들은 오후 1시까지 덕수궁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점심식사 후 오후 2시에 프로그램을 마쳤다.

서울문화재단 조민지 주무관은 "연극 관람, 미술관 관람, 박물관 탐방, 역사유적지 퍼즐 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 경제적 어려움으로 문화예술의 접근이 어려운 문화소외 계층의 문화만족도를 높이는 데 주력해 나갈 것이다"라고 전했다.

 

정관헌은 그 이름처럼 궁궐 후원의 언덕 위에서 '조용히 궁궐을 내려다보는' 휴식 공간이다. 위치도 함녕전 뒤에 있어 전통 궁궐에서 후원의 정자 기능을 대신 할 수 있는 건물이다. 일본의 압력과 서양 열강의 이권 다툼 속에서 살얼음 같은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고종은 정관헌에서의 커피 한 잔으로 시름을 풀었다.

 정관헌에서는 8월 18일에 여름방학 마지막 강의가 있다. 전쟁의 암운이 드리운

 대한제국, 고종은 티타임을 통해 비밀스런 외교협의를 갖는다. 바람 앞의 등불같은

 대한제국을 구하기 위한 '고종의 은밀한 외교 이야기'가

 연극과 해설로 전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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