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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124)

황진이

by 석암 조헌섭. 2011.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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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진이(黃眞伊)1520,?-1560,?

 

 

 

 조선 중종 때의 명기 본명= 황진(黃眞)

                           별명= 진낭(眞娘)

                           기명= 명월(明月)

그는 서민의 딸로 태어나 아름다운

용모와 총명으로 교방의 동기(童妓)

로서 대성하여 시,서,언,율,(詩書言律)

 이  당대에 돋 보였으며 문인 석유(碩儒)

와  교유하여 그들을 매혹(魅惑) 시켰다.

자부심이 강하며 서화담(徐花潭)

박연폭포(朴淵瀑布)와 더불어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 하여 유명하다.

 

 

 

문인들과 교루하여 10년 동안 수도에 정진하여 생불(生佛)이라 불리던 천마산(天馬山)

지족선사(知足禪師)를 유혹 하여 파계 시키고 벽계수(碧溪守)란 시 한수로 도취

시켰다는 일화도 있다.

    

 

 벽 계 수

청산리 벽계수(靑山里 碧溪水)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 하면  다시 오기 어려 워라

 

명월이 만공산(明月 滿空山) 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국문학 사상에 있어서 진 이의 위치는 전통적인 민족의 리듬으로  기생집 여성의

한(恨)을 시조로 표상(表象) 한데에 있다.

 

그의 작품은 기교적 이면서도 자유로이 애정을 노래 하고있다.

해동가요 ,청구영언 ,가곡원류 ,대동풍아,  꿈 ,등이 시조에 실려있다.

 

 

 

 

 

황진이의 엄마는  진현금 이란 아전의 딸로 그다지 미인은 아니었다

어느 날 빨래터에서 지나가던 황진사의 아들과 서로 좋아 정을 통했지만, 결혼은 할 수

없었다.

이후 진현금이 딸을 낳았는데 바로 그 딸이 황진이다

그는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지만 학문을 익히고 예의범절을 배웠다.

10살 때 한문과 고전을 읽어내고 한시를 지을 많큼 재능을 보였으며 서화에도 능하고

가야금이 뛰어 났다고 한다.

사서삼경을 읽고 시,서,언,율,에 뛰어났으며 날이 갈수록 출층한 용모로 더욱 유명 해진다.

 

15살 되던 해 글을 읽고 있는데 지나가던 상여가 환진이 문앞에서 멈추어 움직이지 않았다

바로 황진이를 사모하다 상사병으로  죽은   동내 총각의 상여였던 것  그러자 그녀는

소복을 입고 밖으로나가 자기 치마를 벗어 관을 덮어주며 슬프게 곡을 하였더니

그제서야 상여가 움직였다고 한다.

이로 인해 그녀는 기생에 투신하게 된다

 

당대의 대학자 서경덕을 유혹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여 사제관계(師弟關係)를 맺었다.

서경덕을 사모했던 그는 그가 죽고 난후  서경덕이 닿았던 곳을 두루 찾아 다녔다고 한다. 

금강산, 지리산, 속리산, 묘향산,등 그의재취가 남은곳은 그의 다 가 보았다 

여러 곳을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담 밖에서 남자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람은 서울의 풍류객 이시종 이겠다 싶어 그를 불러들였다.

그러자 이시종이 함께 살자며 설득하자 황진이는 망설이다가 40살이 되는 6년 동안 계약

 결혼을 하였다.

6년이 지나자 이시종은 그녀를 붙잡았으나  진이는 살림을 정리하고 송도로 돌아갔다고

한다. 

황진이는 이처럼 일생을 자유분방하게 자기 의지대로 지내다가 40세 이후 불행이도 병에

걸려 죽게 된다. 

그녀는 죽을 때 내가 죽거든 관을 짜지 말고 개미, 까마귀,솔개,의 먹이가 되도록 해달라고

부탁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2011년   8월  20일

 

                                                                                         조 헌 섭 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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