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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인물(72)

세 번째 총리 임기 앞둔 메르켈

by 석암 조헌섭. 2013. 9. 28.

"메르켈은 모든 걸 삼켜버린다" … 진보 이슈도 자기 것으로

[중앙일보] 입력 2013.09.28 00:05 / 수정 2013.09.28 01:30

[세계 속으로] 세 번째 총리 임기 앞둔 메르켈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 22일 베를린의 기독교민주당 당사에서 총선 출구조사

 결과가 나온 직후 승리를 자축하는 축배를 들고 있다. [베를린 로이터=뉴시스]

 


“오늘은 즐기고 기뻐해요.”

 

독일 총선 투표일인 지난 22일 기독교민주당(기민당·CDU) 당사인 콘라트 아데나워 건물.

승리를 자축하는 선거파티(Wahlparty)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지지자들에게 던진

인사말이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폴커 카우더 원내대표 등 기민당 지도부들이 메르켈 총리 주위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지지자들은 ‘앙기(Angie·메르켈 총리의 애칭)’를 외치며

 환호했다. 필자를 포함해 700여 명의 내외신 기자·참관인들과 당직자 등 총 3000명이

 참석한 선거파티는 북새통을 이뤘다.

 샴페인과 맥주, 소시지와 빵을 무료로 제공했다. 메르켈이 이끄는 기민당·기독교사회당

(기사당·CSU) 연합의 득표율이 4년 전보다 무려 8% 포인트 더 높아졌다.

 이날 오후 4시30분 시작한 사회민주당(사민당·SPD)의 선거파티에도 필자는 참석했다.

사민당은 맥주를 2유로에 팔았고, 소시지나 빵을 제공하지 않았다. 6시 정각에 출구조사가

 발표되자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비록 제1당의 성적을 내지는 못했지만 기민당·기사당과 자유민주당

(자민당·FDP)의 연정을 막았기 때문이다. 사민당의 총리 후보였던 슈타인브뤼크는 당

 지도부와 함께 참석했다. 선거파티는 축제의 장이었다. 독일 선거 문화의 속살을

 볼 수 있었다.

 ‘무티’.

앙겔라 메르켈에게 붙은 수식어다. ‘무티(Mutti)’는 어머니(Mutter)의 애칭으로 우리말로

 표현하면 ‘엄마’라는 뜻이다. 독일 언론들은 메르켈의 리더십을 자상하고 다정한

‘무티 리더십’으로 표현한다.

 총선은 메르켈의 독무대였다. 온통 관심이 그에게 쏠렸다. 일부에선 역대 선거 중

 가장 미지근한 선거라는 혹평도 있었다. 메르켈 통치 7년의 성적표에 국민들은 높은

 점수를 줬다. 독일 경제가 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 성향의 신문 쥐트도이체차이퉁(Sueddeutsche Zeitung)은 선거 이튿날 경제면

 머리기사 제목을 다음과 같이 뽑았다. “독일은 지금보다 더 부유한 적이 없었다.”

유례없는 경제 호황 이끈 주인공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에서 셋째)와 기독교 민주당

 

당직자들이 지난 22일 베를린 당사에서 춤을 추며 기뻐하고 있다. [베를린 신화=뉴시스]
 독일 국민 70%가 현 경제 상태에 만족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중산층과

 서민의 지갑이 두툼해지며 그들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되어가기 때문이다.

독일 1인당 국민소득(GNI)은 4만1900유로, 물가상승률은 선진국에서 가장 낮은

 1.3% 수준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유럽 남부 국가들의 재정위기로 세계 경제가 휘청거릴 때

독일경제의 강한 진면목이 드러났다. 대다수 국가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가운데

독일만 플러스 성장과 경상수지 1등 국가로 독야청청하고 있었다. 경제 호황이 메르켈

승리의 1등 공신이었다.

두 차례 세계대전과 나치즘, 공산주의를 겪은 독일인의 머리에는 지금 안정과 번영이

 최고의 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

 메르켈은 유로화 위기를 극복하고 유럽연합의 끈을 강화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는 그리스· 스페인 등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들에 재정건전성을 위해 허리끈을

 졸라맬 것을 주문했다.

이들 국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세금 인상을 하지 않음으로써 독일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했다.

“제2투표권(독일식 비례대표제)을 자민당에 주어서는 안 됩니다. 기민당에 몰아주세요.”

 메르켈이 선거 유세 막판에 유권자들에게 호소한 메시지다. 몰락해 가는 자민당은

 연정 파트너인 메르켈에게 기대어 제2투표권에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메르켈은

매몰차게 거절했다.

 부자 감세를 주장하고, 더 많은 시장의 자유를 외치고, 대기업을 위하는 정책을 내건

자민당의 몰락은 예견된 일이었다.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책을 대다수 독일인은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심을 거스른 자민당은 역풍을 맞았다.

 1949년 건국 이후 처음으로 의회에서 방출된 것이다.

 자민당은 거대 정당인 기민당과 사민당 사이에 캐스팅 보트를 쥐고 영향력을 발휘한

 정당이었다.

 그러나 시대 흐름과 국민 여론을 역행하는 정책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정당이 되었다.

 독일상공회의소 의장인 에릭 슈바이처는 “자민당이 다시 국회로 입성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 이라고 전망했다.

 선거 패배 직후 자민당의 후폭풍은 거세다. 베트남 출신 입양아로 경제부 장관과

자민당 총수에 올라 ‘정치 신데렐라’로 주목을 받던 필리프 뢰슬러가 선거 다음 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원내대표였던 라이너 브뤼덜레도 실업자 신세가 됐다. 독일 언론들은 총선 보도에서

 메르켈의 승리와 자민당의 몰락을 가장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2005년처럼 사민당과 대연정 예상

 ‘Angela Merkel isst Alles’.

 ‘메르켈 총리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는 뜻의 독일어다. 그는 모든 이슈와 정책의

 용광로였다.

 

 야당이 제기한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하는 정책을 받아들였다. 사회보장제도도

 강화했다. 녹색당의 가장 중요한 이슈도 삼켜버렸다.

 독일에서 원전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 역시 전격 받아들여 2022년까지

 세계 최초로 탈핵을 선언했다.

베를린에서 만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은 대통합의 리더십

이라고 말했다. 보수와 진보라는 기존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국익과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기에 국민의 지지도가 높다는 설명이다.

 메르켈은 ‘라인 강 기적’의 설계자인 에르하르트 총리가 제시한 ‘사회적 시장경제’를

 강화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어린이 보육 지원의 강화다. 진보 정책까지 수렴해 지지 세력을 넓혀간 것이다.

사회복지, 기회 균등, 금융 규제, 공동체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떻게 동독 출신의 여성 정치인이 남성들이 우글거리는 보수 정당

 기민당의 총수가 되고, 사민당 슈뢰더 총리를 무너뜨리고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로

 당선되었을까.

 또 영국의 마거릿 대처를 넘어서는 유럽 최장수 국가지도자로 우뚝 설 정도로 국민들의

높은 사랑을 받는 비결은 무엇일까. 기민당의 자매당인 기사당 출신으로 재무부 차관이자

한·독포럼 회장인 코식 의원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메르켈의 리더십이 가장 중요한

 총선 승리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메르켈은 동독 정권하에서 어떻게 생존하고 살아남아야 하는지를 터득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당시 35세였던 물리학자 메르켈을 다른 세계로 인도했다.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민주개혁’ 운동에 동참했고,

서독의 기민당에 입당해 91년 연방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이어 통일의 주역인 헬무트 콜 총리가 메르켈의 역량을 파악해 연방여성청소년부

장관과 환경부 장관으로 발탁한다. 98년 정치 거인 콜이 사민당의 젊은 정치인

 슈뢰더에게 패배하면서 메르켈에게 기회가 왔다.

 99년 정치자금 스캔들로 기민당이 최악의 위기에 처하자 메르켈은

기민당 당수에 도전해 당권을 잡는다.

메르켈은 정치자금 스캔들에 연루된 헬무트 콜 전 총리를 정치 일선에서 은퇴시켰다.

 이때 그에게 주어진 별명이 ‘남자 정치인의 살인자’ ‘콜의 저격수’였다.

 여기서 그는 단호함의 리더십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정치적 파워는 풀뿌리

 당원과 국민의 지지에 기반하고 있다. 보스(boss) 몇 명의 흥정에 의존하는 정치문화를

 청산하고 자신의 권력 기반을 만들어 나갔다. 전당대회에서 당원 지지도는 90%를

 넘었다.

메르켈은 성공이라는 단어 사용을 즐긴다. 이번 독일 총선의 슬로건도 “독일을 위해

 함께 성공하자”였다. 국가 성공을 우선순위에 둔다.

 2005년 메르켈은 사민당과의 대연정 협상에서 대통합 리더십을 보여 여러 현안을

 원만하게 타결했다.

그는 복지와 원전 폐쇄 등 사민당의 가치를 받아들였다. 외교부·재무부·경제부 등

주요 부처의 장관 자리를 사민당에 넘기고, 장관 수도 한 자리 더 양보했다.

총리 취임사에서 전임자 슈뢰더 총리의 개혁 정치를 공개적으로 칭찬했다.

계파나 당파보다는 국민과 국익의 성공이 우선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대통합의 통 큰 정치를 한 것이다.

 메르켈이 향후 넘어야 할 산이 있다면 연정 구성이다. 다시 사민당과의 대연정이

 예상된다. 일각에선 처음으로 녹색당과의 연정도 거론한다.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에 대한 비판도 있다. 녹색당 창당의 주역으로 최고위원을

 지냈고 현재 ‘독일 환경과 발전의 포럼’을 이끌고 있는 유겐 마이어는 “미국식 개인

정치인의 인기에만 의존하는 정당은 미래가 어둡다”며 “총선에서 기민당은 무기력했고

 메르켈만 내세운 선거였다”고 말했다. 정당정치가 허약해지면 민주주의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메르켈의 리더십과 헬무트 콜 총리의 리더십을 비교하기도 한다. 헬무트 콜은

자신을 낮추고 기민당을 내세워 콜 자신은 별 인기가 없었지만 18년이라는 최장기

집권의 신화를 썼다.

 반대로 메르켈은 본인을 내세워 인기몰이를 하지만 기민당의 지지도는 내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메르켈이 주도한 선거 캠페인이 미국식 대통령 선거를 닮아간다는 비판도 나온다.

독일 정당이 노쇠해지고 젊은층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낮아지고 있는 현상에 대한

 우려도 있다.

 독일 선거 유세장을 방문하면서 그런 점을 느낄 수 있었다. 기민당이나 사민당의

 선거 유세장엔 나이 든 사람이 많았다. 독일 정당과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결국 민주주의는 정당이 얼마나 활발하게 토론하며 비전과 프로그램을 제시하는가,

 미래의 주역인 젊은층이 얼마나 활발하게 참여하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베를린=김택환 경기대 교수·전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