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랑하는데 하나로 맞이함이 경[敬]이다.
부부는 한 쪽의 장점[長點]으로 단점[短點]을 감싸줘야 한다.
맹자 진심장 상편[孟子 盡心章 上篇]에 이르기를
식이불애시교지야[食而不愛 豕交之也]음식을 먹이되 사랑하지 않으면 돼지처럼 여김이요.
애이불경수축지야[愛而不敬 獸畜之也]사랑하되 공손하지 않으면 짐승으로 기름이다.
신앙생활[信仰生活]을 하는데도 사찰[寺刹]이나 교회[敎會]에 시주나 하고 헌금이나
하면 되는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이는 껍데기 교에 지나지 않는다. 하느님의 뜻을 헤아려 뜻대로 살려고 힘쓰는
신앙[信仰]이라야 한다.
공자께서는 제자 번지[樊遲]가 인[仁]을 물었을 때 대답하기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아[自我]를 죽여 인[仁]을 이룬다.
살신성인[殺身成仁]하여 인[仁]을 이루는 안중근[安重根], 정몽주[鄭夢周],
사육신[死六臣]등도 있었다.
예수는 국가와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 사랑이 더 큰 사랑이 없나니…
공자[孔子]는 위나라 대부 공손교[孔孫敎]를 말하면서 군자의 도[道]는
공[恭], 경[敬], 혜[惠], 의[義] 네 가지가 있다.
공[恭]이란 내가 움직임이요. 경[敬]이란 위를 섬김이요.
혜[惠]란 백성을 기름이요. 의[義]란 백성을 부림이다.
이 세상에서 다른 것은 다 없어도 자기를 알아주는 벗 하나만 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마음 놓고 사귈 벗이 없다.
친구라면 농담을 하여도 괜찮다는 것으로 생각 한다. 이것은 벗이 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친구에겐 경이불위[敬而不違]하고 농담[弄談]을 하지 말아야 한다.
예기 곡례편[禮記 曲禮篇]에 압이애지 왜이애지[押而敬之 畏而愛之] 라
가까워도 공손[恭遜]하고 어려워도 사랑한다.
부부[夫婦] 사이에도 서로가 몸을 맡겼다고 함부로 하면 안 된다.
부부 사이에도 서로 애지중지[愛之重之] 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부부는 마치 가정이 권투 싸움 하는 링처럼 생각하고 상대방[相對方]의
허점과 약점을 찾아 공격[攻擊]하고 한다.
이것이 무슨 부부라 할 수 있겠는가, 부부란 나의 장점으로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절장보단[絶長補短]해주는 것이다.
부부의 사랑은 애경[愛敬]에 있는 것이지 쟁음[爭淫]에 있는것이 아니다.
얼나로 거듭난 인자[仁者]만이 능히 사람을 좋아할 수 도있고 미워할 수도 있다.
나의 생각은 지나치게 친절한 것도 잘못이고 지나치게 미워하는 것도 잘못이다.
친압[親押]이나 모멸[侮蔑]은 덕이 모자라는데서 압[押]일어난다.
친압[親押]처럼 간사[奸詐]한 것도 없고 모멸처럼 어리석은 것도 없다.
사람이 인격[人格]이 중심이 되어야지 재간이나 외모가 중심이 되면 친압과 모멸은
막을길이 없다.
사람은 장차 무엇이 될지 모른다. 모두가 예수나 석가가 될 수 있는데 어떻게
멸시[蔑視]할 수 있겠는가?
성인[聖人]을 존경하는 것은 쉬운데 소인을 모멸[侮蔑]하면 그들이 일을 안해준다.
소인들도 사랑을 받았다고 개을러지면 또 안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서로 애경[愛敬]하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
벗을 사귀는 것이 인[仁]을 돕고자 함이라면 짝을 맞는 것은 허물을 줄이고자 함이다.
昔暗 조 헌 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