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이야기

파경(破鏡)

by 석암 조헌섭. 2015. 4. 22.
728x90
반응형
 
파경(破鏡)
때는 바야흐로 음력 춘삼월 [三月] 호시절[好時節] 청춘남녀의
 결혼[結婚]시즌이 돌아왔다.
잘 아는 지인 [知人]의 결혼식에 참석해 주례사[主禮辭]를 듣다 보면
만[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지나온 내 삶의 굴곡 때문에 해로동혈[偕老同穴]할 가능성을 점쳐보는 
습관[習慣]이 생겼다. 
 예식장에서 새 출발[出發]하는 신랑과 신부를 보면 한없이 아름답고
 행복[幸福]해 보이는 순백의 모습이다. 

선남선녀[善男善女]로서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동행[同行]하며
행복을
누리기를 바란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혼[離婚]이라는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는 부부[夫婦]가 얼마나 많은가? 

엊그제 결혼[結婚]하고서 몇 달 지나지 않아 성격[性格] 차이로 이혼을
 한다고 야단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사랑하기 때문에 이혼[離婚]한다고 말한다.
이런 불행한 처지[處地]를 우리는 파경[破鏡]이라고 한다.

파경의 원래뜻은 깨어진 거울, 이저러진 달, 부부의 해어짐을 비유한
말이다.
이 중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개념은 부부의 이별[離別] 혹은 
이혼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파경이라는 말의 시원[始原]과 유래는 어디서 기인했을까?
진의 황제인 후주(後主) 진숙보(陳叔寶)는 나라가 망해 가는데도 주색에만 빠져 있었다.
중국의 진[陳]나라는 수[隨]나라의 침략으로 존망[存亡]의 위태로움에

 처해 있을 무렵이었다.
 
진의 관리였던 서덕언[徐德言]은 수군이 양자강 북쪽 강안까지 다다르자
지극히 사랑하던 「당시에 진나라 태자의 사인(舍人)이었던
서덕언(徐德言)의 부인은 진숙보의 여동생으로 낙창(樂昌)공주에
봉해졌으며, 재주와 미모가 뛰어난 여인이었다.

예쁜 아내의 앞날이 몹시 걱정되었다.

 왜냐하면, 당시 패망국 여인들은 승전국 군대[軍隊]의 노리개로
 전락[轉落]하기 때문이다.
 
수군이 진의 도성을 함락시키기 위하여 파죽지세[破竹之勢]로
공격을 해와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風前燈火]에 이르자 서덕언이
 아내에게 말했다.

“이제 나라가 멸망[滅亡]하면 당신도 무사[無事]하지 못할 것이오.
만약 적에게 발각되면 온갖 고초[苦楚]를 당하여 생사를 장담할 수 없소”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을 알고 만약을 위하여 거울을 쪼개서 반쪽씩
 간직하자고 재안[裁案] 했다.
 
그리고 새해 정월 보름날이 되면 장안의 시장에 거울을 내다 팔라고
하였
다.
만일 그때까지 자기가 살아 있다면 보름날 무슨일이 있어도
시장에
 찾아가서 만날 것이라는 약조[約條]를 했다.

부부[夫婦]는 깨진 거울 조각인 부절[符節]을 나누어 간직하고 해어졌다.
그 후 진[陳]나라는 수[隨]나라에 패망[敗亡]하고 서덕언[徐德言]의
 아내는 수의 대장군인 양소의 집으로 끌려가 그의 비녀가 되었다. 
 
서덕언의 아내는 항상 깨진 거울을 들여다보며 남편을 그리워했다.
한편, 서덕언은 온갖 고초를 겪으며 장안에 입성[入城]하여 어렵게
모진
목숨을 연명하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버거운데도 서언덕[徐德言]은 다음 해 정월 보름날 시장
거리로
나가보니, 한 노파가 거울을 파는데 깨진 거울이 있음을
보고
 놀랐다.

 
 그는 자기의 깨진 거울을 맞춰보니 틀림없이 아내의 것이었다.
아내를 만난 것처럼 기뻤지만, 노파로부터 아내의 사연을 전해 들
 남편은 애틋한 그의 마음을 시[詩]로 적어 노파에게 전했다. 

 악창공주는 남편의 시[詩]를 보고 통곡을 금할 수 없었다.
 다음은 시의 내용[內容]이다.
 
경여인구거(鏡與人俱去)--거울이 사람과 함께 가더니
경귀인불귀(鏡歸人不歸)--거울은 돌아왔으나 사람은 돌아오지 않네
무복항아영(無復姮娥影)--항아의 그림자는 다시 없고
공류명월휘(空留明月輝]--밝은 달빛만 헛되이 머무네. 


여기까지 생각한 악창공주는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후에 양소[楊素]가 그 원인을 알고 그들 두 사람의 참된 정에
감동하여
사람을 파견해 서덕언을 불러와 두 사람을 만나게 해 주었다. 

서덕언은 의식주가 편안한 아내를 보고 마음이 놓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면(卿面)을 다시 보니 마음은 이미 족하오.
 금생[今生]에 다시 장가를 가지 않을 것을 맹세하오.

강남으로 돌아간 후 불문(佛門)에 들어가 홀로 청등(青燈)을 대하며
일생을 마칠 것이오." 말을
마치자 두 사람의 얼굴은 눈물로 가득했다.
 양소[楊素]가 그 모습을 보고 매우 동정하여 말했다.

"당신들의 정이 참으로 깊다 생각하여 노부는 악창공주를 서공자에게
다시 주기로 결심했소.
 당신들이 파경중원[破鏡重圓]하게 하겠소."
 부부[夫婦] 두 사람의 파경중원[破鏡重圓]과 양소의 관대한
태도[態度]는
 사람들을 감탄[感歎]하게 하였다.

2015년 4월 22일
석암 조헌섭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경고현[秦鏡高懸]  (0) 2015.05.12
팔반가(八反歌 )  (0) 2015.05.08
파장문[破墻門]  (0) 2015.04.16
대명동 우리 동내  (0) 2015.04.11
만리장성[萬里長城]  (0) 2015.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