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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대명동 우리 동내

by 석암 조헌섭. 2015.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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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동 우리 동내"

★대명1동 발자취
1945년 03월 5일 대구 부령에 의거 대명1동으로 발족
1975년 10월 1일  행정구역 개편 대명 1,9,10동으로 분 동
1979년 01월 1일  행정구역 개편 대명 1,11동으로 분 동
1985년 11월 1일  행정구역 개편 대명 1,10동으로 분 동

★지역 특성
주요 간선 도로를 접한 주거지역으로서 의식 수준이 높은 지역임
생활 수준이 평준화되어 시정추진이 원할한 편임
경제활동이 타 관내에서 이루어져 지역 내 관심도 다소 결여  









안지랑이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예로부터”

앉아서 물맞고.

앉아서 비 맞고.

앉아서 놀기 좋다.는 뜻의

“안좌령(安座嶺)” 에서

유래되어 지금의 안지랭이가 되었다고 한다.

양녕대군이 피난 와 머무르면서 살펴보니
대구가 살기 좋은 곳이고.

자신이 편히 있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안지랑 4거리에서 바라본 앞산



무궁화 놀이터





무궁화 놀이터
 

대덕 문화회관





 
앞산 네거리 벚꽃



보문사 경내 목련









안지랑 골 보문사 경내 목련과 벚꽃



앞산 순환도로 벚꽃







안일사 대웅전
안지랑골에 있는 안일사는 927년 영조가 창건하였으며
고려 태조 왕건이후 백제 견훤에게 패하여 은적사에서 쫓기어 도망가다
안일사 바로 위왕굴에 숨었다가 견훤이 지나간 후 안일암에 내려와
3개월 동안 편안하게 지냈다고 해서 안일암이라 하였다. 

또한, 1915년 1월 윤상태 서상일 이시영 등 13명이 이곳에서 목숨을바쳐
국민 회복 운동을 할 것을 서약하고 비밀결사대 중앙 총부를 조직 하였으며,
1919년 3월 1일 독립운동을 하며 상해임시정부를 도울려고 군자금 조달
운동을 벌인 일제 강정기하에 항일운동의 중심이 된 유서깊은 사찰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저는 합천 박물관이 있는 쌍책면 덕봉리, 앞,뒷산 장대를 걸쳐도 되는
골짝 촌놈 인데,  1979년도 대구로 와서 현재 사는 곳은 1945년 03월 5일
대구 부령에 의거  발족한 대명동 앞산 자락 밑에서 살고 있으며

1994년 4월 24일 지리산 천왕봉에서 대명1동에 거주하는 산행에 뜻있는
분과 부부동반 대덕산악회를 발족하여 20여 년 명산을 오르다 보니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 허물없는 이웃사촌이 되어 돈독한 정을 쌓아가고 있다.

또한,
30년 전부터 매일 아침 5시면 앞산 중턱 안일사까지 갔다 오면 07시
하루하루의 생활을 즐겁게 하는 곳, 앞산이 고향만큼 정든 곳이랍니다.

4월 둘째 주말 아침 내가 사는 우리 동내 한 바퀴 돌며 휴대폰으로
 찍어보니 양지쪽엔 벚꽃이 떨어졌고 음지에는 이제 만발인 사진을
올려봅니다.

  2015년 4월 11일  석암 조헌섭
백두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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