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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파장문[破墻門]

by 석암 조헌섭. 2015.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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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破墻門]

세월호 참사 일주기이네요. 희생자를 애도하면서, 
초등 5년 중퇴 후 친부와 계모에게 추운 겨울날 4형제와 어머니는 집에서
쫓겨나 14살 때 110원 들고 상경, 자수성과형(自手成家型) 경남기업 회장

매출 1조 5,000억 원을 일궈내어 34억 원의 장학재단을 설립 2만여명에
장학금을 전달하였지만, 비정한 정치현실에 자살을 택한 성완종
전 의원의 정경유착의 끝이 온 나라를 진동 시킨다.

선진당 원내총무(성완종)새누리당과 합당까지 하며 박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선 사람을 사정 대상 사실 1호인 총리가 나를 1호로 삼았으니 억울하겠지.
북한산에서 목매어 자살할 때까지 전국에 땅 한 평 없이 아들 집 한체
못 사주고 죽는 날까지 변변찮은 음식에 500원 짜리 목장갑 끼고 목매어 자살..
남을 도울 줄만 알았지 지 주머니 챙기지는 않았다.

추측건데 차떼기에서 보듯 워크아웃 기업이 150억 주었다니 대기업은 얼마나..
어찌 보면 썩은 정치의 현실에 희생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야를 막론하고 썩은 정치를 국민들이 도려내야 할텐데 유권자가
키워주고 있으니… 우리모두 책임일 듯 싶다. 

'방산비리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 1,100억 가로챈 혐의 구속기소'
군 장성(將星)들의 1,981억원 비리 적발에 23명 방산비리!
이따위 예비역 장성들의 조국(祖國)은 뒷전이고 북한을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러고도 하급 장교, 일반병들을 탓할 자격(資格)있는가?
그대들이 국민 세금(稅金) 삥땅쳐 배부르니, 목숨 바쳐 조국지킨

순국선열(殉國先烈)에게 부끄럽지도 아니한가? 

“김기종 에게 칼 맞았어야 했던 것은 미국 대사가 아니라”
방산비리 예비역 장성 들 아닌가?
옛날 벼슬아치가 집무(執務)하는 동헌(東軒) 한쪽 구석에는 눈에 잘 띄지
않을 만한 허물어진 담이 있었다.

홀몸으로 임지(任地)에서 벼슬살이하는 수령에게 일가친척 친지(親知)가
찾아오게 마련인데, 연줄로 인한 방문(訪問)은 동헌의 정문을 통해
들어올 수 없게 하였다.

찾아오는 일가 친척들을 위해 변칙적(變則的)으로 담장을 조금 흘어두는
것을 파장문[破墻門]이라 했다.
즉 옛 조상들이 부정부패를 둔 연결고리를 단절(斷絶)하기 위한 의지의
표시였다.

조선 중종 때 훈구파로 기묘사화(己卯士禍)를 주도한 심정(沈貞)에게

심의(沈義)라는 아우가 있었다.
그는 술수로 권력을 추구(追求)하는 형과는 달리 재주를 들어내지 않고

벼슬을 탐하지 않았다. 어느 날 형의 집에 놀러간 심의는 벽에 뚫린
구멍을 보고 형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구멍은 나중 형님이 들어가고 싶어도 못 들어갈 터이니

지금 미리 들어 가 보는 것이 어떻소?"
심정은 이런 동생이 충고를 귓전으로 들었고 결국은 권력에서 밀려나
유배지(流配地)에서 사약(死藥)을 받고 죽었다.

서울 동대문 밖에 우산각골이라는 곳이 있는데,
조선조 초 정승 유관이 이 마을에 살았는데, 비가 몹시 오는 어느 날,
방안에 비가 새는지라 유정성은 우산을 펴고 처자식을 우산 밑으로
끌어들이며‘우산 없는 집은 오늘 같은 날 어떻게 지내나?’라고
걱정했던 데서 얻은 우산각골이다.

그런데 그의 아들 유계문이 경기관찰사로 배임 받자 완강히 부임을
거부했다. 이유는 관찰사(觀察使) 라는 관직명에 아버지의 이름 관자가
들어 있으니 혈족끼리는 연관 부서에 부임해서는 안 된다는 상피(相避)
정신에 위배(違背)된다는 것이다.

상피제란! 부정부패를 방지하기 위해서 친척이 서로 연관(聯關)이 있는
벼슬을 기피해야 하는 것이고, 향피제는 자기고향이나 연줄이 있는
지방에서 벼슬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선시대의 목민심서(牧民心書)의
한 부분이다.

명분을 목숨보다 귀중히 여겼던 참 선비 사회에서는 명분이 서지
않는 일로 출입을 할 적에는 문이 아닌 허물어진 담장으로
드나들게 한 것이다. 이른바 파장문(破墻門)이라는 것이다.

또한, 객지에서 부모상을 당했는데 제 시각에 참석(參席) 못했을 시는
불상죄인(不喪罪人)이라 해서 대문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역시 허물어진
담을 넘어오게 하였다.
이런 극기의 선비정신은 바로 속세(俗世)의 욕망(欲望)을 벗어난 정신적
수양의 배움이다.

선비라는 호칭을 들으려면 학문과 도덕을 겸비해서 세상을 바르게 만들고
백성에게 도움을 줄 능력(能力)을 갖추어야만 되는 것이다.
높은 지위를 이용하여 세상 사람을 속여먹고 지도자라는 위치에 올라

온갖 잔꾀를 부리며 억지로 자신의 지위나 높히려는 탁류(濁流)에
헤매는 자들은 절대로 선비라는 호칭(呼稱)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이 시대 우리의 높은 나리님(?)들 중 심정의 쥐구멍이 필요

없는 분들은 몇이나 될까?
관리의 자식은 집무시간 중 사사로이 드나들지 못하는 게 법도(法度)인데
만약 급한 전갈을 갖고 왔을 때면 깐깐한 수령은 동헌의 담을 헐고
그 자식을 들여 전갈을 접함으로써 명분(名分)을 지켰던 것이다.

우리 옛 형벌 중 동서고금에 없는 이색적인 팽형(烹刑)이라고 하는

명예형(名譽刑)이 있었다.
팽형(烹삶을팽刑형벌형)이란!
글자대로라면 '삶아 죽인다.'는 뜻인데 실제로는 죄인을 만인이 보는
가운데 커다란 가마솥에 집어넣고 불을 지피는 흉내만 내고 다시 꺼낸다. 

물론 생리적으로는 죽지 않았지만 명분상으로는 죽은 것이 된다.
그러면 그 사람은 평생 살아 있는 시체(屍體)로서 살아야 한다.
이 팽형(烹刑) 죄인(罪人)이 생업을 위해 집을 드나들 때는 정문
출입을 못하고 담을 뚫고 드나드는 파장문(破墻門)을 해야 했다.
 
참선비의 이러한 '정신적 다스림'은 속세적 욕망(慾望)을 벗어난
극기(克己)의 선비철학에 있었다.

선조 때 남명(南冥)조식(曺植) 선생은 뜻한 바 있어 과거를 포기하고

지리산 기슭에 자리잡은 글방인 산천재(山天齊)에 서사의 책상 머리에
「경의도(敬義刀)」라 이름한 날카로운 칼을 걸어두고 육체적 유혹(留學)이
자신을 사로잡으려 할때마다 그 칼날을 어루만지면서 섬뜩한 기운으로
물리치곤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칼에는 내명자경(內明者敬)--안으로 밝히는 것은 경이요.
외단자의(外斷者義)--밖으로 결단하는 것은 의니라.
또한 그는 허리춤에 쇠방울(성성자(惺惺子)을 달고 다니면서
그 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을 깨우쳤다고 한다. 

문인들에게 이 성성자 하나씩을 나누어 주면서 "기력에 의하지 않는
어떠한 행위(行爲)가 나타 날때 이 성성자가 소리내어 꾸짖으니
공경하고 두려워 할 만 하다. 

이 방울에게 죄를 짓지 말라" 하였다.
후세에 세속적 욕망을 이기고 정신력을 굳건히 하는 사람을 일컬어
성성자라고 한것도 이런 연유(緣由)에서였다.

옛 참선비들의 이러한 선비철학이 오늘날에 얼마나 살아 있을까?
부지기수(不知其數)일것 같은 우려하는 마음은 나 혼자만의

기우에 그쳤으면 좋겠다. 

권세(權勢)나 물직적 욕망이나 육체적(肉體的) 안락 따위에 오염
받지 
않는 선비정신의 구현이 그들 모두의 화두(話頭)였으면 하는

바람은 헛된 꿈일 뿐이련가!? 

2015년 4월 16일
석암 조헌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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