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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아버지의 모습

by 석암 조헌섭. 2015.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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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모습˝

초등학교[初等學校] 저학년 미술 시간에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라고 했더니 많은 아이들은  TV나 신문[新聞]을 보는
 모습이나 술에 취한 모습을 그렸다고 한다.

이는 오늘날 아버지의 존재[存在]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무력[武力]하게 비치고 있는가를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부모가 자주 책[冊]을 읽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면 아이들의
빈 도화지에는 어떤 모습을 담겨졌을까? 

이 세상에서 제일 존경[尊敬]받고 선망받는 사람은 독서[尊敬]
하는 사람이다. 독서를 길잡이로 하면 세로로는 과거의 역사들,
사상가[思想家]들을 만나게 되며, 가로로는 세계 각계[各界]
지도자[指導者]들과 동시대의 선후배들과 대화할 수 있다.

이렇게 상하 좌우, 종횡무진[縱橫無盡]으로 많은 사람과
공감대[共感帶]를 형성함으로써 우리는 역사[歷史]가 되어
볼 수도 있고 철학자[哲學者]가 되어볼 수도 있는 것이다.

‘장길산’ 이나  ‘태백산맥’ 같은 대하소설에 빠져봐도 좋고,
엘빈 포플러 의 ‘미래쇼크’ 를 읽고 정보화[情報化] 시대를
내다보는 것도 의미[意味]가 있을 것이다.
또 공자[孔子]나 맹자[孟子], 주역[周易]에 빠져 보거나
 퇴계[退溪]학과 남명학[南冥學]을 연구[硏究]해도 좋지만,
 ‘아이들이 심판한 나라’를 놓고 아이들과 공감대[共感帶]
형성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오늘 비록 퇴근길이 피곤하고 시장[市場] 볼 일이 바쁘더라도
가슴에 묻어 둔 화두 하나씩 꺼내 들고 서점[書店]이나 동네 책
대여점에 들러 보라고 권하고 싶다.
떳떳한 아랫목에 자리 잡고 앉아 책을 펴 들면 비로소 내면의
깊은 소리가 들릴 것이며,

배부른 돼지보다는 생각하는 소크라데스가 행복[幸福]하다는
말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어른들이 뚜렷한  역사관[歷史觀]
철학관[哲學觀]이 없어 그저 적당히 살아서는,
자식들이 훌륭한 인격자[人格者]가 되기를 바랄 수가 없다.

배불리 밥 먹여 주고 따뜻하게 옷 입혀 주는 것으로, 부모 노릇
다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먼저 스승이나 부모, 어른들이 존경받을 수 있는 인격[人格]
갖추고 있어야 비로소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을 믿고 따르려 한다.

정자에 앉아  낭랑한 목소리로  책읽기를 즐겼던 선비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었기에 윤리[倫理]와 도덕이 살아 있었고,
 우리 조상들은 문화민족[文化民族]임을 자부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요즈음 서점에 가보면 거의가 젊은이들이다. 
 책을 열심히 고르고 있는 젊은이들을 보노라면 나라의 장래가 
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젊은이들만의 전유물[專有物]로 만들어서는 바른 사회를 
후손[後孫]들에게 물려줄 수가 없다.
희끗 희끗한 머리카락을 날리는 기성세대[旣成世代]들이 보다
더 많이 책방을 드나들어야만 맑은 물이 아래로 흘러가는
사회[社會]가 될 것이다.


2015년 3월 21일  
  昔暗 曺 憲 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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