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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128)

마르틴 루터

by 석암 조헌섭. 2015.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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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 초상화 

마르틴 루터

 

마르틴 루터는 1483년 아이스레벤 에서 태어나서

아버지는 법학[]으로 성공[成功]하길 간절히 바랬으나,

루터는 다른 길을 걸어가야 했다.

 힘들고 어려운 고행[苦行]의 길도 택하여 보았지만,

모든 것이 허사였던 "루터"였다.

 

루터에게 나타난 "새로운 시대적 이슈"는 바로 면죄부[]

"티젤"이란 사람은 교황청[]의 승인[承認]을 얻어

면죄부[] 장사를 하였던 것이다.

  

인쇄기술이 아주 급속도로 발전[發展]하여 인쇄[]할 일거리를

찾고 있던 시대 인쇄 업자는 돈을 벌어야 했다.

독일[]은 각 지역의 제후[]가 관리[管理]하던 시절이며,

황제[皇帝] 선출권을 가지고 있던 작센주의 오늘날의

도지사[知事]교황청과 황제에 반대[]하고 있었다.

 

국민들은 생활고[]로 힘들고 어려웠지만, 신앙이 주는

저주의 의식[意識]은 강했다.

에라스무스 같은 인물이 이미 성경[聖經]을 번역[]하여 놓은

것이 있었다. 시대적으로 르네상스 문화[文化]가 활발하였으며,

토론[]의 시대[時代]되었다.

 

이런 상황[狀況]에서 루터는 자신의 밥그릇에 위협[]

무시하고 교황청[]에 저항[]을 하였던 것이다.

 

역사[歷史]의 운명[運命]은 아이러니 하지만,

루터가 가장 위협을 받았던 교황[皇]과 황제[皇帝] 앞에서의

면죄부 판매[]를 공개적으로 거부[拒否] 운동으로

종교[] 이룬 인물이며 성직자이자 교수[敎授]이다.

 

독일의 루터는 유언장[遺言]에 1마르크의 금화도 귀중한

주화도 지닌 것이 없다. 그는 언제나 가난했으므로 선반공이나

정원사 시계 수리공 등의 일을 해서 그날그날의 양식[糧食]을

얻어야 했다.

루터는 땀 흘려 일했던 그 순간에도 나는 조국[祖國] 독일의

진수[眞髓]라고 할만한 것들을 만들어 내는데 심혈을 쏟았다.

그는 독일의 어떤 왕족보다도 훨씬 강한 도덕심[道德]을

소유[所有]했으며 독일인으로부터 존경[]과 사모의 정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인격[]은 재산[]이다.

그것도 가장 고귀[高貴]한 재산이다.

 

물질[]면에서 보다 정신면에서 풍성해져야 하며 세속적인

명성보다는 진정한 의미의 명예[]를 추구[追求]해야 한다.

학문[學問]을 익히기보다는 덕[德]이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하고

권력[權力]을 등에 업고 위엄[]을 휘두르기보다는 정직하고

성실하며 고결[高潔]한 인격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2015년 1월 29일

 

昔暗 曺 憲 燮

 

                   똑똑 이 글을 스크랩해주신 블벗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에 행운을 
                                                        듬~뿍~ 드립니다.  사랑해-昔暗 조헌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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