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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지(121)/산행일지(118)

황매산

by 석암 조헌섭. 2012.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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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매산 묘산재 12년 1월1일 시산제

참석인원=36명

 

 

 황매산 약도

 

황매산 묘산재는 합천군 군립공원이며 합천8경에속하며,

신비스런 바위산이란뜻의 영암산으로도 불린다.

 

삼라만상의 괴암괴석으로 형성 보기만 해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철계단위 돛대바위는 넓은 암릉끝에 돛대처럼 우뚝솟아있다.

정상에는 한국제일의 명당자리로 알려진 무지개 터가 잇고 북서쪽 능선에는

해마다 5월이면 철죽제가 열려 관광객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기도하다.

 

묘산재 정상을 돌아오는 릉선에  순결바위가 있는데 평소 사생활이 깨끗하지

못한 사람은 아 바위틈에 들어가면 빠져나오지 못한다는이야기가 전해지고있다.

하산길에는 태조 이성계가 기도를 올렷던 곳 국사당 으로 하산 하엿다.

 

 

표지판

 

묘산재 입구

 

극락보전

감로정

 

극락보전

쌍용

 

종    목 보물  제480호
명     칭 합천 영암사지 삼층석탑(陜川 靈岩寺址 三層石塔)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탑
수량/면적 1기
지 정 일 1968.12.19
소 재 지 경남 합천군  가회면 황매산로 637-97 (둔내리)
시     대 신라
소 유 자 국유
관 리 자 합천군
설     명

영암사터는 황매산(黃梅山) 남쪽 기슭에 있는 신라시대의 절터

이다. 절의 창건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1014년에

적연선사(寂然禪師)가 이 곳에서 입적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된다. 절터에는 석탑을 비롯하여 쌍사자석등, 귀부 등 각종 석조유물이 남아 있다.

이 탑은 탑신부가 무너져 있던 것을 1969년에 복원하였으며, 현재 금당 앞에 새로 세운 두 채의 건물사이에 서 있다. 2단의

기단(基壇) 위에 세워진 3층석탑으로 통일신라석탑의 전형양식을 따르고 있다.

기단은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다. 탑신부(塔身部)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되어 있고, 몸돌에는 모서리에 기둥을 새겼다.

1층 몸돌이 약간 높은 편이며 2·3층은 크게 줄었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4단씩이고, 처마 밑이 수평이며 지붕의 경사가 완만한 곡선으로 흘러내려 네 귀퉁이에서 살짝 치켜 올라갔다. 탑의 머리장식부분은 전부 없어졌으나, 3층 지붕돌의 윗면에 쇠막대를 끼우던 구멍이 있다.

위층 기단과 1층 몸돌이 약간 높은 느낌은 있으나, 전체의 균형을 잃지 않았으며 각 부재의 짜임새 또한 간결하다. 신라석탑의 양식을 잘 이어받고있다.

 

종    목 보물  제353호
명     칭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陜川 靈岩寺址 雙獅子 石燈)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석등
수량/면적 1기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경남 합천군  가회면 황매산로 637-97 (둔내리)
시     대 통일신라
소 유 자 국유
관 리 자 합천군
설     명

영암사터에 세워진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으로, 1933년경 일본인

들이 불법으로 가져가려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막아 면사무소에 보관하였다가 1959년 절터에 암자를 세우고 원래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

석등은 일반적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하여, 아래로는 이를 받치기 위한 3단의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얹었다. 이 석등은 사자를 배치한 가운데받침돌을 제외한 각 부분이 모두 통일신라시대의 기본형태인 8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래받침돌에는 연꽃모양이 조각되었고 그 위로 사자 두 마리가 가슴을 맞대고 서 있다. 사자의뒷발은 아래받침돌을 딛고
있으며,

 앞발은 들어서 윗받침돌을 받들었다.

머리는 위로 향하고 갈퀴와 꼬리, 근육 등의 표현이 사실적이다. 화사석은 4면에 창이 있고 다른 4면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조각되었다. 사천왕은 불교의 법을 지키는 신으로 당시 호국사상의 목적아래 많이 나타나게 되었다. 지붕돌은 8각으로 얇고 평평하며,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자그마한 꽃조각이 솟아있다.

각 부분의 양식이나 조각으로 보아 통일신라 전성기에 비해

다소 형식화된 면을 보이고 있다.

 

 

 

 

종    목 보물  제489호
명     칭 합천 영암사지 귀부(陜川 靈岩寺址 龜趺)
분     류 유물 / 불교조각/ 석조/ 귀부이수
수량/면적 2기
지 정 일 1968.12.19
소 재 지 경남 합천군  가회면 황매산로 637-97 (둔내리)
시     대 통일신라
소 유 자 국유
관 리 자 합천군
설     명

이 귀부(龜趺) 2기는 영암사터 내의 법당터를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각각 남아 있다.

영암사의 정확한 창건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통일신라 전성기 때의 많은 유물들이 남아 있어 그 즈음에 세워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절터 안에는 법당터를 비롯한 여러 건물의 기단(基壇)이 남아 있어 당시의 거대했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귀부는 거북의 모습을 하고 있는 비의 받침돌로, 원래는 그 위로 비몸돌과 비머릿돌이 얹혀져 있었을 것이나,

양쪽 모두 지금은 귀부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동쪽 귀부는 거북의 등무늬가 6각형이고, 비몸돌을 괴는 네모난 비좌(碑座) 주위에는 아름다운 구름무늬가 있다.

전체적인 모습은 거북이지만 머리는 용머리처럼 새겼고,

목은 똑바로 뻗어있으며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서쪽 귀부도 6각형의 등무늬를 배열하였고, 등 중앙에 마련된

비좌는 4면에 안상(眼象)을, 가장자리에는 연꽃잎을 새겼다.

서귀부는 동귀부보다 얇고 약간 작지만 거의 같은 솜씨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특히 동쪽의 귀부에서는 정교하면서도 강한

생동감이 느껴지고 있다.

 

 

 돛대바위

 황매산 철죽제

황매산정상

 한국 제일의 명당자리

 

 순절바위

태조이성계의 등극을 위하여 천지 신명께 기도를 올렸다는 곳으로 지방 관찰사로

하여금  매년 제사토록 하였으나 그후 고을현감  관내 면장으로 이어져 왔으며

 지금도 음력 3월3일 에는 제를 올리는 국사당.

 

시산제 전병용 사진

 

임진년 한해동안 무하기를,,,,,,,,,,,빌며,,

돼지 복 터짓다  일백여만원이 넘는거 같은데..,

 

 

 

 

잠자는 공주 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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