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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473)

삼성 제일주의(호암 생가)

by 석암 조헌섭. 2012.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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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제일주의
(호암 생가)

초복(初伏)이자 휴일이라 대구에서 한 시간 남짓한 거리 의령에 있는
 한국 발전에 이바지한
 대기업 삼성그룹 
고(故) 호암(湖巖) 이병철(李秉喆) 회장님의 생가를 
지인과 함께 또다시
찾아 보았다. 

 
삼성그룹 고(故) 호암(湖巖)이병철(李秉喆) 회장은 지금은 세계 제일의
기업(企業)이지만 초창기 작은 회사에 지나지 않을 때에도 언제나
사원(社員)
들에게 삼성 제일주의(第一主義)를 부르짖었다고 한다.

회사 상호에 제일(第一)이란 이름을 넣기도 하였다. 제일모직, 제일제당,
제일합섬, 제일기획 등 이런 주장을 듣는 
초창기사원들은 제일이란
말이 현실과는 갭이 너무 크기 때문에 먼 훗날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사람이 분명히 그것을 성공(成功) 
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그 가능성(可能性)을 어느 시점부터 믿기
시작햇다고 
한다. 

일을 성취(成就) 하기 위해서는 늘 경쟁자가 있어야 하며 반대하는
람들의말에 귀를 기울려야 한다.
삼성전자가 세계 1위가 된 것도 경쟁자인 LG 전자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며, 삼성그룹이 국내 1위 기업이 된 것도 현대그룹이란 경쟁자자
있었기에
가능(可能) 했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손자 왈(孫子 曰) 오월동주(吳越同舟)라.오(吳)나라 사람과 월(越)나라
사람은 서로 원수같이 지내지만  
 한 배를 탄다는 뜻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는 원수라도 협력하게 된다는 뜻이다.
 

같은 배를 타고 물을 건너가는데 풍랑을 만나게 되자
그들은 서로 구하고
도왔다. 이것이 오월동주(吳越同舟)이다
싫어하는 사람과 손을 잡을 줄
알아야 한다.
 

기업가의 정신은 늘 기대와 희망(希望)을 품고 비전(批戰)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이처럼 사람이 사람에 대해 [반드시 그렇게 한다.]
[반드시 그렇게 만든다.][할 수 있다, 하면 된다]

라고 그 가능성을 마음으로부터 믿고 기대하면 상대도그 기대에맞추기
위해노력(勞力)하게 되는 좋은 성과(成果)를 낳는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心理學)에서는 (피크말레온) 효과라 한다. 

호암 이병철생가 안채자굴산에서 마두산 내청룡 마지막 자락
혈(穴)자리인
안채의 왼편 암벽에는 갖가지 길상의 형상이 
차곡차곡 쌓여져있는데
이 암벽면에는 숨은 그림찾기나 하는듯

자세히 관심있게 살펴보면 거북이가 바위속에서 엉금엉금
기어나오는
듯하기도하고 卍(만)자문양. 田(전)자문양.
쌀가마니를 잔뜩 쌓아놓은 형상. 

동,서양인의 얼굴형상 등 상서로운 길상이 펼쳐지고있으니 부자가
될수있는
명당(明堂) 중의명당(明堂)이라고 한다.

 

호암 이병철생가 사랑채 4칸의 팔작지붕
호암 이병철생가 사랑채에 걸린 주련

①得句會應緣竹鶴 (득구회응연죽학): 좋은 시 구절을 얻으려면 대나무와
                                                       학을 만나는 인연이 있어야 하고
②著書不暇窺園葵(저서불가규원규): 저술을 하느라고 정원의 해바라기
                                       바라 볼 여가가 없다.

③搜羅金石卑歐趙(수라금석비구조): 오래된 금석문을 찾으니 당(唐)의
구양순(歐陽詢)과 원(元)의 조맹부(趙孟?)의 글씨를 수준 낮게 보고

④看領風騷피杜韓(간령풍소피두한}: 중국 고전의 시가집인 시경과 이소의
글을 보면서 당의 문장가인 두보(杜甫)와 한유(韓愈)의 글을 물리친다네. 

⑤秋水爲神玉爲骨(추수위신옥위골): 맑은 가을 물을 정신으로, 옥을 뼈로
           삼으며
⑥詞源如海筆如椽(사원여해필여연): 문장은 바다처럼 넓고 글씨는 서까래
                           처럼 웅장하다. 

⑤ ⑥은 완당 김정희書


생가 표지판

생가곳간 우물
 
호암 이병철생가(湖巖 李秉喆生家) 경남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 723 장내마을
출생~사망: 1910년 2월 12일-1987년 11월 19일. 


수상: 1995년 제2회 한국경영사학회 창업대상, 198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국내 최대 재벌이 태어난 집에서
부자가 되는 기(氣)를받으려는 탐방객
들이
전국에서 많이 찾아와 생가를 둘러보는
사람들로 장내마을은 평일에
북적인다.
 
1851년 호암의 조부가 지었다는 생가는 일자형 평면 형태로 지어졌고
전체적으로 자굴산의 정기가 가장 많이 모여있는
穴(혈) 자리에 자리잡고 있다.


호암선생은 결혼하여 분가하기 전까지의 시절을 이 집에서 보냈다.
호암 생가의 왼쪽 담넘어는 둘째집이고,오른편 일각문
넘어는 셋째집으로삼형제집이 나란히 자리하고있다.


곡식을 쌓아 놓은 것 같은 노적봉 형상을 하고 있는 산자락 끝에는상수리
나무와 대숲이 군락을 이루어 병풍처럼 감싸고있는생가는몇차례
증개축을 거쳐국내 최고 대목수 중한사람으로꼽히는 대목장
신응수씨가 복원한후
2007년 11월 19일
일반인에게 개방하였다.


현재 568평의 대지에 소슬대문채 3칸. 사랑채 4칸. 안채 4칸. 창고(광).
一角大門(일각문)으로 구성된 전통한옥이다.


생가 관람 이용시간 : 10 :00 ~ 17 :00 휴: 매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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