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이야기(128)

일신당 이천경(李天慶)(1538∼1610)

by 석암 조헌섭. 2014. 1. 13.
반응형

일신당 이천경 (日新堂 李天慶1538~1610)  
 
이천경(李天慶, 1538∼1610)의 자는 상보(祥甫)이고,
호는 일신당(日新堂)이며,
본관은 합천(陜川)으로 단성(丹城)에 거주하였다.

그는 1538년(중종 33년) 무술 정월 14일에 아버지 진사 광전(光前)과
어머니 안동권씨 일(逸)의 딸 사이에 단성 원당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문집은 {일신당집(日新堂集)}이 있다. 

5세 때(1542년) 증왕부(曾王父) 청호공(淸湖公)에게서 {천자문}을 익혔고,
   선악의 변(辨)에 대해 공부하였다. 
6세 때(1543년) 8월 24일에 부군(府君) 저작공(著作公)이 생원시에
  장원으로 합격하였다. 

14세 때(1551년) 모부인으로부터 물학(勿學)으로 계(戒)하였으며,
    여력으로 학문에 정진하였고,
15세 때(1552년, 임자) 잠심하여 강독하였으며,
문리가 통하였다.
19세 때(1556년) 봄에 (주역)을 공부하였고, 겨울에 (상서)를 공부하였다. 
 
23세 때(1560년) 가을에 덕천으로 남명선생을 찾아뵈었다.
27세 때(1564년) 겨울에 이광우와 더불어 이원(李源)의 서재인
    구사재에서
  (성리대전)을 공부하였다. 

28세 때(1565년) 과거공부를 폐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덕천서원으로 가서 남명선생을 배알하였고, 대인 군자의 학문을 배웠다. 

29세 때(1566년) 봄에 덕천으로 가서 남명 선생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김우옹, 정구(鄭逑), 최영경, 하항(河沆), 오건 등과 더불어
    도의로 사귀었고, 토론하고 강마하였다.

31세 때(1568년) 남명선생에게 가서 상제예절(喪制禮節)을 묻고
    몸에 긴요한 것으로 보고 수양의 방법으로 삼았다.
37세 때(1574년) 덕천으로 가서 최영경, 하응도 등의 제현과 더불어
    서원의 창건을 논의하였고, 

39세 때(1576년) 최영경, 하항(河沆), 손천우, 유종지, 하응도, 이광우,
    이로, 이조 등과 더불어 서원을 세우기로 합의하였다. 
51세 때(1588년) 이로, 이조, 권세륜 등과 더불어 청했다.

53세 때(1590년) 6월 최영경이 정여립의 무옥(誣獄)으로 화를 입었고   
    이대기(李大期)를 방문하였다.
1592년(임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모부인의 상중이었는데,
신주와 제기를 지고 다니면서 조석으로 상식을 올렸고, 향당의 사우를
세우는 데 주력하였다. 

66세 때(1603년) 9월에 친구인 선비들과 함께 덕천서원에 모여 강론하였는데,
   이광우, 이천경, 진극경, 정승윤(鄭承尹), 성여신, 하징, 하성(河惺), 신가,
   하수일(河受一), 정승훈(鄭承勳), 이유함, 하광국(河光國), 조영한, 조겸,
   이명고, 이각(李殼), 조영기, 문홍운(文弘運), 박인(朴絪) 등의 여러
   선비들이
  모두 와서 모였고, 그 밖에도 33인이 왔다고 한다.
 
1610년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인조 때에 참판에 추증되었고,
단성의 청곡서원(淸谷書院)과 영평의 임류서원(淋流書院)에 배향되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