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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128)

★단성소(丹城疎) 와 민암부(民巖賦)★

by 석암 조헌섭. 2024.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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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 조식(南冥 曺植) 선생〃

단성소(丹城疎) 와 민암부(民巖賦)

단성소(단성현감 사직소  을묘사직소)


● “나라의 기틀은 무너졌고 민심(民心)이 떠난 지 오래입니다.
    높은 벼슬아치는 오직 재물(財物)에만 탐(貪)하여 물고기의 배가 썩어
    들어가는데도 이를 바로 잡으려 하지 않습니다.“


   대왕대비는 세상 물정 모르는 바깥소식이 막힌 깊은 궁궐 안의 한 과부(寡婦)에
   지나지 않고 전하는 선왕(先王)의 어린 아들에 불과할 뿐이니 천 갈래, 만 갈래
   흩어진 민심을 어떻게 수습(收拾)할 수가 있겠습니까?


   나라의 형편(形便)을 바로 잡는 길은 여러 가지 법령에 있지 않고 오직 전하께서
   크게
한 번 마음 먹기에 달린 것입니다. 라는 것이 상소문(上疏文)의 요지이다.”

● “전하의 국사(國事)는 이미 글렀고, 나라의 근본(根本))은 이미 망(亡)했으며,
   하늘의 뜻은 벌써
가버렸고, 민심(民心)도 이미 떠났습니다.
   마치 큰 나무를 벌레가 백 년 동안 속을
갉아먹어서 고액(苦厄)이 이미 말라 버린 채,     멍하니 질풍 폭우(疾風)에 쓰러질 날만 기다린 지가 오래된 것과 같습니다.

   조정에 충성(忠誠)스러운 신하와 근실한 선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형세(形勢)
기울어서 지탱(支撑)할 수 없으며, 사방(四方)을 둘러봐도
   손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민암부(民巖賦) 

  "백성은 물이요, 임금은 물 위의 배에 지나지 않는 것. 배는 모름지기 물의 이치를
  알아야 하고 물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지론(持論)을 거침없이 갈파한 남명(南冥)
  벼슬아치는 가죽 위에 돋은 털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구(不拘)하고 백성들의 가죽을
  벗기는 탐관오리(貪官汚吏)를 질타한 내용(內容)이다.


  남명 조식은 상소문 단성소와 민암부에서 대왕대비(문정왕후)를 세상 물정 모르는
  과부, 또는 아녀자라 하고 22세의 전하(명종)를 물 위의 배에 비유(比喩)하며
  어린애 고아(孤兒)에 불과하다고 했으며 벼슬아치는 백성의 껍데기를 벗기는

  탐관오리(貪官汚吏)만 한다고 하였으니, 왕조시대인데도 온 나라를 진동시킬 만큼
  국정을
극렬하게 비판한 것은 조선조 500년 역사상 전무후무(前無後無)한 것이다.

  남명이 이렇게 직방 강직(直放 剛直)한 상소문을 올렸어도 포도청(捕盜廳)에 한 번
  안 끌려간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한 분이라 생각된다.

  남명의 성격이 엄격하고 강직한 성품은 아버지 조언형(曺彦亨)에게 물려받았다.
  언형이 정삼품 벼슬인 승문원(承文院) 판교(判校)로 있을 때
  목계(木溪) 강혼(姜渾함경감사)이
라는 소꿉친구가 있었는데,

  강혼은 연산군 때 대문장가로서 연산군의 청에 따라 후궁의 죽음을 추모(追慕)하는
  글을
쓰게 되자, 조언형(曺彦亨)은 강혼과 절교(絶交)를 선언한다.

  그 후 언형이 단청 군수로 있을 때 직속상관인 강혼이 감사(監査)가 되어 찾아오자,
  언형은 감사(監査)를 맞이할 생각도 않고 집으로 가버렸고 집으로 찾아온
  강혼을 보자 언형은 하인(下人)에게 술독을 가져오라고 해 먼저 큰 잔으로 떠 마셨고
  그러자 강혼도 혼자서 서너 잔 떠 마셨다.

   긴장된 순간이 흐르자, 언형이 말하기를…

  "자네는 개, 돼지보다 더 못한 짓을 했네. 그런 자네가 먹다 남은, 이 술을 내가
   어떻게 마시겠나 조그마한 글재주로 부끄럽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어떻겠나?" 
   이 말을 들은 강혼은 고개를 떨구고 말없이 눈물만 흘리다 떠났다고 하는 것이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에 전해오는 내용(內容)이다.

    ♥석암 曺 憲 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