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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128)

“ 장희빈(張禧嬪1659년~1701년) ”

by 석암 조헌섭. 2024.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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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희빈(張禧嬪1659년~1701년)

장희빈(張禧嬪)은 조선의 제19대 왕 숙종의 빈(嬪)으로 제20대 왕 
경종(景宗)의 어머니다. 
숙종 임금보다는 2년 연상이었고, 본명은 장옥정(張玉貞)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아버지는 역관(驛官) 출신인 장형(張炯)이며 어머니는 장형의 계실 윤씨였다. 

조선 왕조 역사상 유일하게 궁녀 출신으로 왕비까지 오른 입지적인 여인이다. 
희빈 장씨는 본래 소의(昭儀)의 신분에 있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자식을 보지 못한 숙종의 총애를 받아 
원자 균(훗날 경종)을 낳아 희빈으로 책봉되었다.

그리고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서인의 영수 송시열이 사사되고 남인이 집권하자 
장희빈(張禧嬪)은 인현왕후(仁顯王后)를 폐출하고 왕비 자리까지 올랐다. 
하지만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서인이 재집권에 성공하자 
인현황후(仁顯王后) 민씨가 복위되며 장씨는 다시 희빈으로 강등되었다.

이를 시기한 장희빈(張禧嬪)이 밤마다 저주를 내렸는데 이 사실이 
발각되어 사사되었다. 
인현왕후전이나 수문록 등의 소설 야사에서는 사약을 마시고 사사된 것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숙종실록 등 정사기록은 주례의 규정에 따라 사사할 수 없음을 
언급하고 목을 매 자결하였음을 알 수 있는 기록들이 있다. 

아들 경종이 즉위하자 다시 황후로 복권되었지만, 그녀의 아들인 경종이 사망하고 
숙빈 최씨의 아들인 영조가 즉위하자 인현왕후의 오빠 민진원을 위시한 
노론인들이 또 폐위 하였다.
아무튼 죽어서도 편치 않은 삶을 살다 간 비운의 여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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