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이야기

“장녹수(張綠水)”

by 석암 조헌섭. 2024. 6. 4.
728x90
반응형

 “장녹수(張綠水)”    
 
장녹수(張綠水)는 본래 제안대군(齊安大君)의 여종이었지만 
  용모가 뛰어나고 가무에도 능해 연산군에게 총애를 받으면서 
  숙원(淑媛)에 봉해졌다. 

  외모 자체는 평범하여 그다지 미인이 아니었지만 
  몸매가 탁월하고 엄청난 동안(童顔)이라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10대 소녀와 같은 얼굴이었다.

  연산군이 원하는 것을 잘 알아 비위를 잘 맞추어 주었는데 
  연산군의 아명(兒名)을 부르며 데리고 놀았는데 때리고 꼬집고 
  조롱했다고 하니 어떤 식으로 아양을 떨고 비위를 맞추었는지 

  가히 짐작이 가지요 하지만 그가 왕(王)의 총애(寵愛)를 이용하여 
  국사에 간여하며 연산군(燕山君)의 실정(失政)을 부추기자 
  뒤이어 일어난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참형을 받았다. 

  그래서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이라 했나 봐
  가난해서 시집도 여러 번 가고 자식까지 둔 여인이 왕에게 
  발탁되어 궁궐에 들어갔다. 

  ‘연산군’ 하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인물 장녹수는 
  흥청(興淸)이라는 기생 출신에서 일약 후궁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연산군 시대의 신데렐라였다고나 할까?

  30세의 나이에도 16살 꽃다운 여인으로 보였다는 동안(童顔) 
  장녹수는 자식을 둔 후에도 춤과 노래를 배워 기생의 길로 나섰고, 
  궁중으로 뽑혀 들어와서는 연산군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아 후궁이
  되었다.

  후궁이 된 장녹수는 연산군의 음탕한 삶과 비뚤어진 욕망을 
  부추기며 자신의 욕망을 채워나갔다. 
  그녀는 무수한 금은보화와 전택(田宅) 등을 하사받았고, 
  연산군의 총애를 발판 삼아 정치를 좌지우지하였다.

​  모든 상과 벌이 그녀의 입에서 나온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1506년 중종반정 후 장녹수는 반정 세력에 의해 제거 대상 
  1호로 떠올랐고, 참형으로 장녹수의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