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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풍수 침략[風水侵略]

by 석암 조헌섭. 2015.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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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침략[水侵略]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왜놈이 박아놓은 쇠말뚝이 전국 명산[名山]에

 산행[山行]을 하노라면 간혹 볼 수 있었다.

21세기 들어서도 심심찮게 왜놈들의 만행이 드러나는 걸 보면 얼마나

많은 쇠 말뚝을 전국[全國]에 박아놓았는지 짐작이 간다.

 

왜놈들이 조선의 지기를 끊기 위해 전국 명산혈처에 쇠말뚝을 박는 

이른바 풍수침략[[風水侵略]을 감행[敢行]하였다.

더욱 놀란 것은 임란 때 조선을 원군한 명나라의 이여송 패거리도 많은

되놈 풍수장이를 데리고 들어와 조선[朝鮮]의 지맥[地脈]을 수없이

 단혈[斷血] 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왜놈이나 되놈들이 하나같이 조선 산수의 기를 꺽어 인물의

 배출[排出]을  막으려 한 짓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일부 친일파 학자들이 이러한 행위를

풍수침략이라 보지 않고 일본이 지도나 해도 작성을 위해 위치 표시로 

박아놓은 삼각점이라는 것이다.

 

참 어처구니없는 노릇이다.

온 산하를 쇠침으로 박고도 모자라 혈처에 구덩이를 파고 불을 놓는 

일명 뜸을 놓은 자리가 수두룩한데도 친일 패거리들은 생떼를 쓴다.

 

‘때리는 시어미 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하듯이 어찌

 그들을 한민족[韓民族]이라 할 수 있겠는가?

왜놈이 박아놓은 목침, 석침, 쇠말뚝 혈처를 보면, 전국 산하의

 과협[過峽]은 물론이고 산의 얼굴인 인중혈, 가슴의 단중혈,

생식기인 희음혈  등 가릴 것 없이 무려 남한에 183개 북한에 182개

 등 모두 365개의 혈침[血沈]을 박았다고 한다.

  

땅의 기운[氣運]은 일직이 우리나라에서 수천 년 동안 이어온

 기층사상이다. 

지금도 초등학교 교가 대부분이 ㅇㅇ산 정기를 이어받은 배움터에서 …

라고 되어있다. 이처럼 우리는 인간과 땅이 일대일 대응한다는

관념[觀念]속에 살아왔다.

 

그래서 땅이 병들면 인간이 병들고, 지맥을 자르면 사람의 맥도

잘리는 것으로 알았다.

이런 풍수 침략에 한술 더 떠 산, 이름, 우리말, 땅이름까지도 바꾸는 

창지개명[創地]을 하였다는 것이다.

우리 땅 이름에는 우리의 역사, 지리, 풍속, 성씨, 종교 등 모든 것이

내포[內包]되어 있다.

 

1914년 4월 1일 일제가 식민통치의 편의를 위해 행정구역 통폐합을

 단행하면서 이런 이름을 왜놈은 교묘히 창지개명[創地改名]바꿔치기

했다.

가장 끔찍한 것은 국호[國號]를 ‘대한제국[大韓帝國]’에서 ‘이씨조선’으로, 서울을 ‘한성’에서 ‘경성’으로, ‘순종황제’를 ‘이왕[李王]’으로

 격하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국토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을 ‘태백산맥’, ‘소백산맥’ 등으로 갈라

놓았다. 크다는 뜻의 ‘대(大)’자나 ‘한(韓)’자가 들어가는 명칭은 무조건

 바꾸었다.

봉황산[鳳凰]이면 봉황을 쫓아낸답시고 황[凰]자를 때어 버리고

 날아갈 비[飛]자를 넣어 비봉산[飛凰]으로 바꿔친다.

백두산의 장군봉[將軍峰]도 그들의 영호를 붙여 대정봉[使]이라고

격하했다.

 

그뿐인가 마천령이라는 산맥도 갈마 자를 써서 마천령[磨天嶺]이라

하여 백두산[白頭山] 천지를 갈아버린다는 뜻으로 바꾸었다.

 

서울시 동 이름 30%가 日 작품…'창지개명'을 하였다.

서울 종로의 낙원동, 관수동, 동숭동, 공평동, 권농동, 예지동, 원남동,

원서동, 청운동, 옥인동, 통인동 같은 동 이름은 일제가 그 곳에 있던

 토박이 땅 이름을 뭉개고 새로 만들어 붙인 것이다.

 심지어 서울에 있는 북한산과 북악산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원래 삼각산(三角山), 백악산(白岳山)이라는 정기가 깃들고 의미

있는 이름을 잃어 버렸다.

 

명실공히 국제도시 송도(인천)가 사실은 일본 전함 송도호(마츠시마호)의

 이름을 딴 지명[地名]이다.

큰 밭이라는 한밭을 대전으로 바꿔 부른 사람들 역시 대전을

 식민도시로 급조했던 일본 식민지 관료[官僚]들이다.

그래서 지금은 버들내가 유천동으로 으능정이 은행동이 되었다.

 

이 또한 우리 민족의 정신을 말살키 위한 풍수침략의 일환이었다.

식민지 근대화론(植民地近代化論)을 주장하는 일부 넋이 빠진 뉴라이트

 같은 사람들은 일본 제국의 한국 식민 강점은 한국이 억압[抑壓]받고

 수탈[收奪]을 당한 것도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식민 지배가

 한국의 산업화[産業化]와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100여 년 전 있었던 경술국치(庚戌國恥)의 일제 치하 35년간의

 치욕[恥辱]을 잊어버린 듯하다.


이러한 식민사관[植民史觀] 근대화론은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에

 일본 학자들에 의해 정체성[正體性]론의 일환으로 주장되기는 했지만,

 일본에서 조차 폐기된체 몇몇 우익 정치인들에게서만 간헐적인 주장만 있을 뿐이다.

2015년 11월 12일

석암 조헌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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