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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판문점[板門店]

by 석암 조헌섭. 2015.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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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板門店]
 

 
 엊그제, 남, 북 고위급 회담이 판문점[板門店]에서 열렸다.
북한이 8월 4일 목함 지뢰에 이어 포격 도발[挑發]까지 자행하면서 한반도를
 전쟁 직전의 도가니에 빠뜨려, 온 국민과 국제사회가 충격에 휩싸였다.
한국은 이를 뒤질세라 고성능 확성기를 군사 휴전선[休戰線] 11곳에 설치
매일 하루에 두 번씩 틀어대어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상황이다.
 
남측은 지뢰사건을 사과해라 북측은 우리가 안했다며 실랑이를 벌이는
모양이다.
남, 북이 서로 조금씩 양보[讓步]하면 좋으련만, 양측 모두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전쟁[戰爭] 운운하며 기 싸움을 하는 모양새다. 
 
이런 대치[對峙] 속에 어떻게 통일[統一]이 되겠는가?
 통일이 되기 전 서독은 동독[東獨]을 깎아내리는 심리전은 삼갔다고 한다.
지금의 독일은 동독 출신의 여장 앙겔러 메르겔 총리는 3선에 당선되어
 집권하고 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남북 간에도 서로를 해치지 않고
평화통일[平和統一]로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8월 22일부터~25일 02시까지 무박 4일동안 판문점[板門店]에서
고위급 회담, 남측 김관진과 홍영표, 북측 황병서와 김양건이 밤을 지세며
회담 결과를 발표[發表] 남북 간 고위급 회담이 첫 술에 배부르지 않지만,
 그나마 타결[妥結]되어 다행이다.
 
판문점[板門店]은 이처럼 우리 민족의 애환[哀歡]을 담고 60여 년을 온갖
 국제 시선이 집중[集中]되어온 비운[悲運]의 땅이다.
 
북측 매체들이 ‘정치상식’으로 소개한 ‘판문점[板門店]’ 항목에서는 이곳을
 ‘판문점 구 회의장구역’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지금은 ‘평화박물관’으로 활용[活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에는 정전협정[停戰協定] 조인식이 진행된 건물[建物]이 있으며,
 “정전담판이 진행[進行]된 회의장[會議場]에는 우리 측(북측) 수석대표와
 성원들이 미군 측 수석대표와 그 성원들과 마주앉아 담판하던 탁상과
 의자들이 그대로 놓여 있다”고 한다.


정전협정 조인장. 현재 북측에서 평화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판문점[板門店]의 유래를 보면 옛날 어느 임금이 지방 순행을 나가 개성
 동남쪽 사천이란 냇가에 이르렀다.  

다리가 없어 일행이 물을 건너지 못하고 주춤해 있자 마을 사람들이

집집마다 대문짝을 뜯어다가 임시다리를 놓아 임금을 건너게 하였다.
 
그 후 이곳은 “늘빤지 다리를 놓기 위해 문짝을 뜯은 마을”이라 해서
 ‘널문리’라고 불리게 되었다.
1951년 이 마을은 개성에서 열리던 6·25전쟁 휴전회담[休戰會談]이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이름이 바뀐다. 회담장소[會談場所]로 선택된 곳이
 주막을 겸한 구멍가계 앞 콩밭이었다. 
 
이 회담[會談]에 중공군이 참여하게 되어 한국어, 영어, 중국어 3개국어를
공용[共用]하게 되자 이 널문리 가계를 중국어로 표기[表記]한게 놀랍다.
 
’을 “널빤지 판[板]자”로, 문을 문[門]으로 대치하여 마을 표기를
‘판문[板門]’으로 하고 거기에 가계 점[店]자를 붙혀 판문점[板門店]이라
 했다.
 
그러나 판문점이란 이름은 450여 년전 역학·풍수·천문·복서 등의 원리를
 이용해 한반도의 미래를 기록하였고,
 임진왜란[壬辰倭亂], 동학 농민 운동[東學 農民 運動], 한일 병합 조약
[韓日 倂合 條約]뿐 아니라 한반도의 해방과 분단, 한국 전쟁, 4·19 혁명
 5·16 군사정변 등 역사적[歷史的] 사건뿐 아니라,
 
 이승만[李承晩], 박정희[朴正熙] 등 한국의 역사적 인물의 행적을 정확히
 예언[豫言]하고 있으며,
2012년 박 씨 성을 가진 여성 지도자가 등장해 분열[分裂]되어 있던 동서를
 화합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 이는 박근혜[朴槿惠] 당선인의 정책과 큰
 맥락을 같이 한다.는 예언을 남긴 인물 격암 [格菴]
 "450년 만에 신비의 베일을 벗는 민족의 경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예언가 격암(格菴) 남사고[南師古1509~1571년] 선생이 남긴
 격암유록(格菴遺錄)에 삼팔가[三八歌]라는 이름으로 나와 있는데,
 
내용인즉슨
 
“십선반팔삼팔[十線反八三八]이요.--십[十]자에 반[反]자와 팔[八]을
                                                          합치니 널빤지[板].
 양호역시삼팔[兩戶亦是三八]이며,--호[戶]자가 둘이 좌우로 합치니
                                                          문[門]자 이며,
 무주주점삼팔[無酒酒店三八]이니,--주점[酒店]에서 주[酒]자를 떼어내니
                                                         가계 점[店]자이니
 삼자각팔삼팔[三字各八三八]이라.--세 글자가 각각 8획이니 3-8즉
                                                        삼팔선에 판문점이 생기는 기라.”
                                               
450여년 전 파자속에 담겨진 오묘한 내용이 설마 우리의 숙명[宿命]은
아니길 바라면서, 단지 휴전협정[休戰協定]이 이곳에서 조인되고 유엔군과
  북한군이 공동경비를  담당한다 하여 공동경비구역[公同警備區域]으로
 남아 있으니
 
임금이 건넜다던 그 널빤지 다리가 통일[統一]의 다리가 되기를
 기원[祈願]하면서  

2015년 8월 27일
석암 조헌섭
북한 예술단 서울공연=
소녀시대 서현 "우리의 소원은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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