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이야기(473)

코문이

by 석암 조헌섭. 2014. 12. 13.
반응형
코문이. 

각종 매거진 등에 성형수술, 성 수술에 관한 선전광고[宣傳廣告]가

무수히 많다.
거리의 전신주 등에 붙어 있는 야릇한 성 관련 상품 선전[宣傳]이나
비뇨기과적 수술에 대한 안내가 수두룩하다.

회사 취직[就職]을 위해

입사 시험보다 면접[面接]을 위해 필수적으로 성형[成形]을 하여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자연산이다, 아니다. 라는
말이 생겨났다. 아예 인간인조화[人間人造花] 되어가고 있다.

코문이의 유래[由來]를 보면, 영천[永川]에 고을 원님이 제색을 갖춘
재인[宰人]의 부인을 탐하여 재인에게 이 폭포 위에서 줄을 타게 하고,
그 사이 줄을 끊어 죽게 하고는 재인 부인에게 숙청을 들게 하였으나
지조[志操] 있는 부인은 원님의 코를 물고 자결[自決]을 하였다 해서
코문이가 어음[語音]의 변화로 고문리로 변했다고 한다.

성형술은 인도 [印度]에서 가장 빨리 시작했고, 수술[手術] 수준이
뛰어났었다고 한다.
고대 인도에서는 행실이 나쁜 아내와 딸은 그 남편 또는 아버지가
코를 베어버려도 되게끔 율법[律法]으로 보장[保障]을 받았고 따라서
이 잘려나간 코를 성형해주는 수술이 일찍부터 발달했기 때문이란다.

또한, 남태평양 피지 섬에는 코가 삐뚤어지거나 아예 없는 남녀가

많았다. 이유인즉 여자가 코가 없는 것은 질투[嫉妬]하는 여자에게
코를 물린 것이요,
남자가 코가 없는 것은 독차지하고 싶어 하는 여자에게 물렸기
때문이란다.

우리말에 비승어양[鼻勝於陽]이라는 말이 있다.
코가 크면 양물도 크다는 뜻이다. 이러한 오해[誤解]로 인해 벌어진
해프닝이 많다.

음사를 아주 좋아하는 여인이 있어 평생소원[平生所願]이 양물이 큰
남자를 만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코 큰 남자 만나기를 학수고대[鶴首苦待]하다 장터에서 형색은
보잘것없으나 주먹만한 코가 우뚝 솟은 사내를 발견[發見]하였다.

이 여인은 교태[嬌態]를 부려 집으로 청하여 산해진미[山海珍味]로
환심[歡心]을 산 다음 교접[交接]을 하려고 잠방이를 벗겼더니
애들처럼 매우 작고, 그마저 몇 번 일렁이 더니 제풀에 시들어 버렸다.
그래서 콧값도 못하는 것이라고 한탄[恨歎]하며 사내의 코를 물어
뜯어버린 것이다. 과대포장[過大包裝]이다.

이와같이 “코문이”라고 하는 이 습속을 통해 바람을 피우거나 질투가
정도에 지나친 상대방에 대한 최후 수단[手段]으로 코를 물어 뜯어버린
것이다. 일단 코문이를 당하면 사회적 체면[體面]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습속[習俗]이야말로 바람난 여년놈을 혼줄 내는 데
최선[最善]의 
방편[方便]이었는지 모른다.


심청전에 보면, 뺑덕어멈 코 큰 총각 떡 사준다.는 대목이 나온다.
아저씨 코가 커서 언니는 좋겠네 하는 민요[民謠]도 있다.

원시시대의 형벌은 훔치면 손을 자르고, 도망치면 발을 자르고,
무고[誣告]하면 혀를 자르듯이 강간을 하면 거세를 하기 마련이다.

민족성이 잔인하지 못했던 우리나라 관습법은 거세[去勢] 대신
"코문이"라 하여 코를 물어뜯게 하였다.
남편이 바람나 외간 여자와 놀아나도 본처로 하여금 코문이를 하게

했고 마을사람 둘러보는 가운데 코문이를 하기도 했다.

현 세태에서도 권력형 성추행[性醜行]이 예사롭지않다.
권세[權勢]가 무상[無償]하고 유전무죄[有錢無罪]이다 보니
청와대 전 대변인[代辯人], 전 국회의장, 전 검찰총장 명문대 교수 등,

어디 그뿐이겠는가? 윗물이 흐리니 아랫물 또한 흐리지 않겠는가? 
차마 거세를 못하겠다면 코문이 법보다 약한 콧등에
문신[文身]이라도
하는 법[法]을 만들었으면…

2014년 12월 13일
昔暗 曺 憲 燮

반응형

'나의 이야기(47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산제 축문(세로쓰기 파일)  (0) 2014.12.22
선형선제(宣兄宣弟)  (0) 2014.12.19
곤들메기의 좌절[挫折]  (0) 2014.12.05
취옥백채(翠玉白菜)  (0) 2014.11.30
첫 눈 오는 날 (하얀 눈 이야기)  (0) 2014.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