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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463)

성복우황(城復于隍)

by 석암 조헌섭. 2022. 1. 8.

성복우황(城復于隍)

성복우황(城復于隍)은 역경(易經) 태괘(泰卦)에 나온다. 
상육(上六)은 성복우황(城復于隍)이라. 
자읍고명(自邑告命)이니 정(貞)이라도 인(吝)하니라.

산성이 무너져 빈터만 남아 나라가 망한 것이 되니, 공연히 분란만 일으키면 
가치 없는 피만 흘리니 인군(人君)이나 백성이 스스로 잘못을 반성하고 
고백하여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바르게 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늦어 성(城)이 다시 구렁 속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이듯이 성물필망(成物必亡)인 것이다. 
처음 나라를 세운 국조(國祖)들은 하나같이 나라가 멸망(滅亡)하지 않고
 영원(永遠)하기를 바랐다.

독일의 독재자(獨裁者) 히틀러조차도 자기가 세운 제국이 일천 년 동안
 계속된다고 예언하였지만, 그러나 겨우 12년 만에 멸망하였다.  
나치는 1933년 의회를 해산하고 헌법의 기능을 마비시켜 내무부와 다른 정부 
주요 기구들을 장악하고 새로 또 하나의 경찰조직을 창설(創設)하였다. 

결국 독일 정치는 민주적인 요소를 상실한 채 친위대, 비밀경찰 같은 자치 
기구들이 장악(掌握)하였고, 이들은 헌법이 상정한 기구들과는 정반대였다. 
결론적으로 독일 정치 구조는 합법성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1941년부터 1945년까지 히틀러의 반유대 정책은 극에 달하여 민족 말살 
정책이 나타났다. 유대인을 강제 수용소로 압송(押送)하였고, 
1942년 중반부터 약 3,400만 명의 유대인을 가스실에서 죽게 했다. 

그러나 나치 정부는 이런 상황을 비밀로 할 필요성을 인지하고 진행하였으나, 
1945년 러시아가 폴란드의 강제 수용소와 연합군(聯合軍)이 서쪽의 수용소를 
해방함으로써 세상에 공개되었다.

역경의 성복우황(城復于隍)을 알았다면 그런 바보 같은 짓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의 해골로 성(城)을 쌓고 사람의 백골로 궁단(宮 )을 지은 제국이 
무슨 나라인가? 도깨비 귀신들의 소굴(巢窟)일 뿐이다.

진나라 시황이 일백만 명이 넘는 백성을 희생(犧牲)시키면서 만리장성을
 쌓은 것은 자신이 세운 진나라가 무궁하기를 바라서였다.
그러나 황제가 된 지 15년도 못 가서 멸망하였다.
그런 바보스러운 짓이 어디 있는가?
  
또한 참으로 웃기는 일은 피라미드를 세운 이집트의 옛 왕들이다.
피라미드는 그들의 송장인 미라가 부활(復活)하기를 바라면서 세운 것이다. 
피라미드 하나 세우는데 10만 명의 노예(奴隸)가 희생되었다.

임금이 그 짓을 하니 귀족들은 피라미드를 못 세우고 유령의 도시를 세웠다.
그들보다 더 바보들은 만리장성이나 피라미드를 보고서 무슨 위대한 
귀물(貴物)을 보듯 착각하는 사람이라 할 것이다.
만리장성이나 피라미드는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위대한 바보들의 기념물(記念物)에 지나지 않는다.

요즘 대선 정국이라 오징어 게임 참가자처럼 행동하는 사람과 집단이 흔해졌다. 
상대가 죽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는 논리(論理),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상대를 제거하겠다는 참혹한 기세와 감정이 창궐(猖獗)한다는 느낌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모든 분야에서 복잡한 구조적(構造的) 문제를 안고 있다.
그중에서 특히 정치 분야는 붕당 정치에 해당할 패거리 형태를 벌이고 있다.
자기편이 아니면 정책이고 이론이고 무시하고 당동벌이[黨同伐異] 형태를
보인다.     
반대 의견을 개진하면 좌파,  우파 몰아붙이는 이념적 파당을
조성
[]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정치가 삼류라더니 삿대질과 고성이 오가는 구태 정치 , 한국은 정치개혁 없이는
경제발전도 성장도 없다. 

오직 국민만 고통을 당하고 법치는커녕 부정부패가 계속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흉기 같은 독설과 감정 배설이 일상화됐다.

 우울과 불안을 호소(呼訴)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나라를 다스리겠다는 후보자들이 저 모양 저 꼴이니 백성들은 과연 무엇을 보고 
배우겠는가!

돈과 권력을 따라 철새처럼 지조 없이 보수에서 진보, 진보에서 보수로 이당 저당
기웃거리며 권력 다툼만 하는 꼬락성이란 차마 눈뜨고 못 볼 지경이다.
보수답지도 진보답지도 않는 세태야말로 볼썽사납기 짝이 없다. 

오죽하면 “정치인과 성직자가 물에 빠지면 정치인을 먼저 구한다고 했을까?.
더러운 정치인이 을 오염시키면 안되기 때문” 이란다.

 
후보자는 후보자 다와야 하며 관리자는 관리자 다와야 하고,
보수는 보수다워야 하고 진보는 진보다워야 하며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며 자식은 자식다와야 한다.

임금은 임금답게 덕[德]을 갖추어야 하고 고위 공직자[]
청렴결백[] 사회 모범이 되어야 한다.
“사람이면 다 사람인가? 사람 다워야 사람이지“? 

이 말은 숱하게 들어 왔다. “사람 다워야 사람이다”라고 한다면 
사람답지 않은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범람하는 주장과 주장, 대립하는 감정과 감정이 만들어낸 모호한 
진실게임은
경쟁 구도를 한층 극단적으로 만든다. 

이런 현상은 전염병처럼 퍼져 우리 사회 상당수 조직에서 불통과
편 나누기가
 일상화됐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건전해야 할 소통의 광장은 앞뒤 맥락을 무시하는 날이 선 전쟁터로
변한 지 오래다.
 

오랜 세월, 공들여 구축한 민주적 공동체 문화가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감이 팽배하다.
올곧은 마디로 꼿꼿하여 청빈의 세월을 지키고 선
대나무의 자세가 필요한 때이지만,
수명을 다했는지 누렇게 죽어가는 대나무도 있으니 …

2022년 1월 일
석암 조 헌 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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