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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은해사백흥암극락전(銀海寺百興庵極樂殿)

by 석암 조헌섭. 2012.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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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해사 백흥암 극락전

△은해사백흥암극락전 

△은해사백흥암극락전 

△내부가구 

△수미단

종     목 보물  제790호
명     칭 은해사백흥암극락전(銀海寺百興庵極樂殿)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불전
수량/면적 1동
지 정 일 1984.07.05
소 재 지 경북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549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은해사
관 리 자 은해사
 

※일반설명

백흥암은 은해사에 속한 암자로 신라말에 지은 것으로 전한다. 조선 명종 1년(1546)

 인종의 태실(胎室)을 팔공산에 모시게 되자 백흥암을 수호사찰로 정하고 크게

 고쳤다고 한다.

극락세계를 상징하는 아미타삼존불을 모시고 있는 극락전은 인조 21년(1643)에 지은

것으로 지금 있는 건물은 그 뒤로 여러 차례 수리한 것이다.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를 다포 양식이라 하는데 재료의 형태와 짜임이 조선시대의 옛

수법을 잘 갖추고 있다.

안쪽 천장은 가운데를 높이고 주변을 낮게 만들어 층을 이루게 꾸몄으며, 불상을 올린

 불단(수미단)은 조각이 매우 특이하고 우수하여 보물 제486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문설명

백흥암(百興庵)은 명찰(名刹) 은해사(銀海寺)의 말사(末寺)로서 신라(新羅)

 

 하대(下代)의 창건(創建)으로 전해오고 있다.

극락전(極樂殿)은 조선(朝鮮) 인조(仁祖) 21년(1643) 건립(建立)하고 그후 여러차례에

 걸쳐 중수(重修)한 바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다포식(多包式)

 건물(建物)로 조선(朝鮮) 초기(初期) 건축양식(建築樣式)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더욱 중요하다.

법전형(法殿形) 단층건물로 난적(亂積)된 기지석(基地石) 위에 자연석 주춧돌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다. 정면 3간(間)은 약 10,07m이고 측면 3간(間)은 약 7,08m이다.

처마는 겹처마로 금단청(錦丹靑)을 극채(極彩)해 놓았다. 앞면은 사분합(四分閤)으로

 되고 협간(夾間)은 삼분합(三分閤)인데 모든 기둥사이를 개방해 놓았다.

 왼쪽 간(間)도 문을 달아 개방하였는데, 오른쪽 간(間)은 막혔고, 뒷면은

판벽(板璧)과 판비(板扉)로 되어 있다.

다포계(多包系)의 공포(공包)구조로 안팎이 삼출목(三出目) 구조로, 칠포작(七包作)

 구성이고,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이 갖추어지고 공포가 주두(柱頭) 위에서

 두공(頭工)으로 촘촘히 조성되어 있다.

수미단(須彌壇) 좌우에 기둥을 세웠으나 고주(高柱)가 아니며, 대들보를 받치게 된

 간주형(間柱形)이다.

천장은 우물반자와 소란반자로 되어 있고, 외진(外陣)이 낮고 내진(內陣)이 높은

층급구성이다. 바닥은 우물마루이며, 금단청(錦丹靑)의 무늬와 색조(色調)는 건륭년간

(乾隆年間)의 것이고, 별기화(別技畵)의 상태가 아주 좋다.

 

                                                글쓴이 : 무지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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