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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대나무에 관한 소고

by 석암 조헌섭. 2017.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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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에 관한 소고”

올해는 윤달이 있어 죽취일(竹醉日음력 5월 13일)이 두 번이다.
죽취일은 대나무가 취해있어 잘라내도 아픈 곳을 모르고 어미 곁을 떠나도 슬픈 줄을 
모른다고 하여 이날 대나무를 옮겨 심는다고 한다.

또한, 이날에만 용[龍]이 새끼를 낳는다고 하여 죽순의 다른 이름을 용손(龍孫)이라
 부르는 전설[傳說]이 생겼다고 한다.
용은 아홉 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그 이름과 모양은 우리 문화재 곳곳에서 발견된다.
어쨌든 우리 선조님들은 죽취일을 잔치로 즐겼던 것을 1920년 외놈이 금지[禁止]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현재 각종 축제행사를 하고 있는데 축제[祝祭]라는 말은 일제 잔재라 하니…
어쨌거나 대나무는 꿋꿋한 우리 조상님들의 굳은 절개와 상서로움을 나타내는 
 서상식물[瑞祥植物]이다.
대나무는 비어있어 모든 것을 수용하는 조화의 식물이며 고[固], 직[直], 공[空],
절[節]하여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 온다. 

걸죽-태어날 아기의 탯줄을 자른 칼을 대나무로 만든 것을 말하는데
      명문가[名文家]의    대나무를 훔쳐서 만드는데 이유는 명문가처럼
      걸출[傑出]한 인물이 되라는 데서 비롯되었다. 

조각대[片竹]-서당의 훈장에게 자식을 잘 가르쳐 달라는 뜻으로 입학 때 대나무로 만든
                회초리를 한 움큼 가져간다고 한다.

청사[靑史]-옛날에 종이가 귀하여 푸른 대나무 껍질에 역사를 기록하여 보관하였는데,
           이것이 만고 청사의 청사[靑史]이다.

투모초[妬母草]-대나무의 순이 어머니의 키를 시샘하여 빨리 자라는 것을 말하며,

화룡[化龍]-대막대기를 연못에 던졌더니 변하여 용이 되었다고 하는 전설이며,

포절군[葡節君]-여러 개의 마디가 절도를 갖춘 군자를 상징한다 하였고,
또한, 중국의 삼국시대 효성[孝誠]이 지극한 맹종[孟宗]이란 사람은 어머님이 병환을
낫게 하기 위해 관직[官職]을 버리고 낙향하여 오랫동안 약을 구해 정성껏 

 노력[努力]하였으나 차도가 없으신 어머님께서 눈보라가 치는 겨울철에 죽순을 
먹고 싶다고 하여 엄동설한[嚴冬雪寒]에 한약방이며 시장을 아무리 찾아헤매도
구하지 못한 맹종 은 눈이 쌓인 대밭에서 앉아 한탄과 자조, 그리고는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울었더니  눈물에 녹은 땅속에서 죽순이 돋아났다. 

하늘이 내린 이 죽순을 끓여 마신 어머니는 병환이 쾌유[快癒]하여 눈물로 죽순을
돋게 했다고 하여 맹종설순[孟宗雪筍]이라 하였다.

그리고 옛날 임금이 궁녀[宮女]가 많아 어느 궁녀와 잠자리를 해야 할까 하다가
 양이 끄는 수레에 타서 멈추는 곳에서 운우[雲雨] 를 즐겼다고 하여 궁녀들은 양이
 좋아하는 대나무 밑에 소금을 발라 문에 걸어 두었다는 별시런 이야기도 있다.

또한, 불가에서 좌선[坐禪]할 때 입선과 방선의 신호로 사용되는 죽비가 있는데
수산선사의 수산 죽비 송은 유명[有名]하지 않은가?
“죽비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며 그대들이 만약 이를 죽비라고 부르면 경계를 이루게
 되고 죽비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등지게 되니 일러보라 무엇이라고 부르겠는가?”

그리고 소상반죽[瀟湘斑竹]의 고사[故事]에는 초나라 애국 시인이었던 굴원[屈原]
 나라가 멸망할 때 애절한 나라 사랑을 노래하며 돌을 가슴에 묶은 뒤 언덕에서
 소상강으로 뛰어내려 생애를 마쳤다고 한다.
굴원이 강에 몸을 던질 때 사방으로 튀어 오른 물방울이 강가에 울창하던 대나무에
묻었는데 금방 피로 변했다. 굴원의 변치 않는 지조[志操]와 절개가 피로 변한 것이다.
그때부터 이 강가의 대나무는 붉게 아롱진 반점이 생겼는데 이를
“소상반죽[瀟湘斑竹]”이라 부른다.
 
그 뒤로 죽림칠현[竹林七賢]의 일처럼 혼돈의 시대에 지향해야 할 정신의 지표를
 추구하는 사조[思潮]가 생겨났다.
중국과 우리나라 옛 선비들은 소상반죽[瀟湘斑竹]을 선비 절개의 증표로 여겨왔다.
그래서 선비들은 소상강의 대나무로 젓가락을 만들어 음식을 먹었다고 하며
지금도 대나무 젓가락에 검은 무늬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추사 김정희[金正喜] 가 어느 벗에게 써 주었다는 죽로지실[竹爐之室]은
“대나무로 감싼 화로(차를 마시는)방”이란 뜻으로 차를 끓일 때 물 끓는 소리가
댓잎에 부는 바람 소리처럼 “쏴” 소리가 난다고 하여 죽로[竹爐]라 하였으니
그 운치 있는 표현이 너무 좋아 무심한 자의 방도 죽로실[竹爐室]이라 덧붙였다.

오비[奧祕] 순숙[純熟]한 백수탕이 차 맛을 제대로 낸다는 선조들의 다선일여의
 정신[精神]일까?
우아하였던 우리 선조들은 푸른 대나무를 사랑채 서재 앞에 심어놓고 댓잎의 푸른
 기상을 본받으며  희미한 바람이 기척도 어김없이 알아듣고 잎을 서걱대는 소리는
 선비의 정신은 늘 깨어있어야 한다는 채찍으로 삼았다.

새벽바람에 댓잎 흔들리는 소리, 겨울 한밤중 찬바람 맞으며 눈보라 갈기를
 참는 소리, 소낙비 맞으며 들려오는 푸르고 영롱한 댓잎의 떨림에서 하늘을 향하여
꼿꼿이 서서 인간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교훈[敎訓]을 얻었던 모양이다.

대나무의 성정[性情]은 수수하고 담백하다. 
아무리 좋은 토질에서도 결코 살이 찌지 않는다.
이 같은 성정은 곧 선비가 지향하는 도덕적 이상향이 아닐까?
속이 텅 비었으면서도 엷은 껍질로 눈보라와 강풍[强風]을 견디는 모습은
청렴[淸廉]한 선비들의 검소[儉素]한 삶의 모습이다. 

공하면서도 절해버리는 서로 상반되는 성질을 받아들이면서도 충돌하지 않는…
물질적인 부와 정신적인 가난함 속에서 혼돈하는 오늘의 삶에 올 곧은 마디로 
꼿꼿하여 청빈[淸貧]의 세월을 지키고 선 대나무의 자세가 필요한 때이다. 

윤 오월 어느 때 쯤 죽엽주 꿰차고 죽향천리 찾아 담양 대나무숲의 시원한 바람찾아
신비의 정원 ‘소쇄원’이나 가는 날을 잡아 팔죽시나 읊어볼까나.
죽림방초 승화시[竹林芳草 勝花時]가 아니겠는가?

팔죽시 (부설거사)
此竹彼竹 化去竹-- 이런대로 저런대로 되어가는대로
風打之竹 浪打竹-- 바람 부는대로 물결 치는대로
粥粥飯飯 生此竹--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이런대로 살고
是是非非 看彼竹--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런대로 보고
賓客接待 家勢竹--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市井賣買 歲月竹-- 시장 물건 사고파는 것은 세월대로
萬事不如 吾心竹-- 세상만사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도
然然然世 過然竹--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보낸다. 

2017년 음력 윤 5월 13일 죽취일  昔暗 조 헌 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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