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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전혜린의 비극[悲劇]

by 석암 조헌섭. 2015.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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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린의 비극[悲劇]
 
전혜린[田惠麟]은 아버지가 명망 있는 법조인[法曹人]의 유복한 가정에서
 8남매의 맏딸로 태어나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전혜린 자신의 표현[表現]을 빌리면 내 말 한마디는 아버지에게는
지상명령[至上命令]이었고,

또한,
아버지를 신처럼 숭배[崇拜]하였다고 고백[告白]할 정도로 그녀의 부친
 고착심리는 대단했었다.
 그러나 전혜린은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키 위해 일류 학교인 경기 여 중고와
서울대  법대[法大]를 다니면서 마음 한구석에는 끊임없이
아버지(또는 남성)에 대한 모반을 꿈꾸고 있었다.

첫 번째 표징이 고등 학교 때 친구[親舊]와의 거의 동성애 버금가는 열열한
교우 관계[關係]였고, 두 번째 표징은 독일로의 탈출[脫出]이였다.
독일로의 탈출은 아버지에 의해 강요된 서울 법대 진학이 열열한 문학도였던
그녀에게 너무 버거웠다는 것이 표면상의 이유로 작용[作用]했다.

독문학 전공의 유학 생활로 그녀를 완전히 자유롭게 해 주진 못했다.
6개월 만에 그녀는 아버지가 맺어준 법학도 K씨와 결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무심중 아버지에게 탈출해보려는 의도로 전혜린은 아버지가 아닌 제2의
다른 남성과의 결혼을 서둘러 시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사춘기 때부터 독신생활을 꿈꾸어 왔던 전혜린의 자유분방[自由奔放]한
기질을 비추어 볼 때 두 사람의 결혼생활이 행복할 수 없었던 것은 자명한
 이치[理致]였다.

결혼이 그녀에게 가져다준 선물 이었다면 그것은 딸의 출산[出産]이었다.
자식을 낳아본 전혜린은 비로소 모성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경험(經驗)하고
여자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는 한편 부모에 대한 인식[認識]을 새롭게 한다.

하지만 그녀의 잠재의식[潛在意識]속에는  아버지를 사랑하면서도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심리는 이 정도의 체험 하고는 불식 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전혜린은 그 후 이혼[離婚]을 결행하고 나서 그토록 소망했던 대학[大學]
 교수직[敎授職]을 따낸다.

그런데 교수직을 따낸 지 얼마 안 되어 의문[疑問]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말하자면 이혼, 즉 부친과 동일시되는 남성거부 신분상 부친만큼 되기 등이
그녀의 내면적 우훌함을 막아주지 못하여 자살이든 수면제 과욕에 따른
중독사[中毒死]든 어쨌든  그녀는 삶에 의지보다 죽음의 의지가 더 강했기
 때문에 죽어 버렸다고 볼 수 있다.

전혜린을 부친고착[父親固着]으로 본다면 세익스피어의 햄릿은  모친고착
 심리[心理]의 전형[典型]이라 볼 수 있다.
햄릿이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라고 까지 비통히게 뇌까리며 왜
 그토록 우유부단한 고뇌[苦惱]를 계속했느냐 하는 문제는 정신분석학으로
 풀어볼 수 없는 문제[問題]다. 

햄릿은 아버지를 암살하고 왕위를 빼앗은 후 어머니와 결혼[結婚]해버린
숙부[叔父]에게 당장 복수하지 못하고 시간을 지연[遲延]시켰다.
 그 이유는 숙부가 어린 시절 자기의 연적이였던 부친을 죽여준 은인
이였기 때문이다. 

아들은 유아기에 어머니를 사랑하여 어머니를 독점하는 아버지를 죽이
 버리고 싶은 무의식적[無意識的] 충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염세 철학자 쇼펜하워 에게도 찾아볼 수 있다.

쇼펜하워엔 경우엔 모친에 대한 애증 병존의 심리가 고착된 게 아니라 
모친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한 게 적개심[敵愾心]이 그의 한평생을 독신으로
 살게 한 것이다.

결혼은 가장 추악[醜惡]하고 위선적인 행위[行爲]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아득히 먼 훗날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유목사회 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을
내쫓고  아내와 딸을 성적으로 독차지했다.

그래서 아들들은 광포한 권력[權力]을 행사하는 아버지를 선망 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했는데 그러다가 마침내 반항적 성격의 아들 한 놈이 선동하여
형제들은 아버지를 살해[殺害]한다.
그들은 아버지와 같아지고 싶은 욕구[欲求] 때문에 아버지를 잡아 먹은 후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성적으로 소유[所有]했다.

성욕과 식욕 그리고 권력욕을 한가지로 보아 부친 살해에 따른 식인과
근친 성교를 인간의 원초적 본능[本能]이자 도덕적[道德的] 죄의식
 근원으로 파악[把握]하고 있다.
 
아들은 아버지를 제거 함으로서 증오심을 증폭시키고 아버지의 인육을
먹음으로써 아버지와 동일화 소망을 이루긴 했지만, 곧바로 그동안 짐짓
 억제해 왔던 도덕적 죄의식[罪意識]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러한 심리는 곧 양심[良心]의 가책으로 이어져 아버지에 대한 숭모[崇慕]와
 제사 풍습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죽은자가 산자보다 더 강해지는 결과를
 낳았으며 산자는 모두다 죄의식에 시달릴 수 밖에 없게 되어
그 후 동물[動物]을 죽이지 않음은 물론 숭배 까지도 하고 근친 성교를
금기시하며 엄금[嚴禁]하는 것이 풍습[風習]이 되었다.

자식을 훌륭하게 키우려면 부모의 학벌이나 지위가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자식에게 아무것도 훈계하지 말아야 한다.
더러운 개천에서 미꾸라지가 자유롭게 해엄쳐 다니며 소독된 물에서는
 물고기가 살 수 없듯이 자식을 키울 때는 지극히 야[野]하고 지극히 무식하게
 키워야 한다.
그래야만 독창적인 판단이 길러진다고 한다.

어머니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남자는 결혼을 숨겨진 동기와 여자에
 대한 복수심[復讐心]일 경우가 많다.
사랑과 미움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겉으로는 상대방 여자를 사랑한다고
확신하여 결혼을 결심하지만 사실상 진짜 동기는 미움이기 쉬운 것이다.

그래서 일단 결혼한 다음엔 자기도 모르게 아내에 대한 한판 복수극[復讐劇]을
 벌이게 된다. 지나치게 권위적인 아버지에게 강압적인 교육울 받고 자란
 여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여자의 잠재의식[潛在意識]에는 사랑이 아닌 복수심이 활활 불타고 있다.
 
그래서 결혼은 신중해야 한다. 결혼할 때 가장 명심해야 할 것은
 남자는 상대방(相對放) 여자가 가진 어머니에게 끌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여자는 상대방 남자가 가진 자기 아버지에 끌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가족 관계(家族 關係)로부터 뻔뻔스러운 탈출을 도모(挑謨) 해야 한다.
 
그리고 효도에 대한 지나친 강박관념 증으로 부터 벗어나야 한다.
효도에 대한 지나친 강박증은 도리어 부모와 자식사이가 멀어질 수도 있다.
또한, 부모의 재산(財産)이나 후광에 비굴하게 의지하는 근성을 버려야 한다.
부모의 후광역시 스스로 정체성(正體性)에 흠집을 내게 된다.

2015년 10월 16일  
석암 조 헌 섭



찢긴가슴=아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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