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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정자나무회 모임(2015년 8월 8일)

by 석암 조헌섭. 2015.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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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나무회 모임(2015년 8월 8일)
뇌룡정

뇌룡정은 신명사 마음의 집 으로 눈 < 경, 마음 > 귀
외단자의 내명자경
 
처사로서 언론을 발하여 국정을 비판하였으며, 이때 학문(學文)과 도덕(道德)
인격(人格)과 사상(思想)은 널리 알려져 오건(吳建), 정인홍(鄭仁弘), 노진
(盧鎭) 하항(河沆) 등 기성학자들이 남명문하에 들어와 사림의
영수로 추대되었다.
 
뇌룡정에서 읊었다는 좌우명은 남명의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뇌룡이란 장자의 연묵이뇌성(淵默而雷聲) 시거이용견(尸居而龍見)깊은
연못처럼 고요하다가 우뢰처럼 소리치고,죽은 듯이 가만있다가
용처럼 나타난다.

남명은 타락한 권력을 질타하고 무기력한 지식사회에 경종을 울림으로써
어지러운 시대에도 재야의 정신은 시퍼렇게 살아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55세 때 1555년 단성 현감에 제수 되었는데 현감 직을 받는 대신 온 나라를
       진동시킨 상소문 단성소(丹城疎)를 올리자 선생의 명망은 극치에 달했다.
 
다음은 단성소와 민암부의 내용을 알아볼까 한다. 
단성현감 사직소( 단성소을묘사직소)
 ● “나라의 기틀은 무너졌고 민심이 떠난지 오래입니다. 높은 벼슬아치는 오직
재물에만 탐하여 물고기의 배가 썩어들어 가는데도 이를 바로 잡으려 하지 않습니다.
대왕대비는 세상 물정 모르는 바깥소식이 막힌 깊은 궁궐 안의 한 과부에
지나지 않고 전하는 선왕의 어린 아들에 불과할 뿐이니 천 갈래 만 갈래 흩어진
민심을 어떻게 수습할 수가 있겠습니까.....
나라의 형편을 바로 잡는 길은 여러 가지 법령에 있지 않고 오직 전하께서 크게
한 번 마음 먹기에 달린 것입니다...... 라는 것이 상소문의 요지이다”. 
● “전하의 국사는 이미 글렀고, 나라의 근본은 이미 망했으며,
하늘의 뜻은 벌써
 가버렸고, 인심도 이미 떠났습니다.
마치 큰 나무를 벌레가 백년 동안 속을
갉아먹어서 고액이 이미 말라 버린 채, 멍하니 질풍 폭우에
쓰러질 날만 기다린 지가 오래된 것과 같습니다.
 
 조정에 충성스러운 신하와 근실한 선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형세가 기울어서 지탱할 수 없으며, 사방을 둘러봐도 손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민암부(民巖賦)  
"백성은 물이요, 임금은 물 위의 배에 지나지 않는 것. 배는 모름지기 물의 이치를
알아야 하고 물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지론을 거침없이 갈파한 남명(南冥)
벼슬아치는 가죽 위에 돋은 털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가죽을
벗기는 탐관오리(貪官汚吏)를 질타한 내용이다.
 남명 조식은 상소문 단성소와 민암부에서 대왕대비(문정왕후)를 세상 물정 모르는
과부 또는 아녀자라 하고 22세의 전하(명종)를 물 위의 배에 비유하며
 어린애(고아)에 불과하다고 했으며 벼슬아치는 백성을 껍데기를 벗기는
 
 탐관오리만 한다고 하였으니, 왕조시대인데도 온 나라를 진동시킬 만큼 국정을
 극렬하게 비판한 것은 조선조 500면 역사상 전무후무(前無後無)한 것이다.
 
남명이 이렇게 직방강직한 상소문을 올렸어도 포도청에 한 번 안 끌려간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한 분이라 생각된다.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의 사상과 철학.
 
남명사상(南冥思想)은: 수기치인(修己治人), 실천궁행(實踐躬行)으로
"몸소 갈고닦은 것을 실제로 행동에 옮긴다"는
실천유학(實踐孺學)을 강조했으며,

남명 철학(哲學)은:경(敬)과 아울러 의(義)를 강조한 경의협지로
"경(敬)으로써 내면을 밝혀 마음을 곧게 하고 의(義)로서 행동을
결단하여 모든사물을처리해 나간다,는 생활철학(生活哲學)을
견지하였으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당시 사회 현실과 정치적
모순에는 적극적인 비판의 자세로 임하였다.
남명 선생을 문인들이 평하기를......
한강 정구(寒岡 鄭逑대사헌):선생의 기질은 태산교악(泰山喬嶽)으로
행동이 태산과같이 크다 하였고,
 동강 김우옹(東崗 金宇顒대사헌);성정은 추상열일(秋霜烈日)로
가을의 서릿발이나 여름의 태양처럼 엄정하고 권위가 있었으며,
 
미허목(眉受許穆우의정):선생의처세를불구종(不苟從)불구묵(不苟默)으로           
    불의를 보고 구차하게 따르지도 않았고구차하게 침묵하지도 않았다.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좌의정) :선생의 공덕은 입유렴완(立濡廉頑)으로
나약한 선비를 강하게 만들었고 탐악한 관료들을
청렴하게 만들었다고 하였으며,
 
율곡 이이(栗谷 李理 이조판서) : 선비의 지조를 끝까지 지킨 이는 오직
   이 세상 남명 뿐이라 하였고,
택당 이식(澤堂 李植 이조판서) :고고한 자세로 세상을 내려다 보았다고
하였으니 진정한 처사야말로 나 뿐이야 라는
 말을 남겼을 만큼 우리 역사에 유일한 처사요
가장 성공한 교육자로 평가 받고 있다.
2015년 8월 8일 昔暗 조 헌 섭

석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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