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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취옥백채(翠玉白菜)

by 석암 조헌섭. 2014.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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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옥백채(翠玉白菜)

때는 바야흐로 김장철인가 보다. 
김장하기 알맞은 때는 중부지방에는 11월 하순 영남 지방에는 
12월 초순이 김장 적기란다. 

올해는 채소 작황(作況)이 좋아 배추와 무우값이 떨어져 
 소비자(消費者)는 좋지만, 농민(農民)은 울상이다. 

한국사람은 마누라(영감) 없이는 살아도 김치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이 있다, 
별반이 없어도 김치 하나만 있으면 식사형통이다. 

 그런데 김치의 주원료인 이 배추라는 말이 생겨난 
기원(紀元)이 재미있다. 

 타이베이 박물관(博物館)에는 중국인(中國人)이 자랑하는 
 취옥백채(翠玉白菜)라는 조각품이 있는데, 
 흰 바탕의 옥(玉)에 푸른 잎의 배추가 실물(實物)처럼 
 조각(彫)되어 있다. 
속의 몸채가 희어서 백채(白菜)로 불리던 것이 배추로 변음 
 되었다고 한다. 

날것으로 먹는다 하여 생채(生菜)로 불리던 것이 상추로 
 변음(變音)된 것과 같은 현상(現象)이다. 
중국인들은 옥(玉)에서 기(氣)가 발생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옥을 많이 애용하였는데 황제가 사용하던 인장도 
 우리나라처럼 국새(國璽)가 아니라 옥새(玉璽)라고 한다. 

 이 취옥백채(翠玉白菜)는  당시 권력자(權力者)이던 
서태후(西太后)에게 바쳤는데 만든 이는 곧 행방이 묘연 

 하게 되었다. 

이유인 즉 
이 취옥백채의 잎 부분에 붙어 있는 두 마리의 메뚜기 

 때문인데, 이 보물(寶物)을 조각한 사람이 한족이였다. 
조각품 속의 메뚜기가 만주족이 세운 청(淸)나라를 망하게 
 해달라는 한족의 염원(念願)이 담져져 있다는 것이었다. 

즉 메뚜기가 배춧잎을 갉아먹게 조각한 것은 청나라를 갉아 

 먹으라는  숨은 뜻이 담겨 있다고 본 것이다. 

이를 알아차린  서태후는 조각가를 잡아들이라고 하자 

조각가(彫刻家)는 사라져 버린 것이다.
과연 이 조각가는 이 불멸(不滅)의 작품을 만들면서 그러한 
 염원(念願)을 담았을까? 
그리고 이를 예견(豫見)하고 사라져버린 것일까? 

옛날의 불후(不朽)의 명작(名作)을 남긴 장인들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권력자의 해석(解釋) 여하에
 따라서 영광(榮光)보다 비참(悲慘)한 최후(最後)를 
맞이했던 일이 많았다고 한다. 

2114년 11월 30일
昔暗 조 헌 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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