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김만덕·육당 따라 팔도 유람가세
1795년, 거상(巨商) 김만덕이 사비를 털어 배 곯던 제주 백성 1000 여명을 살려내자
정조 임금이 답례로 소원을 물었다. 만덕이 감읍하여 답하기를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보는 것’이라고 했다.
남부러울 것 없던 거부의 소원이 고작 여행이라니, 예나 지금이나 여행에 대한
로망은 매한가지였나 보다. 특히 조선은 여성의 자유여행을 금했던지라,
규방을 벗어나 산천을 유람하고 싶은 욕망은 더 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몰락한
양반의 서녀인 김금원은 열네 살에 남장을 하고 길을 떠났고,
의유당 남씨는 판관인 남편을 졸라 관북 지역을 돌고 유람기를 남겼을까.
여행이란 본디 내 자신을 더 잘 들여다보고자 낯선 풍광 속에 스스로를 던지는
행위다. 그러니 옛 사람의 속내를 깊게 알려면 ‘역마살의 역사’를 살펴보면
될 것이다.
이 책은 조선여인들의 고군분투 여행기부터 보부상의 팔도유람기, 일제강점기의
수학여행기까지 총 13개의 여행기를 테마별로 엮었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조선 사람의 세계여행』『세상 사람의 조선여행』에 이어 펴낸 세 번째
여행 시리즈다. 그 중 몇가지를 살펴보자.
사도세자가 세상을 뜨기 두 해 전인 1760년, 다리에 생긴 습창을 치료하려고
10여일 동안 온양 온천으로 행궁을 했다. 이 행궁은 단순한 ‘힐링캠프’가
아니었으니, 바로 사도세자의 정치적 가능성을 확인해보려는 시험대였다.
영조는 사도세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받았다. 특히 세자를 보러 나온
백성이 많았는지 자주 체크했다고 한다. 다행히 그의 덕행을 칭송하는 목소리가
높았다고 하는데, 편안한 행궁이 되었을지는 의문이다.
지방 양반들의 과거 시험 상경기도 있다. 이들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여행은
과거를 보러 한양에 가는 것이었다. 경북 선산 출신의 노상추(1746~1829)는
다섯 번 낙방한 끝에 12년 만에 급제했다. 그는 매번 눈비를 맞으며 10여 일을
꼬박 걸어 한양까지 갔고, 경비가 없어 토지를 팔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서른넷의 나이에 합격을 했는데, 요즘 취직 시험의 어려움은 비길 바 없겠다.
보장됐던 ‘암행어사 길’, 단군의 실재를 찾아 떠난 ‘최남선의 백두산 여행기’
등이 있다. 당대의 그림, 고지도가 풍부하게 수록돼 보는 재미도 있다.
한가지 더, 조선판 ‘방콕’인 와유(臥遊)도 있다. 말 그대로 집에 누워서 기행문을
읽거나 그림을 보며 상상여행을 즐기는 방법이다. 올 여름 휴가 계획이 없다면
이 책을 읽으며 와유를 해도 좋겠다.
12,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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