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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송사이와 최력

by 석암 조헌섭. 2012.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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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이와 최력
 
 송사이(宋師 , 1520∼?)의 자는 경숙(敬叔)이고, 호는 신연(新淵)이며, 본관은 여산(礪山)으로 성주(星州)에 거주하였다. 
그는 야성군(冶城君) 길창(吉昌)의 후손이다.

과거 및 벼슬 : 1570년(선조 3년)에 생원시에 합격하여, 과거를 준비하다가 경기전참봉이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향리에 은거하였다.

 정구(鄭逑), 김우옹, 최영경 등과 교유하면서 학문을 닦았다.
그는 평소 조행이 견고하고 온의한 태도를 지녀 남명선생이 그의 집을 자주 찾아가 고금의 일을 토론하였다고 하며,

정구(鄭逑)도 그를 엄사(嚴師)와 같이 대하며 함께 의리를 강구하면서 동향의 선비들과 월강의 계를 맺기도 하였다고 한다.

38세 때(1557년, 정사) 박찬, 정구(鄭逑), 김우옹, 김면, 이린,
이홍량(李弘量), 이승, 이기춘(李起春) 등과 더불어 강학논도(講學論道)하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 성주에 신연서원(新淵書院)을 창건하여 
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위패를 모셨다.


최력


최력(1522∼?)의 자는 대수(大樹)이고, 본관은 완산(完山)이며,
화담(花潭)의 문인이기도 하다.
그는 {근사록}, {성리대전} 등을 애독하였으며, 처음에 화담 서경덕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며,  화담이 높이 평가하기도 하였다. 

그는 남명선생의 문하에 출입할 때, 선생께서 그의 청고초매함과
 도량이 넓음을 보고 경애(敬愛)하였다고 한다.
을사사화 때 체포되었다가 풀려났으며, 인조 초에 유일로 천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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