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김용이 왜 세계은행을 맡았을까?
채인택 논설위원
미국 아이비리그인 브라운대를 거쳐 1991년 하버드 의대를 마치고 이 대학 최초의 의학·사회과학 협동 프로그램에 따라 93년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93년 하버드대 의대 교수에 임용돼 국제보건·사회의학과장을 맡았고 2003~2006년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 국장으로 활동했다.
2009년부터 다트머스대 총장을 맡다가 이번에 세계은행 수장에 올랐다. 이런 학력과 경력이
지금의 그를 만든 데 일조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는 여기에 결정적인 세 가지를 더했다. 창의성과 헌신성, 그리고 열정이다.
그는 의대생이던 87년 동료 폴 파머(현 하버드 의대 국제보건·사회의학과장) 등과 함께 ‘건강의
파트너(PIH)’라는 봉사단체를 조직해 카리브해 연안의 가난한 나라 아이티에서 봉사활동을
벌였다.
단순 봉사활동이 아니었다. 치료 중심에서 탈피해 가난한 환자가 빈곤과 질병에서 동시에
벗어나도록 돕는 창의적인 프로그램을 고안했다.
급수·영양공급·교육·주거 향상 등으로 지역사회 주민의 생활을 향상시키면서 결핵·에이즈를
치료했다. 의료봉사 활동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이며 생산적인 방법으로 진화시킨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생활이 나아지면서 병도 함께 회복돼 갔다.
가난이 병을 만들고 병환이 다시 빈곤을 부르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은 것이 주효했다.
90년대 초까지 이 프로그램의 도움으로 치유된 아이티 주민이 10만 명을 넘는다.
김용은 이러한 지역의료 성공사례를 남미·아프리카·중앙아시아 등 전 세계 빈곤국 현장을 두루
누비며 전파했다. 지역사회 의료 프로젝트를 연구·수행하는 하버드대 국제보건·사회의학과장이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WHO 활동을 위해 2003년 하버드를 떠날 때까지 무려 16년 동안 PIH 활동을 계속했다.
가난한 환자들을 돕겠다는 헌신성과 열정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아이디어와 헌신적인 실천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지식이나 학위가 아니라
그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느냐에 있다.
강단의 의료인이나 이론가가 아니라 현장의 실천적인 의사이자 프로젝트 수행자로서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헌신해 왔기에 개발과 빈곤퇴치가 주 업무인 세계은행 수장에 발탁된 것이다.
김용과 2009년 인터뷰한 월스트리트저널 건강 분야 블로거인 알 멀리는 이런 말을 남겼다.
“중요한 건 김용이 의사란 사실이 아니라 그가 그 의학 지식을 어디에 쓰려는가에 있다.
그는 자신의 지식을 활용해 지구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성가신 문제를 해결하려고 도전하고 있다. 그게 그를 가치 있게 하고 있다.”
그런 김용 총재가 취임 첫날 직원과의 대화에서 “한국을 본보기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이 지난 60년 동안 거둔 개발과 성장의 성과를 가리킨 말이다.
한국은 여기에 호응해 빈곤국 개발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가해야 한다. 개발원조 활동의 하나로
제2의 이태석 신부가 남수단을 비롯한 빈곤 지역에서 일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도울 수도 있다. 아프리카·남미·중앙아시아의 가난한 나라 주민들이 보건의료를 자급할 수 있도록 의과대학을
현지에 설립해 ‘이태석 기념 의과대학’으로 이름 붙이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6·25 직후 전국에 불과 6곳뿐이던 의대를 지금 41개까지 늘린 저력의 한국이니 못할 일도 없다.
현지 제약공장을 세워 기초의약품과 백신 자립을 돕는 것도 필요하다.
새마을운동 경험을 전수할 수도 있다. 한국은 이런 국제 개발사업 참여를 통해 국가 이미지를
높이고 한국민의 자긍심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를 통해 한국 젊은이들이 해외에서 창의성과 헌신성, 그리고 열정을 키울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 가운데 제2의 김용이 나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고.
채인택 기자 [ciimccp@joongang.co.kr]
김용 첫 출장지 ‘개도국 성공 모델’ 한국
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소식통에 따르면 김 총재는 오는 9~10월 방한을 앞두고
구체적인 일정을 조율 중이다.
취임 직후 한국행이 거론되는 것은 세계은행이 개발도상국과 후진국 등을 지원하며 롤
모델로 삼는 국가가 바로 한국이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든 한국처럼 성공할 수 있고, (발전이) 불가능한
국가는 없다는 낙관론으로
업무에 임해야 한다”는 취임 일성도 눈길을 끌고 있다.
김 총재는 업무를 시작한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내가 미국에 왔던 다섯 살 때만 해도 많은 이들이 한국을 ‘바스켓 케이스(basket case)’라고 했다.
지금 한국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보라”고 말했다. 바스켓 케이스는 1차 세계대전 당시
부상으로 사지가 절단된 병사를 양동이에 담아 옮긴 데서 유래한 말로,
희망이 없거나 경제가 마비된 국가를 지칭한다.
일각에선 김 총재의 방한이 기금 조성을 위한 목적이란 분석도 나온다.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 등이 기금 조성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전쟁 폐허를 딛고 일어나 수혜국(donee)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인 공여국(donor)로
거듭난 한국은 유럽·미국 등의 경제가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그 위상이 커지고 있다.
김 총재는 지난 4월 주요 회원국의 지지를 구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해 이명박 대통령
등과 면담했다.
2012.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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