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이야기(473)

청량산

by 석암 조헌섭. 2012. 5. 26.
반응형

 

                                                 청 량 산

 

 

기암괴석에 ‘靑霞洞天(청하동천)’이란 흘림체 글씨가 새겨 있다.

 때는 조선, 귀신 울음소리가 들려 선비들이 공부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이 글자를 새겼더니 귀신 소리가 사라졌다고 한다. 갑자기 뒤에서 “악! 악!” 계곡을

 울리는 비명소리가 들린다. 귀신이라도 나타났나 싶었는데 송지혜 기자의 손 위로

 왕거미가 떨어졌단다.

송 기자는 “생전 처음 본 거미 모양이었다”고 했는데 귀신인지 의심해 볼 만하다.

 드디어 석천계곡이다. 겹겹이 포개 놓은 산들이 얼음장 같은 계곡물을 토해 낸다.

 참, 운치도 있지. 계곡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석천정사가 걸려 있다.

16세기 충재 권벌(1487~1547)의 큰아들인 권동보가 학문과 수양을 목적으로

지었다고 한다.

지붕 밑에 걸린 ‘溪山含輝(계산함휘·계곡과 산이 빛을 머금고 있다)’란 현판이 예나

 지금이나 이곳이 그대로임을 알려 준다. 졸졸 계곡물에 산들바람까지 불자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고 마루에 누웠으면 싶다.

이 경치에 공부라니, 학문을 위한 선조들의 자제력은 실로 대단한 것?

달실마을 ‘충재 선생의 지조’

 석천정사를 지었다는 충재 선생의 고택으로 갈 시간이다. 도보로 15분쯤 걷자 ‘금빛 닭이 알을 품고 있는 모습 같다(金鷄抱卵·금계포란)’고 하여 지어진 달실마을이

 나타난다(달실은 경상도 방언으로 닭 모양의 마을이란 뜻이다).

푸른 산이 기와집들을 뺑 둘러싸고 있으니 ‘알을 품은 산’이 맞다. 석천계곡부터

석천정사, 달실마을까지 이 근방은 사적 가치가 높아 명승 60호로 지정돼 있다.

 안동 권씨 집성촌인 이곳은 충재 선생이 기묘사화(1519·중종 14년) 때 낙향해 터를 잡았다. 그의 지조는 참으로 대쪽 같았던 터라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며 권력을 휘두를 때 “그만 내려가시라”고 고했던 분이다.

 충재 선생이 후학 양성을 위해 지은 청암정에 이르자 거북이 모양의 큰 바위 위에

 정자 한 채가 그림같이 서 있다.

쪽빛 연못이 바위를 감싸니 거북이가 정자를 등에 업고 연못을 헤엄치는 형상이다.

 고향을 지키며 종가의 명맥을 잇고 있는 충재 선생의 18대손 권종목(69)씨는

“이곳에서 드라마 ‘바람의 화원’과 영화 ‘음란서생’ ‘스캔들’을 촬영했다”고 설명했다.

 권씨 가문의 유물을 모아 놓은 박물관(054-674-0963)을 도는데 문화재 담당 이영희 기자의 눈매가 슬프다. 이 기자는 “야유회가 아니라 일하러 온 것 같다”며

 수첩을 꺼냈다.

 여기서 잠깐. 권씨 가문의 총명함은 그 여종까지 미쳤는데, 바로 시인 설죽이다.

 충재 선생의 손자 권래의 여종인 설죽은 어깨너머로 한자를 깨쳤다.

당시 양반들은 딸에게도 글을 못 배우게 했는데 설죽이 얼마나 똑똑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는 주인과 함께 명산대천을 유랑하며 양반 사대부들과 시를 교류했다고 알려져 있다. 총 168수의 주옥 같은 한시를 남겼다. 여기 ‘이른 봄(早春)’이란 시를 읊어 본다. “봄비 내리자 배꽃이 하얗게 피고/ 봄바람 불자 버들개지 노랗게 피었네/ 누가 피리를 부는지/ 매화향기 흩날리누나(春雨梨花白/東風柳色黃/誰家吹玉笛/搖揚落梅香).”

오록마을 ‘살아 있는 부처’

 국립수목원 조성 예정지

 아, 볼 건 많고 시간은 없다. 특히 2014년 개장할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조성지는

 꼭 들러야 할 터. 봉화는 태백산·청옥산·청량산 등 높은 산이 많아 ‘경북의 오지’로

 불리지 않았던가.

 춘양면 서벽리 금강소나무숲에 들어서자 높이 20m가 넘는 소나무가 하늘을 보고

 쭉쭉 뻗어 있다.

 일련 번호가 적힌 소나무가 무엇인가 했더니 문화재 재건용 목재로 쓸 것들을 체크해 놓은 것이었다. 정강현 기자는 언제 문화재가 될지 모를 소나무를 부둥켜안고 정기를 받는 시늉을 한다. 이런, 동그란 얼굴 탓에 곰 한 마리가 나무에 매달려 버둥거리는

 것 같다. 정곰현 기자, 진정한 물아일체다.

 그런데 생각보다 숲이 울창하지 않다. 숲해설가이자 영주국유림관리소 이상을 보호팀장은 “워낙 목재가 좋다 보니 일제의 산림 수탈과 근대의 남벌 타깃이 됐다. 그나마 토질이 좋아 소나무가 금방 자라 다행이다”고 했다. 2년 후 수목원이 개장하면 이곳에 백두산 호랑이 열여섯 마리가 방사된다. 부디 그 옛날 ‘숲의 왕좌’ 자리를 되찾기를.

청량산 등산과 김생굴

  자, 이제 봉화여행의 화룡점정, 클라이맥스 청량산(높이 870m) 등반이다. 봉화 사람들은 슬리퍼를 신고도 오른다고 했는데, 이거 뭐 주변 등산객을 둘러보니

히말라야에 오를 기세다. 평소 마라톤으로 체력을 단련해 온 강기헌 기자는 날다람쥐처럼 휙휙 앞서 나간다. 경사가

심한 계단 코스에 들어서자 “벌써 이러면 안 되는데”라며 하 기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이를 본 권혁재 기자, “어느 때보다 예뻐 보인다”며 때아닌 칭찬을 한다.

 산 중턱 김생굴에 이르니 재미있는 설화가 적힌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야기는 이렇다. 통일신라의 서예가인 김생이 이 굴에서 9년간 명필 수련을 하고 하산하려는데 청량봉녀가 나타나 한 가지 제안을 한다. “불을 끄고 내 길쌈 솜씨와 네 서예 솜씨를

 겨뤄 보자.” 김생은 자신만만하게 “도전!”을 외쳤으나 불을 켜 보니

 글씨가 삐뚤빼뚤하더란다.

 깨달음을 얻은 김생은 1년을 더 연마해 10년을 채운 뒤 하산해 명필이 됐다.

 한석봉 일화와 비슷하다며 발걸음을 옮기는데 정곰현 기자가 중대 발표를 한다.

 그런데 산을 오를 땐 안 보이던 야생화며 기암괴석이 눈에 들어온다. 벌써 청량산이 세 번째라는 권혁재 기자는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아름다운 게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청량산 매니어였던 퇴계 이황 선생은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는 나와 백구뿐’이라는 시조를 남겼을 정도로 이곳을 사랑했다. 이에 질세라 지난해 중앙일보 노조 노래경연 1등 송지혜 기자가 읊조린다. “가슴에 청량산을 안고 가고 싶다. 산 천지가 내 안에 들어왔다.”

박정호 부장 : 신필(神筆) 김생과 청량봉녀(縫女)의 한판 대결, 한석봉이 ‘형님’ 하며 울고 가겠네.

권혁재 : 산행에 지친 나그네에게 차 한 잔 무료로 나눠 주는 청량산 산꾼의 집,

청량하다.

하현옥 : 축서사. 눈앞은 일망무제, 등 뒤론 신록과 녹음의 향연.

이영희 : 달실마을 충재기념관의 과거시험 전국 2등 답안지, 수백 년 전 엄친아의

포스가!!

정강현 : 청량산 기슭을 굽어보던 기암(奇巖)들의 행렬! 맑고(淸) 서늘한(凉) 산에서,

 잠시, 혼미했다.

 

 

반응형

'나의 이야기(473)'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평생(1881→2050)달력(음,양력   (0) 2012.06.14
인[仁] 의[義]란 무엇인가?  (0) 2012.05.30
여수 액스포 야경  (0) 2012.05.12
여수엑스포 동행 취재  (0) 2012.05.12
황혼의 슬픈 사랑이야기  (0) 2012.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