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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463)

유아무와 인생지한(有我無蛙 人生之恨)

by 석암 조헌섭. 2018. 1. 29.

 

아무와 인생지한(有我無蛙 人生之恨)
 

유아무와 인생지한(有我無蛙 人生之恨)이란
“(실력 있는)나는 있지만, (뇌물로 쓸)개구리가 없는 것이 내 인생의 한이다.”라고
풀어볼 수 있다.
고려시대 명종 임금이 하루는 단독으로 야행을 나갔다가 깊은 산중에서 날이 저물어
민가를 하나 발견해 하루를 묵고자 청을 했지만, 집주인 이규보(李奎報)는 조금만 
더 가면 주막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여, 명종임금은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리려 하였다. 

그런데 이규보 집 대문에 붙어있는 “유아무와 인생지한(唯我無蛙 人生之恨)"이라는 
글이 궁금해 "도대체 개구리가 뭘까.?"  명종 임금은 개구리가 뜻하는 것을  
생각해 봤지만 감이 잡히지 않아 주막에 들려 국밥을 한 그릇 시켜 먹으면서, 
이규보(李奎報) 집에 관해 물어보았다.

 주막집 아줌마는 이규보는 과거에 낙방(榜)하고 마을에도 잘 안 나오며, 

집안에서 책만 읽으면서 살아간다는 얘기를하여 궁금증이 발동한 임금은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가서 사정사정한 끝에 하룻밤을 묵어갈 수 있어 궁금했던
유아무와 인생지한(唯我無蛙 人生之恨)"이란 글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옛날 우화에 꾀꼬리와 뜸부기(가마귀란 말도있다)가 서로 다투는데 각각 자기

 목소리가 훨씬 아름답다고 우겼다. 
둘만으로는 승부(勝負)를 판가름 할 수가 없어 백로를 심판으로 내세우고
 그 결과(結果)를 3일 뒤에 듣기로 했다.


 자신이 만만하지만 꾀꼬리는 3일 동안 목이 터질 듯 연습을 하였고 

뜸부기는 백로가 가장 좋아하는 개구리를 잡아 꾀꼬리 몰래 매일같이 뇌물()로
 바쳤다.
3일 후 백로는 자기가 좋아하는 개구리를 뇌물로 바친 뜸부기가 꾀꼬리 목소리

보다 더 좋다는 판정(判定)을 내렸다.

 이규보는 이런 중국 우화(寓話)를 인용하여 번번이 과거시험에 낙방한 자신의
 처지를 빗대어 부패한 조정(朝廷)에 대한 자탄(自嘆)의 글을 쓴 것이라고 전한다.

한동안 꾀꼬리는 노래 시합에서 뜸북이에 패배(敗北)한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얼마 지나서 백로가 가장 좋아하는 개구리를 잡아다주고 뜸부기가 뒤를 봐 
달라고 힘을 쓰게 되어 본인이 패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아무와 인생지한(唯我無蛙 人生之恨)』"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다"
라는 글을 대문에 붙여 놓았다고 하니 이 글은 이규보(李奎報)선생이 임금한테
 불의와 불법으로 뇌물을 갖다 바친 자에게만 과거 급제의 기회를 주어 부정부패로
 얼룩진 나라를 비유(比喩)해서 한 말이라! 
이때부터, 와(蛙개구리 와). 이(利이로울 이) 로(鷺백로 로).와이로(蛙利鷺) 란 말이
 생겼다고 한다.

“와이로(蛙利鷺)”백로(白鷺)를 이롭게 하는 개구리를 와이로(蛙利鷺뇌물)로 바친 
뜸부기가 꾀꼬리보다 목소리가 더 크게 노래를 잘한다는 판정을 받았다는 재미있는
 우화(寓話)다.

그런데 “와이로(蛙利鷺)”는 한국어 사전에는 나오지 않고 일본어 사전에는

 이 ‘와이로’는 회뢰(賄賂) 또는 뇌물(賂物)의 뜻이고,
 ‘사바사바’는  비밀스럽게 속으로 부정한 담합(談合)을 하는 것’이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사실 이 와이로는 일본말이 아니라 우리나라 말 ‘와이료(蛙餌料)’에서
 나온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와이료’의 뜻을 보면, 와는 개구리(蛙). 이는 먹이(餌)와 료는 되질할 료(料) 이다. 
한마디로 ‘와이료’는 개구리밥값’ 정도로 풀이가 된다.

여기서 나온 말이 ‘개구리 와’(蛙) ‘이로울 리’(利) ‘백로 로’(鷺)인 ‘와이로’가
 ‘와이료(蛙餌料) 로 변했고, 따라서 이 말은 일본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이 고사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전한다.
 
이규보(李奎報)선생 자신(自身)이 생각해도, 그의 실력이나 지식(智識)은 어디에
 내놔도 안떨어지는데 과거를 보면 꼭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돈도 없고, 정승의 자식이 아니라는 이유(理由)로 과거를 보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노래를 잘하는 꾀꼬리와 같은 입장이지만, 뜸북이가 백로한테 개구리를 
상납한 것처럼 뒷거래를 하지 못하여 과거에 번번히 낙방하여 초야에 묻혀 살고 
있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임금은 이규보(李奎報)선생의 품격이나, 지식이 고상(高尙)하기에
자신도 과거(科擧)에 여러 번 낙방(落榜)하고 전국을 떠도는 떠돌이인데,
며칠 후에 임시(臨時) 과거(科擧)가 있다 하여 개성으로 올라가는 중 이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리고 궁궐에 돌아와 즉시 임시 과거(科擧)를 열 것을 명하였다고 한다. 

과거를 보는 날, 이규보도 뜰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마음을
가다듬으며 준비(準備)를 하고 있을 때 시험관이 내 걸은 시제(詩題)가 바로 
“唯我無蛙 人生之限” 이란 여덟 글자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를 생각하고 있을 때, 이규보선생은 임금이 
계신 곳을 향해 큰절을 올리고 답을 적어 냄으로써 장원급제(壯元及第)하여 
차후 유명한 학자(學者)가 되었다고 한다.

한데 지금 세상은 이 개구리밥값 정도의 ‘와이료’가 아니라 천문학적(天文學-的)인
 뇌물이 왔다 갔다 한다. 
나라를 말아먹을 정도로 원전비리, 방산비리까지 국정원 특활비 간첩잡는 돈까지
 먹이사슬로 연관되어 있고,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은 사업을 포기할 정도라고 한다.
마치 대원군 시절 '당백전' 팔아 팔도에 '능참봉' 팔아먹 듯 하니 조선이 멸망하듯… 

하기야, 매관매직(賣官賣職)은 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역사에서 거듭됐다. 
특히 나라가 올바르지 못할 때일수록 기승을 부렸다. 바로 돈과 명예(名譽), 
 권력욕(權力慾) 때문에 나라가 망할까 두렵다.



성실히 땀 흘리고 받는 대가는 신성하다. 그러나 돈 때문에 인면수심(人面獸心)이
 되고
돈 때문에 양심을 속이고, 돈의 힘으로 권력과 명예(名譽)를 얻는다면
 떳떳하지 못하다.
적어도 양식을 제대로 갖춘 자라면 돈의 노예(奴隸)는 되지 말아야 한다.




2018년 1월 하순
석암 조 헌 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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