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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128)

사육신

by 석암 조헌섭. 2011.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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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육 

 

          매죽헌 성 삼 문(梅竹軒 成三問) (1418-1456 년)

 

성삼문(成三問)

조선 세종때의 문신으로 사육신의 한사람

집현전 학사로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성삼문’ 세조가 단종을 쫓아내고 왕에

 오르자

국새를 안고 통곡했다.

불에 달군 쇠로 다리를 뚫고 팔을 잘라내는

고초를 격다 죽었다.

  

 

  

                               

취금헌  박팽년(醉琴軒 朴彭年) (1417-1456년)

 

박팽년[朴彭年]

 

사육신의한사람 황보인,김종서등과함께 문종과 단종을 보필하여 단종 복위에 힘썼다.

박팽년[朴彭年]은 모진 고문[拷問]을 받다가 숨을 거두었다.

세조는 숨을 거둔 시신의 사지마저 찢게했다. 그가 죽은 뒤 그의 아버지와

 형 등 일곱 명이 처형[處刑]됐다.

문무[文武]를 겸비한 김문기[金文起]는 단종 복위와 관련, 군대를 동원하는 임무[任務]를 맡았다. 그 또한 사지[四肢]가 찢겨 죽었다. 

 

박팽년은 세종 16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集賢殿] 학사가 되어

 사육신[死六臣] 등과 함께 한글 편찬[編纂] 사업에 참가 하였다.
문종 재위 2년 만에 병고로 서거하자 고명을 받아 어린 단종을 돕다가 충청도

관찰사[觀察使]로 나갔다.

 

외직에 있는 동안 수양대군은 황보인, 김종서, 안평대군을 죽이고 왕권을

찬탈한 사건인 계유정난[癸酉靖難]이 일어났고 그 후 형조참판으로 제수되어

 내직으로 돌아온 박팽년은 사육신 등과 함께 단종복위 운동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함께 모의했던 간생이 김질이 장인 정창손[鄭昌孫]에게 밀고하여

세상에 밝혀져 단종 복위가 실패로 돌아가 모두가 체포되어 투옥되는데,

사실을 부인 하기만 하면 살려줄 것이라 하였건만 끝내 이를 거절 하였다.

 

  

 

단계 하위지(丹溪 河韋地1387-1456)

 

 

단계 하위지(丹溪 河韋地)

단계 하위지(丹溪 河韋地)

문종때는 수양대군과 함께 여러

 공을 세우기도 했다.

 

단종 복위와 관련해 결국

수양대군에게 사지를 찢겨 죽는

 형벌을 받았다.

 

 


               이곳이 바로 의관을 보관한 곳이로다 

  

백옥헌 이개(白玉軒 李塏 ?-1456년)

 

이개 ?-1456년 한산이씨 이색의 종손 1447년 세종27년 중시에 합격 벼슬이

직제학에 이르렀으며 시문이 청절하여 세상에 이름을 높았다.

1456년(세조2년) 성삼문 박팽년과 함께 단종 복위를 논의 하다가 발각 되어 모진

고문 끝에 피살, 그때 읊은 시는 충절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본래 세조와도 친교가 있어 전상의 진술을 강요 받았으나 끝내 대답 하지 않았으며

숙부 이계전이세조에게 내왕함을 항상 경계했다.

혹독한 형벌을 받는동안 안색조차 변함이 없어 보는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1758년 9(영조34년에 이조판서를 추증하고 시호를 충간 이라 고 하였다.

 

한산이씨 이개(李塏) 의 詩

  

 

 

한산이씨 이개(李塏)의 묘

 

                           유 성 원(柳誠源) (?-1456년)

 

 

 

  

유 응 부 (劉應孚)  ?-1456 년

 

 

 

 

 

 

                                                유응부 교지

유응부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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