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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술(酒)이야기(막걸리)

by 석암 조헌섭. 2019.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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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酒)이야기(막걸리)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와 하백(河伯)의 딸 유화 부인은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구삼국사(舊三國史)의 기록에는 하백에게는 세 딸이 있었다. 
유화, 훤화, 위화다. 이들이 강가에서 놀다가 해모수를 만난다. 
 
 “유화가 술에 취해 해모수와 통정을 했다”는 데, 
유화 부인은 큰 ‘알’을 낳았고 그 알에서 고구려 시조 주몽(朱蒙)이 태어났다. 
주.몽은 고구려를 세웠고, 주몽의 아들들이 백제를 세웠다. 

조선 중기 문신 조임도(1585∼1664)의 시 


세상 사람들은 (무릉)도원이 좋다지만 

세상사 잊을 만한 도원은 만나지 못했네 


산촌 막걸리에 취해 세상사 잊을 수만 있다면 

사람 사는 곳 어딘들 도원이 아니랴.’  


◈거친 막걸리 술에라도 취할 수 있다면 사 람 사는 곳이 모두 무릉도원이라는 뜻이다. 
   

독서여유산(讀書如遊山)--독서는 등산과 같다, (퇴계 이황) 
 유산여음주(遊山如飮酒)--등산은 음주와 같다, (이민서) 
독서여음주(讀書如飮酒)--독서는 음주와 같고, 벗들과 술을 마시며 대화하는 것과 같다. 
음주여독서(飮酒如讀書)--음주는 독서와 같다. 술을 마시며 대화하는 것은 책을 읽는 

                                               것과 같다. 
막걸리는 이름이 많다. 탁한 술이라서 탁주(濁酒)다. 순조 즉위년(1800년) 9월, 경상감사 김이영과 
 안핵사 이서구가 인동부(경북 구미)에서 일어난 ‘장시경의 역모사건’을 보고한다. 
내용 중에 ‘장시경이 (사람들을 모은 후) 막걸리(탁주)를 내어주면서 나누어 마시게 했다’는 
구절이 있다.  막걸리를 탁주라고 표현한 것이다. 


 조선 중기의 문장가 최립(1539∼1612)도 
 ‘예쁜 꽃이 집 모퉁이에 활짝 핀 때에 / 담 너머로 건네받는 탁주’라고 노래했다. 
청주는 맑고 탁주는 흐리다. 탁주는 흰 색깔을 띤다. 

막걸리의 또 다른 이름이 백주(白酒)였던 까닭이다. 중국인들은 증류주를 백주라고 부르지만, 
 
 고려의 문장가 이규보(1168∼1241)의 ‘백주시(白酒詩)’를 보면 우리의 백주는 막걸리다.
 ‘예전 젊었을 때 백주 마시기를 좋아했다.  맑은 술을 만나기 힘들었으니 흐린(濁) 술을 마셨다. 
높은 벼슬에 오른 후, 늘 맑은 술을 마시게 되었으니 다시 흐린 술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버릇이 되었기 때문인가?’  이규보는 “벼슬에서 물러난 후 녹봉이 줄어들고 쉬이 맑은 술을 
 구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백주를 마시게 되었다”고 자탄한다. 
이 시에는 중국의 두보가 ‘막걸리에는 묘미가 있다’고 했다는 내용이 덧붙어 있다. 

두보는 막걸리를 ‘탁한 막걸리(濁(료,요)·탁료)’라고 표현했다.  
막걸리의 등급(?)은 어떻게 정했을까? 뚜렷한 기준은 없었으나 좋은 막걸리와 거친 막걸리는 

 분명히 나뉜다. 좋은 막걸리는 정성껏 빚은 후, 잘 걸러서 물을 타지 않은 것이다. 
 물 타지 않은 원액을 순료(醇료,요)라 불렀다. ‘순(醇)’은 물을 타지 않은 무회주(無灰酒)다. 
 순료는, 진하고 짙은 술, 즉 농주(濃酒)였다. 

성종 2년(1471년) 6월, 대사헌 한치형이 상소문을 올린다. 내용은 환관들을 조심하라는 것. 

 환관들은 영리하고 말솜씨가 유창하다. 입속의 혀 같다. 군주 가까이서 비위를 맞추며 아첨한다. 
한치형은 “(환관에게 빠져들면) 순료를 마시면서 미처 취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고 
 상소한다. 환관의 감언이설을 경계하지 않으면 마치 진국 막걸리(순료)를 마신 것같이 취해서 
 여러 가지 일을 망친다는 뜻이다. 

세종 15년(1433년) 10월, 조정에서 술의 폐해를 경계하는 내용을 반포한다. 

 내용 중에 중국 후위(後魏)의 모주꾼 하후사의 이야기가 있다. ‘하후사는 술을 좋아했다. 
상을 당해서도 슬퍼하기는커녕 순료를 입에서 떼지 않았다. 아우와 누이는 굶주림과 추위를 
 피하지 못했고 결국 하후사는 술에 취해 정신을 잃고 죽었다.’(조선왕조실록) 

고려시대 대학자 가정 이곡(1298∼1351)은 후한 말 오나라 주유의 인품을 두고, 
“마치 순료를 마신 듯,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오나라 장군 정보는 
 “주유와 사귀면 마치 순료를 마신 듯, 마침내 스스로 취한 줄을 모른다”고 했다. 

이곡의 아들 목은 이색(1328∼1396)도 
 “맛있는 음식과 순료는 입에 매끄럽고 향기로우니/ 
마치 보약처럼 술술 장에 들어간다”라고 했다. 

선조 때의 문장가 차천로(1556∼1615)는 
약포 정탁(1526∼1605)에게 순료를 접대하고 시를 남겼다. 
‘하룻밤 잘 묵힌 순료를 앙금도 거르지 않으니 / 석청처럼 달고 우유처럼 깔끔하다.’  

발효주는 한반도에만 있었을리 없다. 

중국 기록에도 “순료”가 나타난다.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 장군 주유는 ‘적벽대전’의 
영웅이다. 지금으로 치자면 주유는 오나라 ‘엄친아’다. 성격이 호방하니 주변에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오나라 장군 정보는  
“주유와 마시면 마치 순료(물을 타지 않은 무회주(無灰酒),농주(濃酒)를 마신 듯, 
 마침내 스스로 취한듯 모른다.”고 말했다.  

고려시대 대학자 가정 이곡(1298~1351)선생도 주유의 인품을 두고  
“마치 순료 마신 듯,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 말했다. 
순료는 부드러운 술, 잘 담근 좋은 술이다. 
조선시대 문신 서하 이민서(1633~1688)가 말하는 ‘순료’다.  

◈서하(西河) 이민서(李敏敍)의 한시 ‘금강산에 노닐다’를 올려본다. 
유산여음주 (遊山如飮酒)--등산하는 것이 술 마시는 것과 같구나 
취미식금조 (趣味識今朝)--그 취미를 오늘 아침에 알았노라 
군음고호노(群飮苦號呶)--여럿이 마시면 시끄러운 것이 괴롭고 
독작역무료(獨酌亦無聊)--혼자 마셔도 무료하기 그지없다. 

최의량삼배(最宜兩三輩)--두세 사람이 가장 알맞으니 
상권부상효(相勸不相嚻)--서로 권해도 서로 시끄럽지 않다. 
아항기창졸(我行旣倉卒)--나의 산행이 갑자기 이루어져서 
주려무유초(儔侶無由招)--미처 동행을 부르지 못하였다. 
산중득지자(山中得之子)--산속에서 이 사람을 만나니 
희여취순료(喜如醉醇醪)--좋은 술에 취하듯이 기쁘도다

병책등고강 (並策登高岡)--지팡이 나란히 짚고 높은 봉우리 오르고 
련몌도위교 (連袂度危橋)--소매를 연하고 위험한 다리를 건넌다 
음시혹경석 (吟詩或竟夕)--시를 지으며 저녁나절을 보내기도 하고 
대작혹통소 (對酌或通宵)--술을 마시며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하네 
공허희공음 (空虛喜跫音)--적적할 땐 사람의 발소리만 들어도 반가운데 
황자령지교 (況子嶺之翹)--더구나 자네는 영남의 영걸이 아닌가 

자금사아귀(子今捨我歸)--자네가 지금 나를 버리고 돌아가니 
아회수절도(我懷殊切忉)--나의 마음이 쓸쓸하기 그지없네 
타시당상사(他時倘相思)--이후에 혹시 서로 생각이 나거든 
척소서울도(尺素紓鬱陶)--서신으로 보고픈 마음을 풀자꾸나 

이민서는 임금을 가르치는 경연 도중 꿈속에서 유체이탈하여 과거 자신이 
 목사로 광주를 다스릴 때, 그곳 백성들이 자식처럼 따뜻하게 보살펴 준 은혜를 
잊지 못하여 이민서의 공을 기리는 생사당(生祠堂)을 세워 낙성식(落成式)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광주 선비들이 생사당에 헌배한 술을 마시고 취한 뒤 
경연이 끝날 무렵 영혼이 복귀하였다는 기문이 전하는 인물이다. 
나주 목사와 광주 목사를 역임한 이민서는 나주 서하사와 고창 동산서원에 
 각 배향되었다. 


◈月下獨酌1(월하독작)-이태백  

天若不愛酒 (천약불애주) 하늘이 술을 좋아하지 않으면 
酒星不在天 (주성부재천) 하늘에 주성이 없을 것이고,地若不愛酒 (지약불애주) 땅이 술을 
좋아하지 않으면
地應無酒泉 (지응무주천) 땅에 응당 주천이 없어렸다.  

天地旣愛酒 (천지기애주) 하늘도 땅도 원래 술을 좋아하거니 
愛酒不愧天 (애주불괴천) 술 좋아함이 하늘에 부끄럽지 않노라, 
하늘엔 주성 이란 별이 있고 중국과 강원도엔 주천이란 지명이 실제로 있다. 
그러니 하늘과 땅을 핑계 삼아 술을 마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절제하여 마셔야 한다. 처음엔 한잔 두잔 마시다 보면,  술이 술을 먹게 되고, 그 다음엔  술이 사람을 잡아 먹게 된다. 

과음은 하지마시고 술과 안주는 골라 골라… 
술은 처음 마사기 시작 할 때는 양처럼 온순하고,조금 더 마시면 사자처럼 사나워지고
조금 더 마시면 춤추고 노래 부르고, 더 많이 마시면 돼지처럼 토하고 뒹굴며 추해지는데 
그것은 악마가 인간에게 준 선물(膳物}이다.


적당한 음주는 오히려 건강에 도움이 된다.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효과도 있다. 
술에는 죄가 없다. 다만 마시는 사람이 문제일 뿐이다. 
술은 비와 같다.  옥토에 내리면 꽃을 피우지만 진흙에 내리면 진흙탕을 만든다. 

2019년 5월 일  애주가 석암 조 헌 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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