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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관피아를 깨자

by 석암 조헌섭. 2014.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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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대구지하철 … 부실감독으로 실형 받은 관료 '0'

[중앙일보] 입력 2014.04.30 00:42 / 수정 2014.04.30 00:53

민·형사 처벌 왜 미약하나
뇌물수수 등 명확한 불법에만 실형
민사소송도 책임 가리기 쉽지 않아
공무원 관리·감독 책임에 관대했던
산업화시대 판결 이제 바뀌어야

 

대학생 9명과 이벤트사 직원 등 10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204명의 부상자를 낸 경북

 경주시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 사고 발생 두 달 만인 지난 18일 구속

 기소 6명을 포함해 총 15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모두 민간인이었다.

공무원은 단 한 명도 기소되지 않았다.

 

대구지검 관계자는 “해당 체육관이 국토부 규정에 따라 공무원이 직접 관리하는

 시설이 아니라서 불법행위가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한 공무원에게 책임을

 물을 사안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대형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통상 내려졌던 결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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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은 대부분 집행유예=마우나오션리조트 사례에서 보듯 대형 사건·사고로

 담당 공무원 또는 감독관청이 형사 책임을 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형사처벌을

받는 건 직무수행 과정에서 뇌물을 받는 등 불법행위 정황이 직접적이고

명확한 경우다.

그나마도 대부분 집행유예 등으로 풀려나는 경우가 많다.

 한문철 변호사는 “공무원이 평소에 시설물에 대한 관리·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비난을 할 수는 있지만 형사처벌은 다른 문제”라며 “현재 판례는

 뇌물을 받는 등 명백한 잘못이 있거나 공무원의 행위가 사고에 직결돼야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92명이 사망한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에서는 한도를 두 배 이상 넘긴 과다

 승선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하지만 이를 눈감아주고 허위로 안전점검 일지를

 작성하거나 사고 후 과적 증거 서류를 파기한 군산해운항만청 공무원 4명은 전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32명이 숨진 성수대교 붕괴 사고에서 실형이 선고된 3명 중

 공무원은 1명이었다. 다리가 하중을 이기지 못해 이음새가 휘어졌다는 보고서를

 이음장치 불량으로 바꿔 제출한 서울동부건설사업소장이었다.

 업무상 과실치사죄가 인정된 그는 금고 1년6월의 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1445명의 사상자를 낸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때는 12명의 공무원이 기소됐다.

 이 중 직접 뇌물을 받은 이충우 전 서초구청장 등 2명만 실형이 선고됐다.

 대법원 관계자는 “국내 사법체계는 죄형법정주의를 따르고 있어 명시적으로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처벌한다는 규정이 없는 한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다고

직무유기 등으로 중한 형사책임을 지우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형 사건·사고로 피해를 본 이들이 민사적으로 책임을 공무원에게 물으려 해도

 간단치 않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에서도 백화점 내 스포츠 클럽 회원이었던

김모씨가 “부실시공을 용인한 공무원들에게 붕괴 사고 책임이 있다”며 소송을 냈다.

 하지만 대법원은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불법행위가 사고로 이어졌다는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부산저축은행 후순위채 투자자 600명이 낸

소송에서도 올 초 법원은 은행과 회계법인에 218억원을 배상토록 하고도 금감원과

 국가의 관리감독 책임에 대한 청구는 기각했다.

 ◆권한에 맞는 책임 물려야=전문가들은 공무원들의 관리·감독 책임에 대해 비교적

 관용적인 법원의 판결 경향이 시대적 흐름에 맞게 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용덕 서울대 명예교수(행정학)는 “무리한 업무 추진으로 사고가 많이 나던 고도

 성장기에 일일이 책임을 묻다 보면 산업화에 제동이 걸릴 수 있었기 때문에 사고

 책임에 대한 관대한 법원 판례가 형성됐다”며 “하지만 시대가 바뀐 만큼 국가가

 책임을 다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현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자기 업무 영역에

 대한 책임의식이 지나치게 느슨한 게 사실”이라며 “관용주의적인 법원 판결 경향도

 이제 변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민사상 책임도 더 엄히 지워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영준 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는 “책임 질 일 없는 공무원들이 자기들끼리

 이권을 공유하고 똘똘 뭉쳐 결국 ‘관피아’ 체제까지 구축할 수 있게 된 것”이라며

 “단순히 행정적 기준에 위반되지 않았다고 해서 면책시킬 게 아니라 상위법률의

 입법 취지와 다르게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면 책임을 지워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가 상대 소송에서 증거를 독점하고 있는 정부를 상대로 이기기란

 정말 힘들다”며 “‘증거의 비대칭’이 해소돼야 시스템이 바뀌고 권한에 맞는 책임을

 물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제 기자, 런던=고정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