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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포은 정몽주 [1337∼1392]

by 석암 조헌섭. 2013.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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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헌섭 2014,08,07 수정

   

포은 정몽주1337∼1392 [임고서원]

 

 

아니, 선죽교가 영천에 있네요.

시, 역사관광지로 새단장

“북한 답사해 그대로 재현”

영광루

고려 말의 충신인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92) 선생의 충·효 정신이

고향인 경북 영천에서 되살아난다. 영천시는 오는 24일 임고면 양항리

 임고서원 앞에서 선생의 충효사상을 고양하기 위해 7년 동안 추진한

임고서원 1단계 성역화사업을 마치고 준공식을 한다. 이날은 개성 선죽교에서

 선생이 서거한 지 620주기가 된다.

포은 선생은 고려 왕조를 지키기 위해 절의를 굽히지 않은 충신이다.

 

1337년 영천시 임고면 우항리에서 태어나 과거에 급제한 뒤 정승까지

올랐다.

 성리학에 뛰어나 ‘동방이학(東方理學)의 시조’로 불리며 시와 글·

 그림에 빼어났다.

 선생은 또 외교술이 뛰어나 명나라와의 관계 개선에 큰 역할을 했고 왜구

 토벌에도 많은 공을 세웠다.

 또 효심이 지극해 부모 상을 당했을 땐 두 차례 3년상을 치르고 시묘살이를

 했다.
 선생을 배향한 임고서원은 영천지역 퇴계 이황의 제자들에 의해 1553년

 세워졌다.
 영천시는 선생의 충효사상을 역사문화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2006년부터 198억원을 들여 임고서원 일대 4만7800㎡(1만4000여 평)를

 성역화해 왔다.

 이곳에는 유물전시관(포은유물관)과 생활체험관(충효관)·선죽교, 선생이

 풍류를 즐겼다는 조옹대 등이 새로 들어서거나 재정비됐다.

 

 특히 체험관은 한꺼번에 40여 명이 숙식할 수 있다. 시는 다시 500억원을

 들여 2018년까지 생가 복원, 단심로 조성 등 2단계 성역화에 들어간다.

 다음은 사업을 추진해 온 김영석(61) 영천시장과의 일문일답.
 -개성 선죽교를 전통방식으로 재현했다는데.

 “선죽교의 형태며 규격을 그대로 옮겼다. 사업회 이남철 회장은 직접 북한

현지를 답사하기도 했다.”

 -성역화사업을 추진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포은 선생을 모신 임고서원을 중심으로 영천을 충과 효의 본고장으로

 만드는 것이다.

 안동·영주가 선비 교육을 정립했듯이 앞으로 이곳을 충효 교육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싶다. 또 포은의 뿌리가 영천임을 확실히 하려 했다.”

 -포은은 어떤 인물인가.
“우리나라 성리학을 사실상 창시한 분이다. 또 이방원의 ‘하여가’에 선생이

 ‘단심가’로 답한 데서 드러나듯 충절의 표상이다.”

 -경기도 용인에는 포은의 묘소가 있고, 포항은 고향이라고 하는데 이들과

 협력하는 사업도 있는가.
 “용인은 자매결연 도시다. 묘소 때문에 포은문화제를 열고 있는데 그때마다

 참가한다. 포항 영일은 포은의 부모 고향이다. 현재 하고 있는 협력사업은

 따로 없다.”

 -2단계 성역화사업이 계속된다는데.

 

남은 핵심사업은 포은 생가 복원이다. 정확한 위치를 고증할 것이다. 

2단계 사업까지 마치면 임고면 이름을 아예 포은면으로 바꾸고 싶다.

 체험교육장은 규모를 확대할 계획이다.

또 서원 주변을 개발하고 인근 운주산휴양림과 승마장·레이포드CC 등을

 묶어 충효·레포츠 단지로 조성할 계획이다.

3사관학교와 충을 묶어 국가안보관 설립 등도 검토해 보겠다.”

정몽주 유적지 표지판

임고서원

선죽교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 임고서원 일원에 포은 정몽주 선생을 기리는

 성역화사업이 마무리됐다. 사진은 선죽교(길이 8.35m, 너비 3.36m)로

 개성 선죽교와 크기·모양이 같다.

 

 

 

포은 정몽주 유물관

퇴계 이황

창석 이준

 

 

 

 

 

 

 

 

 

유허비포은 몽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