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고 헤이하치로
일본의 10대 영웅 중 한 명으로 평생을 군인으로 지낸 사람이다.
일본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가진 나로서는 일본인에 대한 편견보다
악견에가깝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일본인을 인용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일상
생활용품을 더러 쓰고 있는데 이율배반적인 행위라 생각되어
늘~언짢게 생각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웃이지만 정서적, 역사적으로 가장 먼 나라다.
그러나 칭송할 만한 인물은 더러 있다. 그가 바로 도고헤이 하치로 장군이다.
도고하지로는 가고시마 현 [鹿兒島縣] 출생. 메이지유신 후 해군사관이 되어
1871∼1878년에 영국에 유학하였다. 청일전쟁 때는 나니와
함장[浪速艦長]으로서 청국 군함 고승(高陞)을 격침시키기도 하였다.
러일전쟁에서는 일본 연합함대사령장관으로서 전 해군을 지휘하여
동해해전에서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유명한
정자전법(丁字戰法:즉 敵前回頭作戰)으로 격파하였다.
후일 군령부장(軍令部長)을 거쳐 1913년 원수에 올랐으며,
동궁학문소(東宮學問所) 총재로 있었다. 정계와는 관계를 갖지 않은 순수한
군인으로 일생을 마쳤다.
"일본이 도자기나 만드는 야만국인 줄 알았는데, 러시아 발틱함대를 이긴 것을
보고서야 문명국임을 알게 되었다"라는 영국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일본의
러일전쟁 승리는 일본 역사상 최고최대의 큰 사건이었다.
그리고 당시 일본 함대의 총사령관인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은 세계적인
러일 전쟁 승전 축하연이 있던 날 밤, 어떤 신문 기자가 도고 제독에게
"각하의 업적은 영국의 넬슨 제독, 조선의 이순신 제독에 비견할 만한 빛나는
업적이었습니다."라고 아부성 발언을 하자, 도고 제독은 그 기자를 즉각 야단을
쳤다는 기록이 있다.
남해 충렬사
"나를 이순신 제독에 비교하지 말라. 그 분은 전쟁에 관한 한 신의 경지에
오른분이다.
이순신 제독은 국가의 지원도 제대로 받지 않고, 훨씬 더 나쁜 상황에서 매번
승리를 이끌어 내었다. 나를 전쟁의 신이자 바다의 신이신 이순신 제독에게
비유하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다"
도저히 믿기지 않겠지만, 세계적인 전쟁 영웅 도고 제독의 말은 사실이었다.
일본 해군 소장 가와다 이사오가 쓴 "포탄을 뚫고"라는 책을 보면,
"이순신 장군은 당시의 조선에서 유일하게 청렴한 장군이었고 충성심과 전술
전략 운영 능력은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조선은 이순신 장군의
정신과 전술을 금방 잊어버리고 38년 만에 병자호란을 다시 당했다.
임란 이후 조선에서는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의 이름이
까마득히 잊혀졌고 벼슬아치들은 참혹했던 임란을 이미 잊은지 오래다.
단지 패거리를 지어 당파 싸움에만 골몰하였으며 그 결과 또 다시 치욕적인
병자호란 을 당하게 되었다.
원래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붕당 패거리정치에는 관록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일본에서는 이순신을 존경하여 메이지(明治)시기 신식 해군이 창설되었을
때 그의 업적과 전술을 연구하였다"라고 밝히고 있는데,
실제 19세기 말 일본 해군사관
학교에서는 "이순신전술전략"이라는 교과목을 가르치고 있었다.
8년간이나 영국에서넬슨 장군을 연구하였던 도고 제독의 우상은 언제나 이순
장군이었다.
러일전쟁 승전 후 도고 제독이 세계적인 영웅이 되어 있을 즈음,
조선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이름이 까마득히 잊혀져갈 무렵
미국 해군사관학교 4학년 임관 후보생들이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이들이 도고 제독을 방문하여 이것저것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질문한 적이 있었다. 이 때에 도고 제독의 대답은 너무나
간단했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은 조선의 수군을 지휘한 이순신 제독입니다."
영국의 넬슨 정도만 알던 미국 사관 생도들은 이순신이 누구인지 몰라 잠시
어리둥절했는데 그래서 이순신 장군이 미국에 비로소 알려졌다는 것이다.
1905년 5월 27일 새벽 러시아 발틱함대가 블라디보스톡 항으로 가기 위해 대한
해협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소식을 접한 진해 앞 바다의 일본 함대는 진해만에서
대한해협 방면으로 마중을 나가 아직 잠이 덜 깬 발틱함대를 기습하여 격파하기로
작전계획을 세웠다. 큰 전투 경험이 없었던 일본의 병사들은 불안하고 초조하다.
그런데, 이때 도고 총사령관의 특별한 지시가 없었는데도 거의 비슷한 시간에
대부분의 일본 군함에서 간단하지만 엄숙한 신사참배가 있었다. 갑판 위에
자그마한 제단을 만들어 놓고 일제히 승전을 기원하는 예식이 거행되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때에 제단에 모셔진 신은 조선의 이순신 장군이었다.
일본 해군들은 자기네들이 전쟁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는 이순신 장군에게 러시아
발틱함대를 이길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달라고 기원했다.공교롭게도 이 예식이
행해지던 해역은 그 옛날 일본인 조상들이 무더기로 수장되었던 바로 그
남해 바다였다.
조선 사람들의 기억 속에 거의 잊혀지고 있던 이순신 장군의 혼령이 일본 사람의
존경과 기도에 되살아 났던것이다. 어쨌든 도고 하치로의 지휘로 일본의 3배에
달하는 러시아 함대를 전복시켜 일본 역사상 최대의 승리를 거두었고 그 승리는
일본을 세계의 강대국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러일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도고하치로는 축하연 자리에서
“넬슨은 스페인의 무적 함대와 비슷한 수준의 함대를 가지고 싸워서 이겼다.
그러나 나의 함대는 러시아 발틱 함대의 3분의 1규모로 이겼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승리는 “이순신 장군에 비하면 나는 이개 하사관에 불과하다.
만일 이순신 장군이 나의 함대를 가지고 있었다면 세계의 바다를 제패했을 것이다.”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반대 정파의 모함을 받아 모진 고문 끝에 백의종군하여 전라좌수사로 복귀
하였으나힘겹게 훈련시켜놓은 병사와 병선은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의 지휘 아래
모두 참패하고 단지 몇백의 군사와 12척의 군선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선조 임금에게 ‘상유십이척(尙有十二隻), 순신불사(舜臣不死)라는
장계를 올리고 10배가 넘는 왜군과 결전을 치러 세계 해전사상 유례없는 통쾌한
승리를 거둔다.’
전하! 저에게는 군선 12척이 있사옵고 미천한 신하 이순신은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도고헤이 하치로제독은 세계 10대례명장에 들어가는 일본제국 제독입니다.
2013년6월29일 조헌섭
조용필=바운스
'역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계 조위(梅溪 曺偉)선생 (0) | 2013.09.29 |
---|---|
해 인 사 (海印寺)-합천 (0) | 2013.08.27 |
예곡 곽율(禮谷 郭𧺝) (0) | 2013.06.24 |
송암(松菴) 김면(金沔) 장군 일대기 (0) | 2013.06.14 |
장희빈 (장소의(張昭儀)1659,?-1701년 (0) | 2013.0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