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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124)

“쌍책면 마을이름 유래”

by 석암 조헌섭. 2017. 8. 25.

 

“쌍책면 마을이름 유래

    • ▶내촌 : 황강변에 위치하여 자연경관이 수려하며 관수정, 황강정이 있다. 문화류씨 법성선생의
    •  유적비가 있으며 15세기 중엽 법성선생이 심은 느티나무는 아직까지도 주민들의 피서지로
    •  이용되고 있다.
    • 외촌 : 쌍책면의 소재지로 남쪽으로 흐르는 황강변(黃江邊)에 위치하고 있으며,
    • 옛날 가야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문화 유적지가 많은 곳으로 현재 합천박물관이 소재하고 있는
    •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초계군 초계면에 속하였으며 문화류씨가 610년 전에 시거하였다.
    •  
    • ▶외촌,밤마 : 밤마라는 지명은 중심지에서 떨어진 바깥마을이라는 뜻에서 예전부터 구전되어
    • 내려오는 듯 하고, 120년 전에 심었다고 전해지는 정자나무는 주민들의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다.
    •  현재 정자나무가 있는 곳에는 설치년도가 정확하지 않으나 1920년대에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 돌 방앗간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으며, 1953년까지 곡식을 찧었다고 전해진다.
    • 소를 이용하여 2명(가래질1명, 빗자루질1명)이 1가마를 정미하는데 2시간 정도 소요되고
    • 1974년 도로확장으로 인하여 형체의 일부만 남아 있으며 그 위치에 바위가 있어
    •  건들바위 라고도 한다
    •  
    • 상포 : 옛날에는 창원황씨가 살다가 고령으로 이주하고 초계변씨는 405년 전에
    •   시거하였으며, 밀양박씨는 315년 전에 시거하였고 현풍곽씨는 165년 전에 시거하였다.
    •  주 소득원은 시설하우스 설치로 딸기, 수박, 호박 등의 생산으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  
    • ▶관수 : 뒷산은 옥전고분, 앞으로는 황강이 유유히 흐르는 배수임산 지역으로 일찍부터 사람이
    •  살았던 흔적들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현재에도 일명 구전(口傳)으로 관징개라 불리고 있으며
    •  도원이라는 수련장(강당→강답)에 주춧돌과 고송(古松)이 울창한 흔적들은 1980년대 경지정리로
    •  현재 남아 있지 않다. 관수(官樹)라는 지명은 옛 선비들과 유생들의 문무(文武)수련 연마장과
    •  풍유객들이 노닐던 장소가 있었다 하여 생겨났다고 한다. 또한 두 형제의 충과 효가 새겨진
    •  현판이 보존된 쌍효각(雙孝閣)이라는 충효문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  
    • 다라 중촌 : 조선시대에는 초계군 덕진면에 속하였으며 이 지역에서 제일 높은 부소산이 있다.
    •  이 마을에 제일 먼저 들어온 성씨는 여양 진씨로 중촌 저수지 옆 대박골이라는 곳에 살았으며
    •  진씨께서 돌아가시자 청덕면 정산에서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  
    •  다음에는 진양 강씨가 자리 잡았는데 중촌마을 앞 두간이라는 곳에 상당히 많은 사람이
    •  살았으며 어느 해 질병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  그 중 한 집은 쌍책 건태로 이주하여 현재까지 잘 살고 있다고 한다.
    •  그 후 밀양 박씨와 안동 권씨가 합천 대양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현재까지
    •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는 밀양박씨의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  
    • 다라계촌 : 다라 앞에 구례라는 들이 있는데 이 들을 끼고 흐르는 냇물이 아홉구비라 하여
    •  9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며, 이 마을의 재앙을 방지하는 뜻이 있다고 한다.
    •  마을형성 시기는 안동 권씨가 합천 대양에서 495년 전에 시거하였고
    •  
    •  약 2/3정도를 차지하였으며 밀양박씨도 495년 전에 시거하여 약 1/3정도가 살았다고 한다.
    •  계촌 입구에는 오림목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2그루는 없어지고 3그루만 남아 있어 주민들의
    •  휴식처가 되고 있다. 또한 칠성바위(일곱개의 바위)가 노씨선산에 있으며
    •  새마을 사업으로 일부가 파손되어 마을에 재앙이 많아 다시 복구하였다고 한다
    •  
    • 오서 : 조선시대에는 초계군 초계면에 속하였으며, 초계로 통하는 길을 개설하기 위해
    • 1970~80년대까지 주민들이 많이 노력하였으며
    • 오서교 완공으로 인해 주민생활이 훨씬 편리해졌다.
    •  
    • 제촌 : 조선시대에는 초계군 초계면에 속하였으며 연못이 있었다고 해서 지금까지도
    •  못골이라고 불려지고 있다. 마을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씨, 마씨, 우씨가 있었다고
    •  전해지며 현재는 거주하지 않는다. 밀양박씨는 300년 전에 시거하였다 하며,
    •  1927년 쌍책면 소재지가 성산으로 이전하기 전에 면사무소가 소재했던 곳이다.
    •  
    • ▶진정 절골 : 옛날에 절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절골이라 불려지며,
    •   현재 진정 저수지가 위치하고 있는 곳이다
    •   햇골 : 옛날 밤에 횃불을 들고 청덕 정산으로 넘어가는 재를 많이 다녔다하여
    •   햇골이라고 불려지며, 현재 햇골 소류지가 있는 곳이다.
    •  
    •  국성동(國誠洞) :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나라에 충성하고,
    •  부모에게 효를 다하여 공경하는 마음을 본받고자 국성동이라 부른 것으로 추측된다.
    •  
    • 덕봉 : 1524년(중종 19)에 창녕조씨(昌寧曺氏) 입향조(入鄕祖) 선조가 기거(基居)하였다.
    •  마을회관 앞 정자나무는 500여년 전 식수되어 여름에 주민들의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으며,
  •  마을입구에는 유황성분이 많은 지하수가 있어 마을 부녀자들의 빨래터로 이용되고 있다.
  •  
  •  서원담 : 정와 조수천(1550년 명종5), 봉곡 조이천(1560년 명종15), 정곡 조신천(1573년 선조6)
  •  선생을 모신 덕양서원이라는 서원이 있었다 하여 서원담이라 부르며,
  •  덕양서원은 대원군 때 폐쇄되었고, 정곡선생의 필어집 36판이 있다.
  •  묘사일인 음력 10월 11일 묘제가 거행되고 있다.
  •  
  •  봉곡 조이천 선생의 계정집(溪亭集), 봉곡선생 중건운시(鳳谷先生 重建韻詩) 41명의
  •  시(詩)가 기록된 원본이 현재까지 보관되어 있다.
  •  백정동 : 옛날에 잣나무가 많이 자생하였던 곳으로, 지금은 사라졌지만 조봉곡 선생을 모신
  •  정각이 있었고, 묘사일인 음력 10월 13일에 묘제가 거행되고 있다.
  •  
  • 매호 : 탁계(濯溪) 전치원(全致遠)선생의 자(子) 전문이 410년전에 시거하였으며 매화나무가
  •  많은 곳이라 하여 매호라고 한다. 탁계선생의 자 전문의 정각으로서 연곡사(淵谷祠)라는
  •  정각이 있는데 매호마을 아래에 위치하였으며 1677년 신촌에서 이전하였으나 경지정리로
  • 소실되었고 비석은 율곡면 내천마을 입구에 있다.
  • .
  • 건태 : 원래 건태마을 위치는 지금의 건태마을 위편 음방산 아래쪽인데
  •  고려 때는 여기서 부락을 형성하여 살았다고 전설에 내려오고 있으며
  •  기와장과 집터의 흔적은 있으나 그의 후손이 누구인지 미상이다.
  •  
  •  지금 위치한 부락은 전설에 의하면 약 300년 전에 생겨서 농사 편의상 골짜기가
  •  차차 아래로 내려와 부락이 생겼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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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서리 : 고려 때부터 생긴 나루터인데 2~3가구가 살면서 율곡면 일부,
  •  쌍책면 일부 주민들이 초계,합천,고령시장을 왕래하는데 교통의 요충지로 이용하다가
  •  1980년 횡보교와 내천교 건설로 교통이 원활이 소통됨으로 인해 자연적 나루터가 없어졌다.
  •  
  • ▶사양 대장다리 : 옛날에 진주병사가 지날 적에 대장이 도교하였다 하여 대장교라
  •   일컬어지기도 한다. 죽전 : 마을 뒤 대나무 밭이 많다하여 죽전이라 불렀다.
  •  
  •   새터 : 처음 사양마을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했을 때는 골짜기에 터를 잡고
  •   몇 집만이 살았으나, 그 중 일부가 이주한 뒤로는 이 곳을 새터라 부르게 되었다.
  •  
  • 신촌 새마 : 완산전씨의 집성촌으로서 약 490년 전에 시거하였고 뒤편에 완산전씨의
  •   중시조 산소가 있다.
  •  
  •  연병정 : 조선시대 경상감사가 대구현영에서 경상우도의 각 고을을 행차할 때
  •  초계군에서는 이 곳에 정자를 짓고 모든 병사를 동원하여 경상감사를 맞이하였다.
  •  특히 경상도에서는 병마절도사가 3명 있었는데 병마절도사의 연접지이기도 하여 지금까지
  •  연병정이라고 하며 이책 삼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지방도 907호선과 1034호선이 합쳐지는
  •  곳으로 교통이 원활하며, 지금은 폐교되었지만 (구) 이책초등학교가 있었던 곳이다.
  •  
  • 월곡 :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동네 까치제의 모양이 마치 반달같이 생겼다고 하여 월곡이라
  •  부르게 되었으며, 반달이 처음 커져서 완전한 달이 되는 것처럼 인물이 나게 되고
  •  생활도 차츰 잘 살게 된다는 뜻이 있다.
  •  
  •  중산(중매) : 중산 마을 뒤 소원바위라는 바위가 있는데 아낙네들이 자기아이가 아플 때
  •  쾌유를 이 바위에 가서 빌었고, 또 자식을 낳게 해 달라고 빌며 생일날에는 명을 빌었다고 한다.
  •  또한 음력 10월 15일 정월대보름에는 연례행사처럼 이 바위에서 소원성취를 빌고 빌어서 마음의

안정을 갖게 한다고 하여 지금도 변함없이 바위주변을 항상 깨끗이 청소하고 바위를 잘 보존하고 있다.

 

  • ▶창동 독실 : 정확한 마을명의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마을사람들이 많이 살았던 중심지와는
  •  떨어져서 민가가 형성되었다 하여 독실이라 불려졌다고 한다.
  • 정촌 : 마을회관 옆 정자나무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정촌이라 불렀다.
  • 괴촌(槐村) : 예전에 홰나무(회화나무)가 많이 자생한 곳이라 하여 괴촌이라 불렀다.
  •  
  • 도방 : 조선시대에는 초계군의 이책면으로서 적중면의 중방, 말방과 함께 지어진 마을로,
  •  지금은 폐교되었지만 이책초등학교가 생기기 전에 이책간이학교를 설립하여 후학들을
  •  지도하였으며 설립자인 이천봉씨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매년 제자들이 계모임을 가지고 있다.
  •  
  •  마을 어귀에는 170년 전 심어진 정자나무 1그루가 있는데 이것은 본래 2그루가 1그루로
  •  합쳐진 나무라고 하며 여름에는 주민들의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  
  •  중마 : 농지개량조합(현.한국농촌공사)에서 상신저수지를 건립하기 이전에는
  •  절골이라는 곳에 자연마을이 있었으나 저수지 신설로 인하여 본 마을로 이주하였으며,
  •  대구에 있는 낚시꾼들은 상신저수지에 휴일을 이용하여 많이 방문하고 있다.
  •  
  • 박곡 원촌 : 고을원님이 이 곳을 지나다가 쉰 자리라 하여 원촌이라 불렀으며,
  •  현재까지 정월대보름날 동제를 지내고 있다.
  •  
  •  박실 : 지금으로부터 500여년 전 박씨들이 못(현재 박곡지)을 경계로 안골, 지풍골,
  •  시지골 등에 살았다하여 못안박실이라 불렀으며, 그 후손은 현재 거주하지 않지만
  •  성묘는 고령에 있는 후손이 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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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과 경북의 경계로서 도계를 통과하려면 기미제를 통과하는데 3곳의
  •  돌무덤이 있어 통행하는 사람은 반드시 3개의 돌을 던져서 안녕을 빌었다고 하며,
  •  1그루의 느티나무가 있어 여름에 주민들의 피서지로 이용되고 있으며,
  •  식수년도는 170년 전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