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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463)

이청득심

by 석암 조헌섭. 2021. 9. 30.


이청득심(以聽得心)

요즘 TV를 켜면 모든 현안이 대선 정국에 여러 가지 설왕설래(說往說來)하여 말이 말을
만들어내곤 한다. 아무리 좋은 꽃 노래도 자꾸 들으면 지겹고 내가 싫으면 소음일 뿐이다.
방송사마다 화천대유(火天大有) 천하동인(天火同人)으로 야단법석(野壇法席)이다.

후보들의 토론회는 서로간에 진지한 토론은 없고 쓰잘데 없는 공방만 이어지고
진영논리에만 빠져 코로나에 힘든 국민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 같다.
상대의 말을 경청(傾聽)하기 보다는 자신이 주장하는 일에 더 골몰(汨沒)하고 마음에 문을 열어
상대의 말을 받아들이기 보다 편견(偏見)과 아집으로 상대의 말을 끊어 버리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이청득심이란(以聽得心) 말이 있다.
중국을 제패한 '칭기즈 칸'은 몽골제국의 경영으로 거란인을 많이 등용(登用)하였는데,
이 말도 거란인이 한 것으로 기억된다.

이청득심(以聽得心)이란 
귀 귀울여 듣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최고(最高)의 지혜(智慧)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어떻게 듣고 이해(理解)하며 반응해야 하는지 상대의 마음을 여는 노하우인
셈이다.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사고, 무시(無視)당하지 않고 외면까지 당하지 않으려면,
상대방(相對方)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난 뒤 참작([沈着)하게 자기의 말을 해야 하며,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다가 자신이 할 이야기가 있으도 바로 끊고 자신의 말을 하면 안 된다고 한다.
요즘 대선 후보 토론(討論)이나 청문회 등을 보면 답변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을 허다하게
볼 수 있다. 


탈무드에는 남을 헐뜯는 가십(소문, 험담)은 살인(殺人)보다도 위험하다.
살인(殺人)은 한 사람을 죽이지만, 가십은 반드시 세 사람의 인간을 죽인다.
즉 가십을 퍼뜨리는 자신과 그것을 반대하지 않고 듣는 사람, 그 화제(話題)가 되는 사람이다.

거짓말쟁이가 받는 가장 큰 벌은 그 사람이 진실(眞實)을 말했을 때도 다른 사람들이
 믿어 주지 않는 것이다.

법구경(法句經)에는 
학무붕류 부득선우 영독수선 불여우해 자수대죄 (學無朋 類不得善友 寧獨守善 不與愚偕
自受大罪)라
나보다 나을 것이 없고 내게 알맞은 길벗이 없으면 차라리 홀로 굳세게 착한 믿음의 길을 가라
남 헐뜯고 욕하는 자와 벗하지 마라! 남 헐뜯는자는 내가 없으면 나를 욕하고 헐뜯는 자다.

절영지회(絶缨之會)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남의 잘못을 탓하지 마라!, 남의 단점을 보지도 마라!
나의 단점을 정당화하지 마라! 오로지 나의 단점을 고치기에 힘쓰라!”는 참 좋은 말인듯 싶다. 

그리스 철학자 제논은
"귀와 눈은 두개인데 입은 하나인 이유는 많이 듣고 보는 대신 적게 말하라"는
의미(意味)라 하였고
아라비아 속담엔 "듣고 있으면 내가 이득(을 얻고, 말하고 있으면 남이 이득을 얻는다"고 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양기(陽氣)가 입으로 올라와 말이 많아진다.

이청득심의 뜻을 바르게 알아 말을 줄이는 일이 현명(賢明)한 늙음이라 생각한다. 
판단(判斷)하려는 나를 비워내고 내면에 귀 기울이면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서로의 공감을 위한 경청(傾聽)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면 진실의 목소리가 들릴 것이다.

우리는 남들보다 더 정직하고, 도덕적, 윤리적(倫理的)인 삶을 살아가야한다.
항상 주변을 돌아보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이 곧 도덕적(道德的)이고 윤리적인 삶이다.

지족가락(知足可樂)이면 무탐즉우(務貪則憂)라, 만족할 줄 알면 즐거움이 함께할 것이며,
탐욕(貪慾)에만 관심을 가지면 근심만 쌓일 뿐이라는 의미다.
우리는 나보다 상대를 먼저 생각하며 작은 것에도 만족(滿足)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2021년 9월 일
석암 조 헌 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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