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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하언서(黃河堰鼠)

by 석암 조헌섭. 2020.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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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언서(黃河堰鼠)

그 언젠가 TV에서 황하 다큐멘터리 방송(放送)하는 것을 보았다. 

거대한 중원대륙을 황수(黃水)로 물들이며 도도히 흐르는 대하를 볼 때

 웅혼(雄渾) 기상(氣像)을 느낄 수가 있다.


숱한 애환을 끌어안으며 소용돌이 하는 장강 황하는 역사를 깨고 부수며 또 다른

 역사를 만들고 있었다. 그 우람찬 표호를 보며 황하언서(黃河堰鼠)를 떠 올렸다.

황하언서(黃河堰鼠)는 처음 벼슬길을 떠나는 제자에게 스승이 쪽지 한 장 허리춤에

 꽂아주는  관습이 있었는데, 황하언서라고 쓰인 쥐(鼠) 그림이다.


쥐 꿈해몽1


황하에 물 마시러 온 쥐는 그 많은 황하수이지만 제 배 채우는 이상의 물을

 먹지못한다는 뜻으로, ‘수분(守分)’을 지키라는 도리이다. 


‘아함경’에 나오는 인간 업고로 흰쥐가 낮 시간, 검은 쥐는 밤 시간을 

의미하는데 얼마나 많은 중생에게 인간 무상을 깨닫게 한 철학적 쥐(鼠)인가. 

얼마나 오래 살려고 자기 죽는 줄 모르고 그렇게 아둥대고 있으렴 인가?


처음 관직에 나가 백성을 잘 돌보고 나랏 일에 충성을 다 하라는 선조들의 가르침

이다. 청백리의 상을 가슴에 품고 선민정치를 구원하라는 스승의 마지막 당부이다.

요즈음의 염량세태()와 사뭇 다른 아름다운 벼슬길이 아닌가.


권세를 따라 날아가는 정치 철새들일랑, 돈으로만 환산하는 고액과외 선생님들,

각종 비리로 얼룩지는 공인들이 너무 많은 세강속말()이 한탄스럽다.


해인사 법당 앞 돌기둥에는  희고 검은 쥐를 볼 수 있다.

코끼리에 쫓겨 덩굴을 잡고 우물 속을 타고 내리는데, 바닥에는 독사가 입을 

벌리고 있는지라. 독사는 희고 검은 쥐가 붙들고 있는 덩굴을 갉기 시작한다.

(지 죽을지도 모르고…)


옛 우화소설 ‘서대주전(鼠大州傳)’에 흉년에 먹을 것이 없자 살아날

 궁리()를 하는 쥐의 몰골을 묘사한 대목이 있다. 

앞발을 볼에 대고 구부정한 것이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흡사하다.

 우화에서뿐만 아니라 실제로 생각하는 쥐를 볼 수 있는 세상이다. 


곡식을 축내고 가구를 갉아 망치며 병이나 옮기는 쥐의 부정적 이미지는

 세계가 공통적이다. 하지만 우리 선조는 쥐의 지혜(智慧)를 인정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천지창조() 무가(巫歌)에서 미륵이 해와 달, 별을
 창조해 놓고 불과 물을 만들 수 없어 고민하는 자리에 쥐가 등장(登場)한다. 

쥐는 이 세상 모든 뒤주를 차지하게 한다는 조건부로 어떻게 불을 얻고
 어디를 가야 솟는 샘을 찾을 수 있는지를 가르쳐 준다. 
풍자소설 ‘옹고집전’에서 쥐가 옹달샘의 갓을 쓰고 가짜 옹 생원으로 변신,
진짜와 가짜가 싸워 관청(官廳)에 진위를 가리는 소송(訴訟)까지 벌인다는
 발상은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다.

인체를 대신하여 수많은 생체실험(生體實驗)에 희생당해온 쥐가 이제 사람의
 지능(知能)까지 닮아 오고 있으니 말이다. 
유전자 조작으로 지능지수가 높은 생각하는 쥐가 탄생한 것은 오래전 일이다. 
 바로 인간의 세포를 가진 쥐의 탄생(誕生)이다. 
 
나카우치 히로미쓰(中內啓光) 일본 도쿄대 줄기세포 연구소 교수팀은 올
 상반기에 쥐 배아에서 인간 세포를 배양한 ‘하이브리드 배아’를 만들어
대리 동물(動物)에게 이식하는 실험을 추진(推進)하고 있다. 

그동안 인간과 동물 세포를 결합하는 하이브리드 연구는 돼지를 대상으로
 이뤄졌지만 검증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반면 쥐는 빠른 실험 결과를
얻는다는 장점이 있다. 
사람 세포를 가진 쥐가 등장하기 전에도 사람과 쥐는 과학적(科學的)으로
 오랜 인연(因緣)이 있었다.

 중세 시대에는 페스트균을 보유한 쥐벼룩이 옮긴 흑사병으로 수백만명이
 목숨을 잃으면서 한동안 쥐에 대한 두려움이 확산되기도 했다. 
쥐가 실험동물(實驗動物)로 각광받는 이유는 사람과 공통점이 많기 때문이다.

 인간과 쥐 유전자는 99%가 같다. 이런 이유로 사람의 유전자가 질병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연구(硏究)하기 적합하다. 번식이 쉽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그만큼 쥐는 꾀가 많고 영리하다는 얘기다. 
생존과 번식 능력이 탁월(卓越)하며 잡식성이라 먹지 못하는 음식(飮食)이
 없다.

이제 고희(古稀)를 맞이하는 친우들이여~
이제 살아남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기껏해야 10년~20년 ?
그때 가서 죽으나 지금 죽으나 조금 더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意)가 될까?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다 이 무대()를 내려가는가?

 개관사정(蓋定)이라 죽어서 뚜껑을 덮어봐야 그 사람의 진가를 알 수 있다고

 했듯이 뚜껑이 있거나 없거나 기억()에 오래토록 남는 삶을 살져…

 

2020년 4월 하순

석암 조 헌 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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