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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스크랩] 남명선생을 낳은 이온선생의 용연사를 보다.

by 석암 조헌섭. 2011.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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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선생의 흔적을 찾아가기 전에 경상남도에서 2009년에 발행한 문화재목록을 살펴보았다.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 인근에는 남명 조식선생 생가지(기념물 148), 외토리 쌍비(유형문화재 291), 뇌룡정(문화재자료 129), 용연사(문화재자료 200), 북산정(문화재자료 374) 등의 문화유산이 기록되어 있어 다양한 문화재를 볼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출발하였다.

 

간혹 목록이나 안내판이 오타나 잘못 기록하고 있는 것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한자(漢字)의 기록으로 목록에는 용연사(龍淵祠)를 용연사(龍淵寺)로 기록하고 있어 절집인줄 알았다. 그리고 그곳 안내표지에 기록한 것 중에 외토리 쌍비는 ‘外吐里’로 기록하고 있어 ‘外兎里’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남명선생 생가지 터를 보고 나오면 뇌룡정 80m 뒤편에 용연사가 들판에 있어 저곳이 용연사일 것이라 미루어 짐작을 할 수 있다. ‘외토리 쌍비’의 주인공이며, 남명선생 외조부의 고조부인 이온(李縕)선생을 향사하는 곳이 이 용연사이다. 용연사 앞에는 “용연서원”이 자리를 잡고 있다. 문화재자료 제200호인 ‘용연사’ 건물은 용연서원 안으로 들어가야 볼 수 있다. 


용연서원(龍淵書院)으로 들어가는 문(門)의 현판에는 효천문(孝天門)이라 적어 두었는데 자물쇠가 채워져 있어 들어갈 수가 없고 옆에 최근에 만든 솟을삼문을 열고 들어가면 용연서원을 거쳐 용연사(龍淵祠)까지 볼 수 있다.


용연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으로 음력 3월 10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그 옆에는 비각이 나란히 서있다.


 

 

 

 

 

 

이곳 안내문에는 이렇게 적어 두었다.
용연사(龍淵祠)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00호
경삼남도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 589

 

『이곳은 인천인(仁川人) 영모재(永慕齋) 이온(李縕)선생을 추모 향사하는 곳으로 1580년에 처음 세워졌으며 1688년 용연서원(龍淵書院)을 신축(新築)할 때 보수하였으며 1868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으로 용연서원과 함께 훼철(毁撤)되었다. 1910년 바로 그 터에 용호정(龍湖亭)을 건립하고 그 뒤쪽에 비각과 용인사 동재(東齋), 서재(西齋)를 지었다. 광복 이후인 1947년 용호정을 용호서원으로 복원하였으며, 2002년 용연서원 복원 보수공사를 마쳤다. 이온선생에 대한 추모향사는 매년 음력 3월 중정일(中正日)로 정해져 많은 유림과 후손들이 참석하여 추모향사하고 있다.


이온 선생의 벼슬은 중현대부전의감정(中顯大夫典醫監正)에 이르렀으며, 천성이 유순하고 학문과 덕망이 높았으며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 석탄 이존오(石灘 李尊吾), 둔촌 이집(遁村 李集) 등의 학자들과 교유하였다. 효성이 지극했던 선생은 고향인 외토리 토동으로 낙향한 후 어려운 생활 형편에도 하늘의 도움으로 부모님을 잘 봉양하였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3년 동안 지극 정성으로 시묘를 살고 계속 묘 아래에서 50세가 되도록 부모님을 애모하였다. 1379년 이온 선생이 세상을 떠난 후 조정에서는 뒤늦게 선생의 효행을 알고 1383년(고려 우왕 9) 왕명으로 쌍비(雙碑)를 세워 정려(旌閭)하였다.』


 

 

 

 

출처 : 역사와야생화
글쓴이 : 천부인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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