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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감사패(感謝牌)

by 석암 조헌섭. 2013.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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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패(感謝牌)

 해마다 4월 5월은 각종 문화행사가 많은 달이다.
거리 곳곳마다 지방자치단체나 동창회, 문중행사, 등

여러 가지 행사 현수막이걸려있다.


이런 행사 때마다 등장하는 것이 각 단체의
임원이나 후원자에게 전달하는 감사패다.
그 감사패의 문구가 미사여구로 치렁치렁하다.
 

저런 사람이 없었다면 이 모임이 어떻게 유지 되었을까
하는 정도로 칭송이 대단하다.
좋은 일이고 길이 보전해야 할 미풍(?)이다.
 
그런데 과연 그 감사패의 문구처럼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 공감하는 내용인가 의심이 들 때가 있다.
감사패의 근원은 어디서부터인가?

옛날에 죽은 자의 사적을 후세에 기리기 위해 글을

새겨 넣는 풍습이 생겨났고,
그런 풍습이 산자를 위한 송덕비까지 만들어냈다.
 

그러나 고사를 뒤적거려 보면 비문과 일치하지 않는
송덕비가 즐비하다.
대부분 아부 반 강요 반으로 세워졌다.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던 것은 물론 때로는 폭정의 증거로

남아 있다.
조선의 마지막 암행어사였던 이##의 송덕비가 어느 사찰의

계단 옆 소멧돌 축대로 쌓여있는 사진을 본 일이 있는데
용기 있는 스님(?)의 행동이 아닌가 한다.
 
또한 가렴주구를 일삼았던 고부 군수나리가 자기 부친

송덕비를 세운답시고 가난한 백성들에게 돈을 추렴하여
동학혁명의 원인이 된 일도 있다.
 
오죽하면 임기 1-3년의 근민지관이던 고을 수령이

부임한지 1백일도 채 되기 전에 송덕비를 세워 
백일건비(百日建碑)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하기야 어차피 세워야 할 송덕비라면 임기 초에 기분 좋게

세워서 남은 임기동안 송덕비에 새겨진 대로 선정을
베풀라는 조롱 섞인 아부일런가?
 
고을 사또가 선정을 베풀거나 인덕이나 덕망이 높으면

고을에서 추렴해 커다란 일산(日傘)을 만들고,
그 덕이나 치적을 찬양하는 백성들의 글을 일산 끝에
주렁주렁 매달았다고 한다.
 
그런 송덕비나 일산이 간소화 되어 오늘날의 감사패나

공로패로 등장한 것이 아닐까?
그런데 감사나 공로와는 거리가 먼 경우를 많이

보게 되어 씁쓰레할 때가 있다.

감사(感謝)의 감(感)자는

마음(心)을 다한다(咸)는 의미의 느낄 감(感)자이다.

즉 받아도 손색이 없어야한다는 말이다..
또 사례할 사(謝)자는 ‘사양하다’ ‘거절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감사는 줄때 마음을 다해야 하지만,
받을 때는 받아야 하는지, 사양해야 하는지

마음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 있는 것이다. 
 
백일건비(百日建碑)의 반대되는 뜻으로 

만구성비(萬口成碑)라는 말이 있다.

여러 사람의 입이 비석을 만든다 라는 뜻으로 

이는 지방관이 진실로 백성의 고충을 알고
선정을 구현하여 여러 사람의 입에
그 칭송이 자자하면 결국 송덕비를 세우는

것과 같이 명성이 알려진다는 것인데,
 

백일건비와 같은 감사패보다 진정으로 우러나는
만구성비 같은 감사패가 아쉽다.
                                             
2014년 5월 13일 조헌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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