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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인물

이종걸 의원

by 석암 조헌섭. 2012.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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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의 시시각각] 독립운동 할아버지가 운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매우 훌륭한 조상을 지녔다. 경력과 헌신 그리고 개혁정신에서 그의    선조는 가장 뛰어난 가문 중 하나일 것이다.

 역사의 풍파(風波)에 많은 가문이 갈대가 될 때 그의 조상들은 애국의 대나무로 서 있었다.

 이 의원의 10대조 이항복은 조선 중기의 명신이었다.

 이후 증조부 이유승(구한말 이조판서)까지 9대조를 제외하곤 모두 정승·판서·참판을

 지냈다. 명문(名門)도 이런 명문이 없다. 하지만 이들 가문이 감동적인 것은 출세보다

 더 큰 헌신 때문이다.

 이 의원의 할아버지 우당(友堂) 이회영은 6형제였다. 우당이 넷째였고,

 초대 부통령 이시영이 다섯째였다. 1910년 나라가 일본에 넘어가자 6형제 50여 가족이

 만주로 망명했다. 형제들은 거액의 재산을 인재양성과 독립운동에 투자했다.

 이회영은 다른 독립운동가와 함께 만주에 신흥군관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를 나온 독립군이 나중에 청산리대첩을 거둔다. 재산 헌납뿐 아니라 형제들은

 직접 무장투쟁에 뛰어들었다. 우당을 비롯해 3형제가 일제의 고문을 받아가며 순국했다. 1945년 해방된 후 50여 가족 중 20여 명만이 살아남았다. 한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도덕적 의무)였다.

 6형제의 대표자 우당은 애국자이면서 시대를 선도하는 선각자였다.

그는 국가의 독립만큼 인간의 독립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신분과 성(性)의 봉건적인 차별을 경계했다. 우당은 노비에게 존댓말을 썼다고

  한다.    

 그는 여성의 인권에도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누이동생이 과부가 됐는데 당시에 양반

 집안의 개가(改嫁)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당은 죽었다는 거짓 부고(訃告)를

 낸 후 누이를 몰래 재혼시켰다.

 
 조상의 은덕(恩德)이 있다면 이종걸 의원에게는 애국심과 개혁의 피가 흐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1990년대 변호사 이종걸은 여성인권 운동에 열심이었다.

 성폭력 상담소 이사를 지낼 정도였다. 사실 2000년 그가 국회의원이 된 것도 이런 경력

 탓이 크다. 김대중 대통령은 여성운동가 이희호 여사의 ‘압력’을 받아 여성문제에 많은

 관심을 쏟았다. 그런 DJ정권에서 이종걸의 여성인권 활동은 공천에 유리하게 작용

했다고 한다.

 이종걸은 지금 4선 중진이다. 그는 ‘독립운동 할아버지들’과 자신의 여성인권 운동을 크게 내세운다. 홈페이지 인생 스토리는 증조부 이유승과 할아버지 이회영으로 시작한다.

 99년 여성인권에 가장 기여한 남성 10인’(여성신문사)에 뽑혔다는 것도 대표적인

 자랑거리로 올라 있다.

 그런 이종걸 의원이 한국 정치 사상 가장 공개적이고 노골적으로 여성을 비하한 의원이

  되고 있다. 박근혜 의원을 ‘그년’이라고 한 것이다. 이런 심리에는 박정희와 새누리당에

대한 적대감만 있는 게 아니다. 여성에 대한 강렬한 비하(卑下) 의식도 숨어 있다.

YS(김영삼)는 박근혜에 대해 “여성이 무슨 대통령을…”이라고 한 적이 있다.

 이종걸에 비하면 이는 애교 수준이다.

 이 의원은 두 가지 점에서 자신의 과거와 충돌하고 있다. 그는 조상을 정치에 활용하면서 정작 ‘여성 존중’이라는 조상의 가르침은 외면한다. 여성인권 활동으로 국회의원이 되고서도 충격적인 형태로 여성을 비하한다. 사건이 터진 후 그는 해괴한 논리와 변명으로 일관했다. 그러니 사과를 해도 진정성이 보이질 않는 것이다. 그는 과거뿐 아니라 자신의 미래와도

 충돌하고 있다.

 일찍이 조국의 독립만큼 여성의 독립도 중요하게 여겼던 할아버지 이회영. 이승만의 독선에 항의하며 부통령직을 버렸던 작은할아버지 이시영. 두 분 할아버지는 어떤 심정으로 손자를 바라보고 있을까. 이 의원은 경기고 시절에 할아버지 산소에 가서 독립투쟁을

기렸다고 한다.

이제야말로 산소를 다시 찾을 때다. 제1 야당 최고위원으로, 4선 의원으로, 경기고·서울대를 나온 엘리트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위대한 독립운동 가문의 후손으로서 ‘그년’이란 언행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 입력 2012.08.13

                                                       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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