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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인물

400년 전 율곡의 경고

by 석암 조헌섭. 2014.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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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전 율곡의 경고

[중앙일보] 입력 2014.01.08 00:58 / 수정 2014.01.08 01:37

중앙일보 갑오년 어젠다 … 나보다 우리가 먼저
"당쟁은 나라 근심" … 진영 정치 부추기는 강제 당론 없애야

조선시대 신진 정치 세력으로 등장한 사림(士林)파는 기득권층이었던 훈구파의 탄압을

 뚫고 선조(1552~1608)대에 집권에 성공했다. 하지만 사림파는 집권하자마자

 이조정랑(吏曹正郞)이란 관직을 누가 맡느냐를 놓고 ‘동인’과 ‘서인’으로 쪼개졌다.

 이조정랑은 삼사(三司·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관리추천권·전형권을 갖고 있는

 요직이었다.

 사림의 지도급 인사였던 율곡 이이는 동인의 강경파인 이발과 서인의 강경파인

 정철에게 수차례 편지를 보내 “두 분이 마음을 합쳐 나라 일에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양측의 갈등이 통제불능 상태로 치닫자 이이는 1583년 낙향을 결심하고

 지인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지금부터라도 서로 의심해 간격을 두지 말고 마음을 터놓고 정리해 나간다면

 다시 무슨 일이 있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조정의 근심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이이의 강론집 『석담일기』)

 그러나 이이의 우려는 현실화됐다. 그후 동인·서인은 남인·북인·노론·소론 등으로

 분화하며 상대 파를 살육하는 피비린내 나는 사색(四色)당쟁이 300년 넘게 이어졌다.

상대 존재 부정 … 공존 모델 못 찾아

 이이의 당부는 오늘날의 정치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조선시대 주자학적 명분론이

 20세기 현대사에서 오히려 강화됐다”(고려대 서진영 명예교수)는 평가가 나온다.

 역사평론가 이덕일씨는 “조선의 사림이 당쟁에 골몰했던 것은 상대 당파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기 때문”이라며 “지금 우리 정치도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서로를

 인정하는 공존 모델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 정부의 골격을 짠 정부조직 개편안이 정부가 출범한 지 26일 후 통과되는가 하면

 예산안은 2년 연속 연내 처리에 실패했다.

 예산안이 통과된 시간(2014년 1월 1일 오전 5시15분, 2013년 1월 1일 오전 6시4분)을

 보면 양보와 타협이 실종된 19대 국회의 모습이 드러난다.

 국회엔 지금 아군과 적군만 있을 뿐 ‘우리’가 없다. 이유는 분명하다.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여야의 ‘진영(陣營) 논리’를 꼽는다. 경희대 채진원(정치학) 교수는

 “진영 논리는 진보 또는 보수라는 이념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라며 “이는 필연적으로 자기 편은 절대선이고 상대 편은 절대악이란

 이분법을 낳게 된다”고 지적했다.

 적대적 진영 논리는 남북 분단과 6·25전쟁, 군사정권과 압축 고도성장, 민주화 투쟁 등

  격렬했던 우리 현대사가 남긴 상처다.

 가까이는 ‘1987년 체제’의 산물이다. 1노3김(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이

 만장일치로 만든 대통령 5년단임제와 이후의 나눠먹기식 국회 운영에서 지역할거주의가

 심화되고 진영 갈등이 커졌다.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은 “현행 ‘1987년 헌정 체제’는

 대선에서 51%를 얻은 승자가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48%를 얻은 패자의 목소리는

 사라지기 때문에 정쟁이 격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고려대 이내영(정치학) 교수는 “국민 사이의 이념 차이보다 정치권의 이념적 격차가

 훨씬 크다는 게 문제”라며 “정치인들은 국민이 절박하게 느끼는 문제로 싸우는 게

 아니라 자기들이 중시하는 문제로 싸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갈등 중재자여야 할

 정치권이 갈등 유발자가 됐다는 얘기다.

 

정치가 국민 갈등 유발자 노릇

 정치학자들은 여야가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의원들을 진영 앞에 줄 세우는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의원들을 진영 앞에 줄 세우는 건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강제 당론이다.

 지난해 12월 31일 새누리당이 협상테이블에 올린 외국인투자촉진법(외촉법)을 놓고

 민주당에서 찬반 논란이 벌어졌을 때 일부 온건파 의원들 사이에선 “차라리 투표로

 결정하자”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자유투표 요구는 강제 당론 앞에 무력했다.

 

 국민대 장승진(정치학) 교수는 “정당의 정체성·이념을 규정하는 최소한의 사안을

제외하곤 강제 당론을 없애야 한다”며 “대부분의 사안에 자유투표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속박은 공천이다. 한국외국어대 이정희(정치학) 교수는

 “차기 공천을 걱정해야 하는 의원들 입장에선 제 목소리를 내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오는 6월 지방선거부터 여야가 현실성 있는 상향식 공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특별취재팀=정치부 김정하·권호·강태화·하선영·김경희 기자, 국제부 한경환 선임기자

◆사림 =조선 초기 공신 세력을 중심으로 형성된 관료 집단인 훈구파에 맞서 성리학

 이념의 현실 구현을 주장하며 재야에서 생겨난 유림 세력. 김종직이 실질적

 시조이며 성종(1457~1494) 때부터 중앙 정계에 본격 진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