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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여수엑스포 동행 취재

by 석암 조헌섭. 2012.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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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속으로] 노소영 관장과 여수엑스포 동행 취재

바다 위의 엑스포 … 문명은 바다로 무한 확장되고 있었다.

 






2012 여수엑스포의 불빛이 켜졌다.  바다와 LED 조명이 어울린 야경은 여수엑스포의 별미다.
사진 중앙의 물고기 모양을 한 건축물이 주제관이다. 오른쪽은 멀티미디어
해상쇼가 펼쳐지는 빅오(Big-O). 왼쪽 높은 건물은 엠블 호텔.
 [여수=박종근 기자]

누가 이 바다를, 자연의 물결을 인위적으로 재현해 낼 수 있을 것인가.
‘2012년 세계박람회’가 열리는 대한민국 전남 여수시. 엑스포라 불리는

세계박람회 160여 년의 역사상 여수 같은 곳은 없었다.

 자본주의가 급성장했던 19세기 중반 태동했다. 자연을 정복하며 획득했던

테크놀로지 문명의 이기(利器)를 선보이는 자리였고, 그것을 달성해 낸

 국가의 파워를 과시하는 공간이었다.

 그런 엑스포의 문법이 바뀌고 있다. ‘살아 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을
 주제로 내건 여수엑스포는

그 변화의 출발점으로 읽힌다. 12일 막을 올리는 여수엑스포 현장을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함께 찾았다.

1박2일의 동행취재였다. 노 관장은 지난 1년6개월을 여수와 함께 보냈다. 

여수엑스포 내 기업전시장의 일부인 SK관 설계 총감독을 맡았다.

아트센터 나비 노소영 관장.

◆왜 여수인가=9일 오전 엑스포 취재를 위해 서울에서 여수로 가는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생각은 ‘왜 여수인가’였다. 인구 30만 명도 안 되는 소도시, 교통과

숙박시설이 제한적인 수밖에 없는 한반도 남쪽의 한 끄트머리에 위치한 그곳에서

세계박람회를 열어야 하는가.

 여수엑스포 현장을 두루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에 오르면서 그 의문은
 하나 둘씩 풀리기

시작했다. 눈앞 사방으로 펼쳐진 탁 트인 바다. 여수엑스포 주요 전시장은 모두

천혜의 바다와 연결돼 있었다.

 박람회장 공식 면적인 25만㎡는 육지만을 계산한 것이다.

 그것만 치면 2010년

 중국 상하이(上海)엑스포에 비해 여수의 면적은 4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상하이엑스포와 여수엑스포는 그렇게 크기로 평면 비교할 순 없다.

상하이 역시 해안 도시다. 하지만 상하이엑스포 현장은 바다와 닿아 있지
 않았다.

여수엑스포는 바다로 무한 확장되고 있었다. 노 관장은 1993년 대전엑스포 이후

열린 크고 작은 세계박람회를 두루 돌아봤다.

 여수엑스포처럼 바다를 직접 접한 곳은 없었다고 한다.

주제관·국제관·기업관 등으로 나뉜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각종 디지털

 영상물과 첨단문명의 위용을 만끽할 수 있지만 자연의 바다와 문명의

 엑스포의 만남은 여수에서만 느낄 수 있는 호사거리다.

 그것은 상상력의 확장이기도 하고 패러다임의 변화이기도 했다.

 2000년 독일 하노버엑스포는 노 관장의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다.

밀레니엄에 대한 유토피아적 열망과 기대가 ‘정보기술(IT) 혁명’의 돌풍을

 타고 실로 장관을 벌여 놓았다.

예술과 기술, 그리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한껏 뽐내는 자리였다.

 통일 독일의 위세를 만방에 떨치려는 야심이 더해지며 국가 재정이 휘청

 거릴 정도의 예산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이런 점은 G2로 부상하는 중국의 2010 상하이엑스포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밀레니엄의 시작으로부터 10년이 조금 넘은 지금은 세상이 또 달라지고
 있다.

 기술과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맹신, 디지털 유토피아에 대한 맹목적 낙관이

 사라지고 있다. 대신 지속가능성·스마트·소셜네트워크 등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노 관장은 “현란한 기술이나 무제한적인 욕망의 충족이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믿지 않게 된 것이죠. 자연과 이웃과 함께하는 21세기 새로운 유형의 스마트한

엑스포를 창조해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여수엑스포 기업관에선 다양한 첨단 디지털 영상물을 즐길 수 있다.

 신중현 작곡의 ‘아름다운 강산’을 1000명이 합창하는 영상물(SK텔레콤·사진맨 위),
사람과 자연의 공존을 주제로 한 멀티미디어쇼(포스코·가운데), 해상도 높은 디지털 기술과
아날로그 퍼포먼스를 결합시킨 공연(삼성·아래).[여수=박종근 기자]

 ◆흥행과 실속=노 관장은 엑스포를 두 개의 시각으로 바라봤다.

 하나는 흥행의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실속의 시점이다. 흥행은 단기적으로 눈에 드러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와서 보고 즐겼나 하는 것이다.

 

성인 한 명당 3만3000원 하는 입장료를 낸 관람객 수는 흥행의 한 지수다.

 흥행에 비해 실속은 짧은 기간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엑스포가 끝난 이후 지역

발전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봐야 한다.

 “2005년 일본 아이치엑스포와 2008년 스페인 사라고사엑스포의 경우가 비교적

낙후된 지역에 유치해 실속을 얻은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도로망 같은

인프라 개선은 물론이고 새로운 산업이 유치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지는 것이죠.”

 지난 세기의 엑스포는 국가가 중심이 되고 기업이 앞장서는 박람회였다면

21세기 엑스포에선 도시와 지역이 전면에 부각되고 시민의 참여가 중시된다.

그런 점에서 진정한 실속은 보다 근원적이다. 국민적 자신감의 축적이며

문화의 힘을 선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주제관과 한국관에서 소개되는 콘텐트는 시각에 따라 다소 촌스럽게 보일

 수도 있겠는데, 그 속에서 어떤 변화를 읽어 내고 싶어요.

 나이 든 세대에 한국 문화로 정형화된 부채춤과 판소리 같은 공연이 없어요.

 또 젊은 세대에 익숙한 K팝 한류(韓流)도 보이지 않습니다.

상하이엑스포츠 한국관만 해도 동방신기를 앞세웠었잖아요.

대신 바다와 함께 살아온 보통의 한국인 모습이 담겨 있더군요.”

 노 관장이 볼 때 한국 해안의 갯벌과 고기잡이 하며 살던 전통의 일상을
 보여

주는 모습이 오히려 당당해 보였다고 한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서양의 근대에 뒤졌다는 일종의 ‘과거 콤플렉스’에서

 벗어난 문화적 자부심의 신호로 해석되는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지휘한 전라우수영이 있던 곳이

 여수 앞바다다.

 임진왜란 이후 여수에서 열린 최대의 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이번 엑스포에

이순신과 거북선이 크게 부각되지 않은 것도 일종의 변화된 흐름으로 감지됐다.

 

 

 ◆역사와 흐름=최초의 세계박람회인 1851년 영국 런던엑스포에선

 증기기관이 첫 선을 보였다. 초기 엑스포를 주도한 프랑스의 1889년 파리 엑스포에선

에펠탑이 전시된 것으로 유명하다. 

이렇듯 엑스포는 19세기 산업혁명의 절정에서 유럽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산업화의 기술적 발명품을 자랑하는 이 대열에 일찍이 편승한 대표적
 아시아 국가는

제국주의 일본이었다. 엑스포에 일찍 노출되느냐 마느냐가 제국주의와

식민화의 갈림길이기도 했다.

일본이 엑스포를 번역한 ‘만국(萬國)박람회’라는 용어를 한동안 우리도 사용했다.

 엑스포 참가 자체로 보면 한국이 그렇게 늦은 편은 아니다.

1893년 미국 시카고엑스포에 처음으로 한국관을 설치했다.

당시 전통 한옥 재료를 두 달에 걸쳐 배로 실어가 전시했다고 한다.

 엑스포로 본 근대화의 어제와 오늘, 그 내용의 차이는 지난 100여 년

한국 사회와 경제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한국은 일제 침탈과 6·25전쟁 등을

 겪으면서 60여 년 동안 엑스포에 참가하지 못했다.

 한국이 엑스포 역사에 다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62년 미국 시애틀

엑스포였다. 시애틀엑스포 이후 한국은 국제박람회기구(BIE)가 공인하는

 엑스포에 빠짐없이

참가해 왔다.

산업화에 이은 올림픽과 엑스포의 잇따른 개최는 일종의 공식처럼 다가온다.

 일본은 1962년 도쿄올림픽에 이어 70년 오사카엑스포를 개최했고,

 한국은 88년 서울올림픽에 이어 93년 대전엑스포를 주최했다.

그리고 중국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엑스포를 잇따라 열었다.

상하이엑스포까지는 크게 봐 산업화 성공 과시형 엑스포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흐름이다.

 2012 여수엑스포의 새로움은 국제관 중 가장 규모가 큰 미국관에서도 발견된다.

지구의 70%를 차지하는 바다, 그러나 아직 인간이 바다에 관해 아는 것은 5%에

그치는 실정이다.

 미국관은 이런 전제 아래 지구의 미래는 결국 바다와 함께 공존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디지털 영상에 담아 간결한 목소리로 전달했다.

 심플하지만 결코 작지 않은 울림이다.

 ◆엑스포의 꽃은 시민정신=세계 여러 나라의 엑스포를 돌아본 노 관장의 경험에 따르면

궁극적으로 눈길을 끌고 감동을 주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전시장 시설이나 교통과 숙박이

얼마나 국제적 수준에 도달했느냐 하는 문제보다 여수에서 만난 사람의 인심이

어떠했나 하는 경험이 더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다는 얘기다.



 예컨대 여수 음식이 아무리 맛있다 해도 한국인 입맛에 그런 것이고,

 외국인 입장에서 낯선 토속음식의 하나로 여겨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전시장에서 우연히 스치고 지나가는 이들이 서로 나눈

 ‘작은 친절함’은 엑스포의 흥행과 실적의 충실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개막을 앞두고 자원봉사자를 모집할 때 당초 5000명을 예상했으나
 7000명의

지원자가 몰렸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시민정신이야말로 여수엑스포의 성공을 예감케 하는

즐거운 소식입니다.”

 여수엑스포는 12일부터 8월 12일까지 3개월간 펼쳐진다. 


◆엑스포=‘엑스포’는 박람회를 뜻하는 영어 ‘exposition’의 앞부분 ‘expo’를 떼어내 만든 조어다.

 엑스포가 세계박람회 공식 명칭으로 쓰인 것은 1970년 오사카 세계박람회부터다. 이후 박람회를 지칭하는 용어로 굳어졌다.

그 이전엔 ‘exhibition’ ‘fair’ 등이 함께 쓰였다. 이번 여수 대회의 공식 명칭도 ‘엑스포 2012 여수 코리아’다.

 19세기 중반 이후 20세기 전반까지는 엑스포의 황금기로 불릴 만하다.

 엑스포는 새로운 기술과 문명에 대한 인류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공간이었다.

 20세기 후반 이후 교통과 통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호기심을 채워주는

대체물이 늘어나게 됐다.

 텔레비전에 이어 컴퓨터 인터넷의 발달은 엑스포의 존재 이유를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엑스포 역시 진화를 거듭하며 변화에 대처해 나간다.

 인류 공동의 과제를 논의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영역을 확장해 갔다.

엑스포가 그러하듯 여수도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이다.

 도시 전체가 변화하는 듯하다. 다시 태어나는 여수, 그 분기점이 엑스포가 될 전망이다.

 변화하는 여수를 보기 위해 찾아가는 길은 크게 세 가지다. 기차, 비행기,

그리고 고속버스·자가용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철도를 이용해 KTX를 타면 여수엑스포역에서 내려 걸어서 전시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 승용차는 박람회 기간 중 통제되기 때문에 인근의 환승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무료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순천역에서 여수엑스포역 간 무료 셔틀버스도 운행된다. 행사 기간 여수시내 전 구간의

시내버스도 무료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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