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적으로 인간을 고통과 질병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을 제1의 목표로 삼는 분이다.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아 갈 수 있도록 지금도 현장에서 노력하고 계신 분이다. 의료법이라는 불완전한 법의 잣대와의료 기득권들의 시기가 구당 선생이 우리나라에서 맘껏 그 훌륭한 뜻을 펼 수 없었던 이유라 생각한다. 한국에서 구당 선생의 침뜸의 효과에 대한 임상 실험이 불가능해지자 안과 전문의 전영철 원장의 도움과 미국 애틀랜타 최대규모의 한인병원 뉴호프병원(New Hope Hospital, 새소망병원)을 운영하는 이건주 원장의 도움으로,미국에서 임상실험을 진행할수 있게 된다. 2009년1월 미국에서 예비임상을 성공적으로 하고, 2009년7월 본격적인 임상을 위해 95세의 나이에 미국 애틀랜타로 건너가게 된다. 서양의학의 본고장에서도 구당선생의 침구에 대한 의료적인 가치를 인정하고 그것을 확인할 수 있도록 조지아 주정부도 합법적인 임상 치료 허가를 내어 주었다. 미국의 의사들은 구당선생의 화상침과 암치료에 관심을 많이 보였다고 한다. 구당선생이 도미한 지 두달 보름만인 2009년 10월 9일, 조지아 주 정부는 구당이 이끄는 '뜸사랑' 미주 재단에 합법적인 봉사 단체로서 비영리 법인 인가를 내주었고, 구당선생에게도 안정적인 체류 비자를 발부했다. 구당선생은 애틀랜타 남부에 위치한 리버데일 암센터에서약 30여명의 암환자에 대한 임상기록을 축적하였다.
이렇게 서양의학의 본고장인 미국의료계에서는 구당선생의 침뜸의료 효과를 활용할 방안을 모색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여전히 구당선생의 침뜸의료 효과를 활용할 생각을 못하고 있다.
오히려 구당선생은 한국에서 시련을 겪어야 했다. 2008년경부터 서울시,검찰,경찰에 불려다녀야 했고, 그 와중에 진료도 정지 당했다.그 뒤엔 역시 한의사들이 있었다. 2011년 11월 24일 헌법재판소는 '구당의 뜸은 불법이 아니다'고 선고를 했다. 구당 선생은 "배워서 남주자" 라는 생각을 몸소 실천하며 100세가 넘는 나이에도 침뜸의료 현장에서 왕성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한국사회의 보물이며 존경받을 만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아픈사람 없은 세상을 꿈꾸는 순수한 열정의 삶이 의료 기득권 세력에게 시련을 당하는 것을 보면, 지금 한국 사회는 개선이 필요한 많은 모순(문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 한국 의료계와 정부는 이러한 훌륭한 침뜸의 효과를 활용할 생각을 못하는 것일까?
한국사회의 불합리함을 뚫고 피어나는 인간의 삶을 살아오고 계신 김남수 옹의 삶을 응원하고 싶다. 우리 사회는 많은 왜곡과 모순이 있는데, 이러한 분들의 실천의 삶을 통해서, 희망이 만들어 지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구당 선생님은 예전에 암투병하던 장진영씨 치료 관련해서 부당하고 악의적으로 공격 당한 적이 있었고, 이에 대해서는이상호 기자의 취재 기사를 통해 그 진상을 나름대로 확인해 볼 수 있었다.
구당선생의 침뜸이 너무 쉽고 저렴하게 사람들의 치료를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본질을 보면, 쉽고 저렴하게 사람을 치료하고, 고통을 덜어 줄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있는 가치라고 생각하게 된다. 만연되어 있는 자본주의 가치와 상충되는 것이 침뜸 치료가 수난을 겪는 이유는 아닐까? 또한, 오히려 자본주의의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구당선생은 65세 때 쓰러저겨 사흘이 지나서야 깨어날 수 있었다. 그로부터 40일을 산소마스크에 의존했고, 6개월동안 입원해 심근경색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통증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병원에서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우겨서 퇴원을 하고, 구당선생 본인의 몸을 볼모삼아 침뜸의 진가를 확인해 보기로 한다. 집에서 아들이 구당선생이 일러준혈자리에 뜸을 놓았다. 얼마 지나자 거짓말처럼 기운을 차리고 일어날 수 있었다. 구당선생은 지금까지도 제자들이나 자녀들에게 무극보양뜸을 놓게 하며, 100세가 넘는 지금도 건강하게 활동하고 있다.
"우리 민족 전통 의술인 침뜸이 미주에도 널리 보급돼 한인은 물론 타인종들에게도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침뜸의 대가' 구당 김남수(101) 옹이 지난 6일 LA를 방문했다. 김 옹의 이번 방문은 지난 6일 재미한의사협회(회장 깁갑봉)가 주최한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이번 대회에서 김옹은 '무병장수의학 임상 비법'을 주제로 요통, 오십견, 허리디스크, 두통 고혈압 등에 효과 있는 침술과 뜸을 소개했다. 또 9일엔 사우스베일로 LA캠퍼스에서 열린 건강 강연회에 참석, 건강 장수비법을 강연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김옹은 "침과 뜸은 침과 쑥만 있으면 시술할 수 있는 가장 전통적이며 서민적인 의술"이라며 "갈수록 의료비용이 높아지는 요즘 저렴한 비용으로 높은 치료효과를 보이는 침뜸이 미주에도 많이 보급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옹은 1915년 전남 장성 출생으로 선친에게 침구학을 전수받고 1943년 서울에 남수침술원을 개원한 이래 꾸준히 진료활동을 해온, 임상경험만 80여 년 가까이 되는 한국 침구학의 거목이다.
그동안 김옹의 침구치료를 받은 이들은 전직 대통령에서부터 정재계 고위급 인사들은 물론 장애인과 노약자 등 사회 소외계층까지 다양하다. 이처럼 그의 진료실엔 예약 자체가 힘들만큼 환자들이 줄을 서지만 정작 김옹은 유료 환자보다는 전국방방곡곡을 돌며 장애인, 노약자, 저소득층 등 사회 소외계층을 찾아 무료 진료를 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를 존경하고 따르지만 그는 세간의 주목을 받거나 유명해지는 것에 손사래를 친다.
김옹은 "배워서 남 주자는 게 내 오랜 신조"라며 "내 시술이 아픈 이들의 고통을 덜어 질병 없는 세상을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그것만으로 보람 있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런 사회적 공헌으로 그는 지난 2002년 김대중 정부로부터 대통령 표창을, 2008년엔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현재 김옹은 한국에서 한국정통침구학회 뜸사랑 대표로 후학 양성과 봉사활동에 매진하고 있으며 여전히 적잖은 국내외 강연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이처럼 24시간이 모자랄 만큼빡빡한 일정에도 백수를 넘긴 김옹은 젊은 제자들도 혀를 내두를 만큼 지금까지 왕성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김옹은 "많은 사람들이 내게 건강과 장수 비결을 묻는데 굳이 꼽자면 매일 아침 뜨는 뜸"이라며 "무엇보다 환자를 고치겠다는 일념으로열심히 진료한 것이 가장 큰 장수 비결이 아니겠냐"고 말한다.
한편 김옹은 최근 고향 전남 장성에 건립한 무극보양뜸센터 내 구당침술원을 개원해 오는 10월부터 진료에 나설 예정이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린 21일 오전 11시. 서울역사 4층 복도 끝 방에 ‘구당침술원’ 이라는 조그마한 간판이 붙어 있다. 구당 김남수 원장(한국정통침구학회장)이 침구사자격 논란이 있은 지 약 5년 만에 다시 문을 연 곳이다. 김 원장은 2008년 KBS 추석특집방송 후 한의계로부터 구사(灸士) 면허 없이 뜸으로 환자를 치료한다는 이유로 고발됐다. 이를 계기로 서울시로부터 침사 자격정지 45일 처분을 받고, 청량리에서 운영하던 침술원을 폐업 했었다.
한국정통침구학회 송선구 사무처장은 “2011년 헌법재판소는 김남수 회장이 뜸을 떠도 된다고 결정 했고, 2012년 대법원에서 서울시의 침사자격 정지처분은 부당하다는 판결이 확정 됐다”며 “이후 폐업했던 침·뜸 클리닉을 서울역에 다시 개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송 사무처장은 “복도 끝 왼쪽 방은 구당침술원이고 마주보고 있는 곳은 이곳의 사무실”이라며 “원래 코레일 노조의 휴게실이었다”고 말했다.
구당침술원 입구에는 한국광고협회 이순동 회장이 보낸 화환이 하나 놓여 있었다. 침술원에 들어서자 왼쪽 벽에 걸려 있는 김남수 옹의 큰 흑백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대기실에는 예약한 환자 3~4명이 앉아 있었다. 이곳은 매주 월, 화요일 이틀만 진료한다. 하루 진료 인원은 15명이고, 한번 방문 시 치료비는 10만 원이다. 진료 예약은 홈페이지(www.gudang.kr 또는 www.chimtm.net)에서만 가능하다.
송 사무처장은 “예약은 진료가 있는 전주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받는다. 지난주에는 5초 만에 예약이 끝났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월, 화요일을 제외한 나머지 요일에는 봉사활동과 국내외 침·뜸 보급에 주력할 계획이다.
대기실 왼쪽의 하늘색 커튼을 열고 들어서자 침대 4개가 보였다. 김 원장은 제일 안쪽 침대에서 검은색 팬으로 한 남성(49)의 몸에 뜸 놓을 곳을 표시하고 있었다.
이 남성은 교통사고로 왼쪽 팔다리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 김 원장은 그를 엎드리게 한 뒤 발부터 종아리, 허리, 등, 목, 두피까지 침을 놨다.
진료를 마치고 나오는 김 원장과 잠시 얘기를 나눴다. 올해 98세인 그는 “잘 안 들리니 크게 말해 달라”고 했다. 다시 침술원을 열게 된 이유를 물었다. 김씨는 “(침과 뜸은)우리의 영원한 보물이다. 우리 문화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져온 것”이라며 “시비 거리가 돼 5년 간 (진료를)못하고 있을 때 굉장히 괴로웠다. 국경도 없고 인종차별도 없는 (침, 뜸)이 사라지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코레일 사장님이 돈 없고 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사무실을 마련해 줬다”며 “앞으로는 해외에서도 침뜸을 배우기 위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정통침구학회는 중국 감숙성(甘肅省) 중의병원과 협력해 1년에 약 100명을 교육할 예정이다. 오는 3월 첫 교육생이 방문한다. 구당침술원의 진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뜸사랑 홈페이지(www.chimtm.net)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한의계는 김남수 원장의 침술원 활동을 예의주시할 계획이다. 대한한의사협회 한의학정책연구원 최문섭 부원장은 “김남수 씨의 자격은 아직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자숙해야 한다”며 “특히 그의 치료 효능은 명확하게 검증되지 않았다. 자격 이외의 위법한 행위가 있으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침뜸의 대가 김남수, 미국으로 간 까닭은? 세상이야기 2009/11/27 06:13
아내가 갑자기 허리가 아프다길래 김남수 할아버지에게 찾아갈까 하여 검색을 했습니다.
김남수 할아버지는 70년 이상 많은 환자에게 침뜸을 시술해 온 침구의 대가입니다. 환자가 너무 많아서 진료받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오래 전에 TV에서 봤기에 미리 예약을 하려고 검색을 한 것입니다. 구당 김남수 할아버지의 시술장면. 출처 : http://bimap.tistory.com/83
그런데 그 분이 지금 한국에 안계시더군요!
'침사' 자격은 있지만 '뜸사'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대한한의사협회로부터 고발을 받았고, 법원은 한의사협회의 손을 들어주었답니다. 그전에도 의료법 위반으로 몇 번이나 신고 되어 고생을 했는데 이번에도 자격정지 처분을 받자, 아예 진료실의 문을 닫아버렸다는군요.
뜸은 쉬워서 누구나 할 수 있고, 위험하지도 않고, 그러면서도 효과가 좋은 의술인데, 이것을 세상에 알리는 게 죄라니 말이 됩니까?
올해 94세의 김 할아버지는 이런 말로 항변하며 미국의학계의 초청을 받아 떠났습니다. 한국에서 '무면허 불법의료인'인 그는 미국에서 '동양 의학의 대가'로 대우를 받으며 환자들을 시술하고 있습니다.
그의 미국행은 KBS '추석특집-구당 김남수의 침뜸 이야기'를 시작으로, MBC 'PD수첩', SBS '뉴스추적'에 보도될 정도로 화제가 됐습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SBS가 <뉴스추적> '구당이 미국으로 간 까닭은?'에서 안정성과 치료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일부 무면허 불법의료행위를 마치 새로운 치료법인 것처럼 소개하는 것은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무책임한 처사"라고 지적하며, "한의사제도가 없는 미국의 경우 의사 치료영역 이외의 부분을 모두 보완대체의학으로 보고 있지만, 한의사와 의사가 공존하는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에서는 침과 뜸, 봉침 등의 경우 보완대체영역이 아닌 엄연한 한의사의 고유 시술영역임을 간과했다"고 항의했습니다.
의료법 27조는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의료법에 대해 위헌소송을 낸 '뜸사랑' 회원측에서는 “의료법상의 '의료행위’는 너무나 불분명해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반면 보건복지가족부 측에서는 “의료면허제도는 무분별한 의료행위로부터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합리적 장치”라며 “입법 목적이 정당하고 피해의 최소성, 법의 균형성 등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그동안 오랜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수많은 민간의료요법은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정통의학계로부터 무시되어 왔습니다. 그러한 의학계 흐름 속에서 제정된 의료법은 수많은 민간 의술의 대가들을 불법무면허 의료인으로 만드는 족쇄가 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서구 의학계에는 오래 전부터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도움이 되는 방법이라면 무엇이든 받아들여 이용하려는 대체의학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들은 침술을 비롯한 동양의학을 적극 받아들였고, 자연 식물을 이용하는 허브요법이나 그밖의 새로운 민간요법 등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의사가 아닌 민간인들이 이런 분야의 의료 전문가가 될 수 있는 법적 제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지금 김남수 할아버지는 '미국 환자'들을 대상으로 침과 뜸의 시술을 하고 있습니다.
시술은 대성공이라고 합니다. 각종 난치병이나 만성 질환에 고통 받던 백인 환자들이 침과 뜸을 맞고 건강을 되찾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다가 김남수 할아버지의 침구 비법이 미국 의학계에 전수되어 우리가 그것을 역수입하게 될 날이 올지 누가 알겠습니까?
서구 의학계가 동양 의학을 받아들여 오히려 그것을 세계에 역수출 하고 있는 지금, '동의보감'과 '사상의학' 등 한의학의 뛰어난 전통을 가진 한국은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요? 미국의 의사들은 기를 쓰고 배우려 하는 김남수 할아버지의 치료술을 왜 대한민국 의사들은 내팽개치고 오히려 고발을 하고 감옥에 가두려 할까요?
지금도 일반 병원에서 치료가 실패한 환자들은 불법임을 알면서도 무면허 의료인들을 찾아갑니다. 왜일까요? 생명을 되찾으려는 실낱 같은 희망 때문입니다.
그 중에는 환자의 생명을 우롱하는 사이비 시술자들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 중에는 오랜 임상경험을 통해 기적과 같은 효과를 보는 의술인도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면허시험을 볼 학력도 없고, 볼 기회도 없었던 분들도 많을 겁니다. 또 면허시험의 대상이 아닌 특이한 비법을 가진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한 시술을 통해 효과를 본 환자들이 있다면 그 의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야 마땅한 일입니다.
의술이란 서양의술이냐 동양의술이냐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불법이냐 합법이냐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오로지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건강을 되찾고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는 의술이라면 아프리카의 약초꾼이든 인디언의 무당이든 무면허 뜸장이든 그 소중한 비법을 전수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콜롬비아 생물학자 다리오 구티에레스가 보고타의 한 학교를 방문해 학생들 에게 거미를 이용한 전통 의료 비법을 강의하고 있다. 쿠티에레스씨는 약 300종 거미류를 전통 의료 비법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에게 이를 강의하는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보고타/AP 연합뉴스 [2009/03/11 14:58]http://pictorial.hani.co.kr/pitView.hani?sn=46922...
우리 땅에서 수천년을 이어져 내려 온 우리 몸에 맞는 치료법의 대가를 단순히 의료법만을 앞세워 고발하고 핍박하는 현실은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훌륭한 전통의술과 민간의료요법을 낡은 법의 테두리 속에 가둬둘 것이 아니라, 현대의학과의 협진이나 통합진료를 통해 수많은 환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더 잘 지킬 수 있는 길은 없는지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침. 뜸 무료봉사 회원 100여명 입건
2009.12.18 10:50:48 '침·뜸 무료봉사' 회원 100여명 입건 논란 노컷뉴스 | 입력 2009.12.18 10:03 전체목록침·뜸 무료봉사 회원 100여명 입건,
"의료법 위반" 정당한 법집행 "봉사활동에.." 과도한 법집행 [CBS사회부 최인수 기자] 노인과 저소득층에게 무료로 침과 뜸을 놔준 자원봉사단체 회원 100여명이 경찰에 입건돼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한의사 자격 없이 불법 의료행위를 한 혐의로 '뜸사랑' 회원 강 모(71) 씨 등 12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8일 밝혔다. 이들은 지난 2007년 8월부터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사무실에서 노인이나 저소득층등을 상대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무료로 침과 뜸을 놔주는 봉사활동을 해 의료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다. '뜸사랑'은 남수침술원 원장 구당 김남수(94)옹에게 침과 뜸을 배운 사람들이 설립한 자원봉사단체다.
경찰은 현행 의료법이 의료인이 아니면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어 이들의 봉사활동은 불법이라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 8월 대한개원한의사협의회가 이들을 고발해 현재까지 100여명에 대한 조사를 마쳤으며, 10여명을 불구속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뜸사랑 회원들은 경찰에서 "무료로 봉사활동을 한 것뿐이라며 조사를 받는 것을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는 현재 무면허 의료행위를 금지하는 의료법 조항과 관련해 위헌법률심판 1건과 헌법소원 2건을 심리하고 있다. 아픈 사람 없는 세상을 위해 인술을 펼치는 침구사 공지애(자유기고가) 2006.02
“침술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무어라 할 수 있을까요?” “침술은 보물입니다.” “보물이요?” “제 아무리 값진 청자 백자니 하는 것도 일정한 감정가가 있잖아요. 하지만 침술은 액수로 가늠할 수 없어요. 사람이 살아 있는 한 두고두고 사용될 것이니까요. 수억 년이 가도 바꿀 수 없으니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보물 중에 보물인 거죠. 허허허.” 그랬다. 정통침뜸의 맥을 고스란히 이어온 구당(灸堂) 김남수(92) 옹에게 침술은 소중한 보물단지요, 대대손손 물려줄 가보였다.
60년 넘게 사랑의 인술 펼쳐 연일 강추위가 계속되던 어느 날, 김남수 옹을 만나기 위해 홍릉 사거리에 위치한 남수침술원을 찾았다. 1층에는 김남수 옹이 운영하는 침술원이, 2층엔 침뜸을 연구 보급하고, 침뜸무료 진료활동을 하는 뜸사랑봉사단 사무실이 있었다.
진료실로 들어서자 김 옹은 구순(九旬)을 넘겼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활기찬 모습으로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었다. 자신의 건강도 모두 침뜸으로 유지해 올 수 있었다고 말하는 김옹은 손끝의 흩어짐 없이 가늘디가는 침을 정확히 놓는가 하면 휴대전화의 부재중 전화까지 체크할 정도로 눈도 밝았다. “시력이 좋으신가보다”는 말을 건넸다가 ‘눈이 나쁜 것이 비정상이고 잘 보이는 것이 정상인 것이지, 눈이 좋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핀잔만 받았다.
김옹의 하루 평균 수면은 4시간도 채 안 되지만 전혀 체력의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단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진료와 강의, 그리고 연구 집필로 자정이 넘어서야 잠이 들고 새벽 4시면 일어나 진료받는 환자들이 한기를 느끼지 않도록 진료실 난방부터 살핀다. 진료가 이른 아침 5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 시간에 누가 진료를 오겠나 싶지만 그나마도 서두르지 않으면 그 날 진료 순번을 받지 못한다. ‘침 한번 집’으로도 유명한 그의 침술원에는 연일 환자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1943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침술원을 연지 어언 60년이 지났다. 의원이었던 부친도 침을 놓았고, 형님도 침구사였다. 김옹 역시 열한 살때 침을 잡기 시작해 자연 스럽게 침구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슬하의 1남3녀 중 딸은 미국 침구대학원에 유학중이고 아들은 남수침술원에서 함께 인술을 펼치고 있다. 그는 환자를 진찰할 때 바라보는 망진(望診), 듣고 냄새 맡는 문진(聞診) 물어보는 문진(問診), 그리고 만져보는 절진(切診) 등 사진(四診)만으로 환자의 질병을 알아낸다. 몸에 나있는 잔털 하나, 흘리는 땀방울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병이란 균형이 무너져서 오는 것이므로 균형이 무너지려는 징조나 혹은 무너진 흔적은 어딘가에서 분명 나타나기 마련이란다. 10년 동안 아이가 없어 고민하던 부부, 칠년 동안 신경통으로 시달리던 할머니, 디스크 수술을 세번이나 받았다 뒤늦게 찾아온 중년 남성, 중풍, 당뇨, 부인과 질환을 가지고 찾아왔다. 침뜸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환자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또 쥐도 새도 모르게 불려가 침을 놓아준 거물급 인사도 한둘이 아니었다. 김옹은 또 화상침법을 개발하여 침으로 화상(火傷)을 완전히 치료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가 침의 화상치료를 처음 확인한 것은 지난 1986년 겨울. 그가 왕진을 다녀온 틈에 부인이 얼굴과 가슴에 온통 화상을 입었다. 아궁이에 불을 살피러 가다 미끄러져 물솥의 뜨거운 물에 데었던 것이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평소 침으로 화상을 치료하면 잘 낫는다고 했던 김옹의 말이 떠올라 부인은 급한 대로 데인 자리에 침을 놓았다. 그렇게까지 심한 화상환자를 치료해본 적이 없었던 김옹에게 부인이 첫 화상 환자가 된 셈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화상치료를 받기 시작하던 날 부인은 화기(火氣)가 가라 앉고, 사흘째 날엔 보기 흉측할 정도의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고 진물도 그쳤다. 그리고 여드레째 날 드디어 딱지가 벗겨지고 매끈매끈한 새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김옹은 그 뒤 4년간 화상 치료 사례를 기록하고 연구해 1994년 세계침구학회연합회 국제침구학술 심포지엄에서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 뒤 김옹은 의사들에게 침을 가르칠 때 늘 화상침법을 강조했다. 병원을 찾은 화상환자에게 침술을 시도한 의사들도 그 효과를 직접 체험하고는 혀를 내둘렀다.
침 하나 뜸 하나에 혼을 담아 “우리나라에서 가장 자랑할 만한 업적으로는 세종대왕의 한글, 해시계 등을 듭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훌륭하고 갚진 것이 침(鍼)입니다. 침은 중국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동양의학의 경전이라 불리는 중국의 황제내경(黃帝內徑)에도 침뜸은 동방과 북방지역(한반도와 만주일대)에서 왔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침구(鍼灸)는 침과 뜸의 자극으로 인간의 자연치유력을 끌어내는 치료법으로 세계보건기구(WHO)는 1998년에 “300여종의 질병을 침뜸술로 치료할 수 있다”고 공식 발표한바 있다. 특히 미국·영국·프랑스·일본 등 각국의 의과대학에서 침뜸의학을 연구하는 등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정작 종주국인 국내에서는 침뜸의학이 홀대를 받고 있는 것을 김옹은 매우 통탄해 했다. 1962년 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침구사제도가 사라져버려 그 후 더 이상 침구사 면허증이 발급되지 않았다. 이제 침술원은 김옹처럼 제도가 없어지기 전 면허를 획득한 침구사만이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을 뿐이다. 1980년 어느 날, 침구사제도 부활을 위해 백방으로 애쓰던 그에게 실낱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당시 보사부장관이 침구사제도를 부활시킨다는 발표였다. 김옹은 너무 기쁜 나머지 쇼크를 받고 쓰러지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어찌 된 일인지 아무 해명 없이 그 발언은 공언(空言)이 되어 버린 것이다.
김옹은 다시 침을 잡지 않겠다는 결심도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억울한 심정에 눌렸던 침뜸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애정이 마구 솟구쳐 올라왔다. 그 때 늘 마음에 숙원처럼 남아있던 의료봉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평소에도 시간만 나면 가족과 함께 낙도나 오지, 무의촌으로 봉사활동을 다녔지만 아예 요일을 정해 몸이 불편한 독거노인과 장애아를 무료로 치료해 주기로 했다. 일주일에 하루만 진료를 하고 나머지 5~6일은 정부과천청사와 국회, 감사원, 종로의 무료진료소를 비롯 전국을 누비며 봉사활동을 다니던 때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창단된 것이 바로 ‘뜸사랑봉사단’이다.
수술후유증이 없는 침뜸 으로 사시를 정상으로 회복시키고, 마비가 되어 손가락이 펴지지 않는 뇌성마비장애아가 침을 통해 손가락을 펴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감격스럽습니다. 이 기분은 아마 벼슬아치도 모를 거예요.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기쁘답니다.” 그에게 치료를 받고 완쾌된 이들이 감사인사를 할 때마다 ‘이것은 내가 한 일이 아니라 침이 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반면 봉사도 불법이라는 이유로 경찰서와 경찰청을 수도 없이 불려 다녔다. 그러나 늘 결과는 ‘혐의없음’,‘무죄’라는 판결이었다.
중국에서는 신체 및 정신장애아를 침으로 고쳐 큰 효과를 보고 있으며, 이 소식을 들은 우리나라 장애아의 부모들이 앞다투어 중국으로 향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직 제도적인 장치가 막혀 있는 국내 현실에 김옹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시간이 많지 않다고 판단한 김옹은 여생을 침구사양성제도 부활에 바치기로 했다. 서둘러 정통침뜸교육원을 세워 누구나 쉽게 침뜸을 배울 수 있는 교육과정을 만들었다. 침뜸을 배우러 오는 교육생 중에는 김옹을 인터뷰 하러 왔다 침뜸의 매력에 푹 빠진 방송국 기자, 침으로 갑상선암을 치료한 뒤 본격적으로 침뜸을 배우게 된 여성 등 사연도 모두 제각각이다.
교육원의 까다로운 교육과정과 임상실험, 그리고 자체 시험을 통과한 정예부대는 뜸사랑봉사단에서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현재 전국 30여 지부에서 연간 16만명에게 무료진료를 실시하고 있는 뜸사랑 봉사단은 이제 해외로도 뻗어나가고 있다. 얼마 전에는 아프리카 잠비아에 진출, 정식의료면허를 발급받아 AIDS(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 치료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은 1만여명이 침구면허를 가지고 있고, 가까운 일본만 해도 매년 5천명의 침구사를 배출하고 있지만, 의사가 침구를 활용할 수 없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우리나라뿐입니다.
이제 의료시장이 개방되면 역으로 해외에서 침구사들이 몰려 올 텐데 그럴 때를 대비해 의사, 한의사를 대상으로 제대로 된 침구교육이 시급합니다.” 이를 위해 김옹은 벌써 침구학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침뜸의학개론, 경락경혈학, 장상학, 침뜸술 등 전문서적 9권을 발간한 상태다. 김옹이 말하는 침뜸의 신비는 이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아프지 않고 살 수는 없지만 아파도 가볍게 앓고 빨리 회복할 수 있는 인체의 치유능력을 높이는 것이 바로 침뜸이라는 것. 김남수 옹은 지금까지 한평생 외길만을 묵묵히 걸어왔다. 그의 발은 늘 환자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고, 그의 손에는 언제나 침구가 들려있었다. 그는 오늘도 변함없이 침 하나, 뜸 하나에 사랑과 혼을 담아서 나눔과 희생의 참된 인술(仁術)을 펼치고 있다. 늘 입버릇처럼 말하는 ‘아픈 사람 없는 세상을 위해서’ 말이다.
구당 김남수 옹 1915년 광산군 하남면 출생. 부친으로부터 한학 및 침구학 전수, 연구 1943년 남수침술원 개원 서울맹학교 교과서 제정위원 및 심의위원 중국 북경침구골상학원 (현 북경중의약대학) 객좌교수 세계침구학회연합회(WFAS) 침구의사 고시위원 및
교육위원 사단법인 대한침구사협회 입법추진위원장 사단법인 대한침구사협회 봉사단장 현직 : 남수침술원 원장/뜸사랑회장/뜸사랑 봉사단 단장/정통침뜸교육원 원장/정통침뜸연구소 이사장/녹색대학 석좌교수/맹학교 교재심의위원 <저서> 침의 이론과 실제 나는 침과 뜸으로 승부한다 침뜸이야기 외 다수
지난 23일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의 '낮은 한의학' 칼럼을 놓고 문화방송(MBC) 이상호 기자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반론을 올렸다.
이상호 기자는 최근 김남수 씨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구당 김남수, 침뜸과의 대화> (동아시아 펴냄)를 펴냈다. 이 원장은 김 씨의 뜸 치료를 비판하면서 이 기자가 정리한 책 내용의 일부를 인용했다. (☞관련 기사 : 장진영의 봄날은 '왜' 갔는가?)
24일 이상호 기자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실린 글을 <프레시안>에 전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상곤 원장의 글에 대한 반론 형식의 이 글에서, 이 기자는 김남수 씨의 뜸 치료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김 씨의 뜸 치료를 놓고 수년간 갖가지 논란이 많았던 만큼, 본격적인 토론을 위해서 이 기자의 글을 싣는다. <편집자>
이상곤 한의사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번에 <구당 김남수, 침뜸과의 대화>를 출간한 이상호라고 합니다. 우선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제 책을 읽어주시고 바쁘신 와중에 인터넷 대안 언론의 선두, <프레시안>에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구당 김남수에게 묻는다"는 제하의 재미있는 서평까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그동안 탁월한 의술과 겸허한 술자의 미덕으로 많은 환자들의 고통을 없애주고 계신 원장님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저희 아내 역시 이 원장님께서는 보통 한의사들과는 달리, 매우 양식있는 분이라고 귀띔해 주더군요. 약값도 너무 비싸게 받지 않으신다고 하니 감사합니다. 이번 원장님의 글은 더구나 부족한 제 한의학 지식을 넓힐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어주었습니다.
늘 느끼는 문제이지만, 우리 사회 모든 의제에 대해 항용 '유사' 전문가일 수 밖에 없는 기자질의 한계를 자인합니다. 그래서 욕을 많이 먹습니다. 삼성 X파일 보도 때는, "니가 실물 경제를 알기나 하냐"는 삼성 측의 마타도어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대검찰청을 출입하며 '세풍'이나 '병풍' 등 검찰의 정치적 수사 행보와 불법적 언론플레이를 고발할 때는 "사법고시도 패스 못한 기자가 법을 알기나 하냐"는 무시를 당했구요, 연예계 노예 계약이나 PR비 수수 관행을 처음으로 고발했을 때는, "기자가 연예계를 알기라도 하고 쓰느냐"는 호된 돌팔매를 맞아야 했습니다.
늘 그랬습니다. 어느새 기사를 쓰고 욕먹는 게 기자질의 숙명이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국민들은 비전문가일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국민들을 대신해 전문가 집단의 아성에 의심과 의문의 화살을 날리는게 비천한 저희들의 몫입니다. 다만, 의료계는 워낙 전문적 영역이다 보니 그동안 귀찮게 구는 기자들이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기자의 선조가 노예제하의 고자질쟁이였다는 학설을 저는 믿습니다. 애당초 박수 받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다시 사죄합니다. 전문가가 아니라서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십시오. 오죽하면 그랬겠습니까? 중금속과 농약에 오염된 중국산 한약재가 판을 치고, 맹물 고가 한약을 강권하는 등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한의계 관련 보도를 보며 국민들의 심사가 편치 않은걸 혹시 아시나요. 원장님께서는 아직도 국민들의 불신과 심지어 분노를 잘 모르시는 것 같아 우려됩니다. 혹시 한의원을 찾는 발길이 크게 줄어든게 구당 선생 때문이라고 믿고 계시는건 아니겠지요?
혹시 입으로는 "낮은 한의학"을 지향하신다면서, 여전히 너무나 높은 합법성의 철책이 둘러쳐진 전문가의 권좌에 안주하고 계신 것은 아니신지 모르겠습니다. 듣기 싫다고 귀를 막으시거나 아니면 손쉽게 법의 이름으로 제 입을 막으실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만큼 한의계로서는 몸을 낮춰 국민의 품 속에 안길 기회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라 걱정됩니다.
바쁘실테니까 이번 제 졸저의 핵심 메시지 2개를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는 구당 김남수 옹이 침뜸으로 많은 불치병, 난치병 환자들을 고치고 매년 15만 명을 무료로 치료해 준다고 하길래 직접 가서 봤더니, 상당 부분 사실이더라. 그렇다면 나라나 의학계가 나서서 그 치료기전을 연구하고 일반화, 표준화시켜서 병들고 죽어가는 국민을 널리 구제해야 할 것이 아니냐는게 첫 번째 주장이구요.
다른 하나는 국가가 그렇게 나서지 못하는 속사정을 살펴보니, 돈이 안들면서 도 잘 고치는 침뜸이 일반화될 경우 이미 자본화된 한의사의 배타적 기득권이 침해될까 두려워하는 한의계의 조직적 저항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폭로, 고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자. 그럼 이제 원장님의 글을 살펴보겠습니다. 원장님은 약짓는 전문가여도 글쓰는 전문가는 분명 아니시더군요. 글쓰기와 말하기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저는 원장님께서 제 책의 핵심을 살피지 않으신 채, '앞뒤가 맞지 않고', '횡설수설'하고 있다고 비난하지 않겠습니다.
또한 그야말로 '실소'를 금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식하다'는 등의 비전문가적 저주도 자제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자기 직군의 이해를 사수하기 위한 비분강개 차원에서 저질러진 아마추어 작가의 의기쯤으로 받아들여야 겠지요. 하지만 아마추어라고 해도 넘어서는 안될 금도라는게 글쓰기의 세계에는 엄존한답니다.
적어도 명백한 명예 훼손만은 피해야 했습니다. 역대 정부와 기관들로부터 40회에 달하는 명예 훼손 쟁송을 당하였으나 단 한차례도 패소하지 않은 전문가로서 들려드리는 말이니 들어 두시면 적잖은 도움이 되실 겁니다. 먼저 원장님 글의 제목입니다. 원장님의 글은 기법적으로는 매우 세련된 구성 형식을 채택하셨습니다. 놀랍습니다. 제목으로 묻고, 본문으로 답하는 전문가적 글쓰기의 모델을 차용하셨습니다.
실제 제목으로 '장진영의 봄날은 왜 갔는가?'라는 식으로 질문을 던져놓고는, 이어 전체 본문을 통해 '횡설수설 하고 무식하고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정도의 돌팔이가 '장진영을 양의사에게 가도록 권하지 않고 섣부르게 침을 놓는 행위'를 저지름으로써, 결국 '장진영 씨의 봄날이 가도록' 하고 말았다고 역설하고 계십니다. 매우 설득력이 높은 글이었습니다.
덕분에 수많은 독자들은 이 원장님의 의도대로, '돌팔이 구당이 엉터리 의술로 장진영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성공입니다. 문제의 책을 저술한 사람으로써 이쯤되면 반론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 이해하시죠?
대놓고 '구당이 장진영을 죽였다'고는 말하지 않았다구요? 전문적인 작가들은 그렇게 변명하지 않습니다. 이미 많은 독자들이 그렇게 읽었습니다. 원인 제공을 한 작가는 자신이 비전문가라는 이유로 허위 사실을 유포한 명백한 혐의로부터 면책될 수 없지요.
재차 말씀드리자면, 원장님께서는 '구당이 엉터리 치료로 장진영을 죽였다'는 인식을 널리 전파하셨으며, 그에 따라 재고의 여지없이 명백한 명예 훼손의 범법을 저지르신 것으로 사료됩니다.
원장님께서는 박사 학위까지 받은 분이니 난독증 환자는 아니실 줄 압니다. 그렇다면, 참작의 여지가 더욱 낮아집니다. 책을 읽으셨다고 하니, 제 책 127쪽 18줄부터 23줄 사이를 보시지요. 원장님의 글이 허위 사실에 의한 것임이 자명해집니다.
옮기자면, 책은장진영 씨가 '굴지의 대학 병원들이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내리고 치료를 사실상포기한 상태였으며, 이 같은 어려움에 직면한 장진영 씨를 구당이 '해당 기획사의 수차례 간청'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치료를 떠맡게 되었다고 적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장님은 사실이 아닌 것을 아시면서도, 구당이 침뜸을 알리는 것을 막음으로써 자신을 포함한 한의사 집단의 고가의 한약 판매를 통한 이익을 지키려고 의도적으로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는 범죄의 '의도성'을 의심받게 되신 겁니다.
제가 여러 사실적 자료를 통해 취재한 내용은, 구당은 죽어가는 환자를 거절하지 못하고 환자가 매우 위험한 상황인 만큼, 자신의 80년 임상 역사에 커다란 오점으로 남을지도 모르는 '공개' 임상에 응했습니다. 그리고 82일 동안의 정말 '피말리는' 치료가 계속됐으며, 저는 모든 임상 내용을 정밀 기록하였습니다. 물론 단 한푼의 치료비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구당은 이 같은 사실을 언론플레이해서 자신의 사익을 늘리는데 활용한 사실이 없습니다.
그런데 원장님께서는 돌팔이인 구당이 장진영 씨에게 '양의를 찾아가 현재의 상태를 엄밀하게 진단하라'고 권하지 않고, '허임도 침을 놓지 않았을 환자에게 침을 놓아' 끝내 '장진영 씨의 봄날이 가게 만들었다'고 거짓 사실을 적시하신 겁니다.
이제 보니 정말 큰일날 말씀을 하셨다고 후회되지 않으십니까? 글쓰는 사람은 설령 그렇게 믿고 싶어서 죽겠더라도, 타당한 증거가 없거나 사실관계에 어긋나는 말은 입밖에 내지 말고 꾹 참으셔야 합니다. 그게 자기 글에 책임을 져야하는 전문적인 작가들의 저술 방식입니다. 2015년 12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