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만에 …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 누명 벗다
[중앙일보] 입력 2014.02.14 00:21 / 수정 2014.02.14 00:43재심청구 6년 만에 무죄 선고
고법 "유서 감정 신빙성 떨어진다"
강씨 "재판부 유감표시조차 안
해"
서울지검 국정감사에 출석해 증언하는 모습. [중앙포토]
강기훈
강기훈(50)씨는 웃지 않았다. 얼굴은 석고상처럼 굳어 있었다. 무죄선고도 그의 표정을
바꾸진 못했다. ‘유서를 대신 써주며 동료의 분신자살을 방조한 범죄자.’ 23년간 그가
감당해야 했던 ‘자살방조범’이라는 누명의 무게 때문인 듯했다. 축하의 말을 건네는
지인들이 “얼굴 좀 펴라”고 하자 그제야 강씨는 짜내듯 옅은 미소를 입가에
띠웠다.
강씨가 전과의 멍에를 쓰기 시작한 건 노태우 정부 때인 1991년 5월 8일이다.
전국민족민주연합(전민련) 사회부장이던 고(故) 김기설(당시 25세)씨가 이날 분신자살한
것이 계기였다. 이른바 ‘강경대군 치사사건’으로 촉발된 학생운동 과정에서 김씨는
‘노태우 정권 퇴진’을 주장하며 유서 2장을 남긴 뒤 서강대 본관 옥상에서 몸에 불을
붙이고 투신자살했다. 사건 발생 후 전민련 총무국 부장이던 강씨는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기 바빴다.
하지만 얼마 뒤 검찰은 김씨의 유서를 대필하고 자살을 방조한
‘범인’(자살방조 혐의)으로
강씨를 지목됐다. 이어 김씨 유서와 강씨 진술서 등의 필적(筆跡)이 동일하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의 감정결과 등을 근거로 재판에 넘겼다. 1, 2심은 국과수의
감정 결과가 신빙성 있다고 판단해 유죄를 선고했고 대법원도 92년 7월 유죄 확정
판결(징역 3년에 자격정지 1년6월)을 내렸다. 이 사건 이후 학생운동에 대한 국민 여론은
싸늘하게 식었다. 조작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큰 반향
없이 묻혔다.
3년간 복역한 강씨는 94년 8월 만기 출소했다. 낙인찍혀 고통 속에 살던 그에게 전환점이
찾아왔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진상조사에 나선 것이다.
위원회는 자살한 김씨의 지인이 뒤늦게 발견한 김씨 필적이 담긴 이른바 ‘전대협노트’와
‘낙서장’을 확보해 유서의 필적과 대조했다. 결론은 “김씨가 스스로 유서를 작성했다”는
거였다. 이 사건은 필적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스파이 누명을 썼던 프랑스의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 사건과 비슷해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렸다.
강씨는 2008년 1월 재심을 청구했다. 4년여 만인 2012년 10월 대법원은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재판 과정에서는 91년 당시 국과수의 감정 결과와 2007년 감정 결과의 신빙성을
두고 공방이 벌어졌다. 새롭게 국과수가 “유서와 김씨의 필적이 동일필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결과를 내놨지만 검찰은 새로 제출된 증거가 김씨 사후에 조작된
필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 권기훈)는 강씨의 재심에서
13일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91년 당시 국과수 감정 결과는 담당자 한 명의
의견이고 감정내용도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이를 제외한 다른 증거만으로 강씨가
김씨의 유서를 대신 작성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선고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강씨는 “판결 내용은 상관없다”며 “재판부가 유감
표시조차 하지 않는구나라는 게 처음 든 생각이었다”고 서운해했다. 사건을 맡았던
수사기관이나 국과수 관계자에 대해서는 “특별한 감정은 없지만 해나 아렌트가 말한
(평범한 사람들이 체제에 순응해 거악을 저지르는) ‘악의 평범성’이 바로 이 경우로
보인다”며 “당시 수사검사들이 유감 표시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검찰, 재상고
여부 검토=이 사건 수사는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가 맡았다.
강신욱(70) 전 대법관이 부장검사였고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곽상도(55) 변호사,
서울서부지검장 출신 남기춘(54) 변호사 등이 수사했다. 김기춘(75) 현 대통령
비서실장은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다. 서울고검 관계자는 “판결문을 받아 본 뒤 일주일
이내에 재상고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민제 기자
◆드레퓌스 사건=1894년부터 1906년까지 프랑스를
뒤흔들었던 간첩 조작 사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일지
1991. 5. 8 김기설씨 서강대서 분신자살
5. 16 검찰, 강씨 유서대필 용의자로 지목
12. 20 서울형사지법, 강씨에게 징역 3년
1992. 7. 24 대법원, 강씨 상고 기각
1994. 8. 17 강씨 출소
2007. 11. 13 과거사 위원회, 국과수 필적감정 결과 토대로 강씨가 유서 대필하지
않았다며 재심 권고
2008. 1. 31 강씨, 법원에 재심 청구
2014. 2. 13 서울고법, 무죄 선고
'변호인' 배경 부림사건 피해자 5명, 33년만에 명예회복
[JTBC] 입력 2014.02.13 21:42
1천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 '변호인' 소재가 된 '부림사건'의 피해자 5명이 청구한
재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이 나왔습니다. 33년 만의 명예회복입니다.
부산총국 구석찬 기자입니다.
58살 고호석씨 등 5명이 청구한 부림사건 재심에서 부산지방법원은 "현실비판적인
대화나 학생운동이 국가존립에 위협을 준다고 보기 어렵고 영장 없이 20일 이상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자백한 건 문제의 소지가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등 유죄 판결을 받았던 모든 혐의가 해소된 겁니다.
특히 부림사건 관련 재판에서 국보법 무죄 판결은 처음입니다.
[박찬호/부산지방법원 공보판사 : 국가보안법 등 혐의에 대해서 불법구금이 인정되는
경우 피고인의 자백은 증명력이 없다고 해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피해자들은 33년 만에 한을 풀었습니다.
[이진걸/부림사건 피해자 : 앞으로는 국가권력에 의해서 우리와 같은 희생은 절대로
이 땅에 일어나선 안 되기를 기대합니다.]
부림사건은 1981년 공안당국이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등 19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한 부산지역 최대 공안사건입니다.
당시 고 노무현 대통령이 변호를 맡았으며 최근엔 이 사건을 다룬 영화 '변호인'이
1천만 관객을 넘어서는 흥행돌풍을 일으켰습니다.이번 판결을 계기로 부림사건의 남은
피해자 14명에 대한 재심 청구도 곧 이어질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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