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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인물

세계가 말랄라 신드롬

by 석암 조헌섭. 2013.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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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평화상 못 받은 걸 축하" 세계가 말랄라 신드롬

[중앙일보] 입력 2013.10.14 01:31 / 수정 2013.10.14 01:33

"노벨상 타기엔 너무 훌륭한" 16세 소녀와 롤모델 아버지

 

파키스탄의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오른쪽 둘째)와 아버지 지아우딘(오른쪽)이

 12일(현지시간) 미국 보스턴을 찾아 존 F 케네디 도서관 재단의 재키 젠킨스-스콧

 이사로부터 케네디 청동상을 받고 있다.

 이는 여성의 교육권 보장을 위한 말랄라의 노력을 기리는 의미라고 재단은 밝혔다.

[보스턴 AP=뉴시스]

 

열여섯 살 소녀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국제 여자아이의 날’(10월 11일)에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동화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세계가 말랄라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는 계기가 됐다. 탈레반이 쏜 총에 목숨을

 잃을 뻔한 작은 소녀의 영향력이 세계 최고 권위의 상을 뛰어넘었다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다.

 워싱턴포스트 인터넷판은 11일 칼럼에서 “서방 국가들이 말랄라의 수상을 원했던

 이유는 그녀를 상징적 인물로 만듦으로써 파키스탄의 어려운 문제들을 외면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되면 오히려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한 말랄라의 노력은

 빛을 잃었을 것”이라고 썼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말랄라,

노벨 패러디상을 못 탄 걸 축하해’ ‘말랄라는 노벨상을 타기엔 너무 훌륭하다’고

 보도했다.

탈레반 쏜 총에 머리 맞아 목숨 잃을 뻔

 

말랄라는 파키스탄 탈레반이 여자아이의 학교 등교를 금지하자 이에 반대하는

 인권운동을 벌여왔다. 탈레반은 지난해 10월 말랄라의 머리에 총을 쏴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고, 탈레반의 잔인함에 전 세계가 경악했다.

 실제로 자서전 『내가 말랄라예요』 출간 등을 계기로 미국을 찾은 말랄라가 받은

 환대는 노벨평화상 수상자 못지않았다. 유력 언론들이 매일같이 주요 기사로 말랄라의

 일거수일투족을 다뤘고, 방송 출연 요청이 쇄도했다. 11일에는 백악관을 찾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말랄라는 오바마에게 “미국의 드론(무인항공기)

 공습으로 무고한 희생자가 생기고 오히려 테러를 양산하고 있다. 그 관심을 파키스탄의

 교육문제에 쏟아달라”고 따끔한 조언도 했다.

오바마 만나 "드론 공습 중단을” 쓴소리

말랄라가 가는 곳마다 그 못지않은 박수갈채를 받은 이는 바로 아버지 지아우딘이었다

. 말랄라의 기적 뒤에는 딸이 태어나기 전부터 직접 여학교를 운영하며 인권운동에

 매진해온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포린폴리시가 “말랄라만큼이나 지아우딘에게도

 노벨평화상 자격이 있다”고 했을 정도다.

 말랄라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열두 살이었던 2009년이었다.

 뉴욕타임스(NYT)의 다큐멘터리 ‘문 닫힌 교실 ’이 인터넷으로 방영되면서다(www.youtube.com/watch?v=9F5yeW6XFZk).

 다큐멘터리에서 말랄라는 전 세계를 향해 “우리 학교를 구해주세요”라고 외친다.

 시인이자 이상주의자였던 지아우딘이 딸을 어떻게 인권운동가의 길로 이끌었는지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다큐멘터리 초반부에서 말랄라는 말한다. “내 꿈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의사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아빠는 내가 정치인이 돼야 한다고 하세요.

 

 하지만 난 정치가 싫은걸요.” 이에 지아우딘은 웃으며 “말랄라는 자신이 박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박사 학위를 쉽게 딸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며 말랄라의

 잠재력을 믿는다고 말한다.

 이런 그의 열정은 교육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이미 1995년 남녀공학을 세우고 교장으로 일해 왔다.

 파키스탄은 세계에서 여성 인권이 가장 열악한 곳 중 하나다.

 특히 말랄라가 살던 스왓 밸리에서는 학교에 가는 여자 어린이가 20%에 불과했다.

지아우딘이 남녀공학을 연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었다.

 지아우딘은 기자회견 때마다 어린 말랄라를 동석시켜 발언하게 하는 등 그녀가

 적극적으로 활동할 기회를 마련했다. 하지만 그가 딸에게 강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 그저 행동으로 보였을 뿐이다. 파키스탄 정부군이 대대적인 탈레반 진압작전에

 나선 2009년 5월 지아우딘은 숨기보다는 투쟁의 길을 택했다.

 가족은 안전한 친척집에 보내고, 자신은 가장 위험한 페샤와르 지역으로 간 것이다.

인권에 인생 건 아버지 “이젠 세계의 딸”

 그는 그곳에서 다른 인권운동가들과 시위를 조직하고, 기자회견을 열어 탈레반

 축출과 정부의 역할 정립 등을 설파했다. 이에 탈레반은 지아우딘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탈레반의 살해 위협을 딸보다 아버지가 먼저 받은 것이다.

 그는 “사람들은 내가 너무 이상적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 국민을 수렁에서

 구할 수만 있다면 난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말랄라가 정치가로 희망을 바꾼 것 역시 이때였다. 아버지의 열정을 보고 마음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우리나라엔 위험이 너무 많다”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아버지와 판박이였다. 말랄라는 “아버지를 보며, 내가 원하는 변화를 이루려면

 다른 이에게 기대지 말고 스스로 일어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말했다.

 말랄라 가족과 6개월 동안 함께 지낸 NYT의 아프가니스탄 특파원 애덤 엘릭은

다큐멘터리 촬영 초반부에 말랄라를 ‘말을 걸어야 비로소 대답을 하는 수줍은 어린아이로

 묘사했다. 그는 몇 달 사이 달라진 그녀의 모습에 놀랐다며 “말랄라에게는 혁명적인

 열정이 있었고,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아버지였다”고 말했다.

 지아우딘은 앞으로 딸이 더 큰 변화를 만들 것이라고 믿는다. “말랄라의 삶 자체가

 기적입니다. 이제 말랄라의 아버지는 나뿐만이 아닙니다. 말랄라는 전 세계의 딸이

 됐기 때문입니다.”

유지혜 기자

말랄라의 말말말

▶의사가 되면 총에 맞은 한 사람을 치료할 수 있을 뿐이지만 정치인이 되면 총에

맞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어요. -세계은행 행사

▶탈레반이 여자아이들의 학교 교육을 막는 이유는 하나예요.

 여성이 더 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죠.

-더 데일리쇼 출연

 

 
▶한 어린이가, 한 권의 책이, 한 자루의 연필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교육만이 유일한 답입니다. -유엔 연설